[비즈 르포] 벼랑 끝 국내 문구 산업.."고급화 전략으로 위기 돌파"
“출산율 감소로 수요는 줄어들고, 중국산 제품의 저가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 문구산업이 가야할 길은 고급화라고 생각한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우던 예전 방식을 탈피하고 제품의 질로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 국제문구·학용·사무용품 종합전시회’(SISO FAIR 2017)에선 어떻게든 해법을 찾으려는 국내 문구 업체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이동재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알파 회장)은 “다이소를 중심으로 값싼 중국산 제품이 시장에 범람하면서 우수한 한국 문구 제품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며 “국내 문구산업의 향후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혁신 제품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추진하기 위해 이번 박람회를 개최했다”고 말했다.
이번 박람회에는 국내 128개사와 해외 22개사 등 총 150개사가 참가했다. 최신 사무·학용품을 비롯해 디자인용품과 생활잡화류 등 다양한 품목이 전시됐다. 전시장에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신건식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전시회가 진행되는 사흘동안 일선 학교 30여곳에서 3000여명이 단체 관람을 왔다. 현장학습체험부스를 다양하게 꾸렸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 프리미엄 제품으로 경쟁력 확보나선 문구업계

종합 문구 기업인 모닝글로리는 이날 고품질 복사용지와 다이어리형 노트를 메인 상품으로 전시 부스를 꾸렸다. 타사 제품과 비교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관람객이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관람객은 비교 체험을 한 뒤 “용지가 더 부드럽네요”라고 말했다. 기자가 직접 만져봐도 모닝글로리의 제품이 훨씬 매끈했다. 모닝글로리 관계자는 “표면이 부드러울 뿐 아니라 백색도가 높아 컬러 프린팅시 색 표현이 훨씬 깔끔하다”고 했다.
국내 대표 문구 기업인 모나미는 153볼펜을 중심으로 다양한 DIY 공간을 마련했다. 하얀 머그컵을 꾸며본다거나 다양한 형태로 153볼펜을 직접 조립할 수 있었다. 신동호 모나미 마케팅팀장은 “‘생활을 스타일링하는 모나미 클래스’를 컨셉으로 체험부스를 조성했다”며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브랜드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위, 스태플러, 펀치 등 사무용품 전문기업인 화신공업은 기존 제품을 고급화한 프리미엄 제품들로 전시 부스를 채웠다. 간단하게 천공 간격을 조정할 수 있는 펀칭기와 작은 핸드백에 보관할 수 있는 소형 가위, 가위날을 분리해 병따개, 감자깎이, 드라이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용도 가위가 눈에 띄었다.

박영진 화신공업 영업팀장은 “문구 시장이 위축되면서 회사 내부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가 갈 길은 고급화라고 판단했다. 타사에서 따라올 수 없는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유아용 크레파스, 색연필, 사인펜 전문기업인 지구화학도 프리미엄 제품에 중점을 뒀다. 유아가 사용하는 만큼 무해성 친환경 소재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 물론 제품 본연의 발색과 편의성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뽀로로, 후토스 등 캐릭터 제품과의 콜라보레이션도 고급화 전략 중 하나다.
◆ 새 먹거리를 찾아라… 혁신 나선 장수기업
해방 직후인 1946년 고(故) 최상봉 사장이 설립한 매표화학(당시 삼성화학)은 70년 넘게 인주를 생산해왔다. 해방 후 실패를 거듭하다 인주 개발에 성공한 최상봉 사장은 6․25전쟁이 끝나자 전국 방방곡곡으로 인주를 공급하며 회사를 키웠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 서명이 도장 직인을 대체하면서 매표화학은 위기에 직면했다. 인주 수요 급락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 먹거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졌다. 2대 CEO인 최윤석 사장은 회사 DNA 전환에 나섰다. 매표화학은 이날 전시회에서 인주가 아닌 ‘컷터칼+가위’ 아이디어 상품을 선보였다.
금전출납부(회계장부)만 60년 넘게 만들어 온 근영사는 부스 2개 공간을 빌려 ‘프리미엄 노트’ 전용 부스를 꾸렸다. ‘아이디어 방카(Idea Banca)’(이태리어로 Idea bank의 의미)라는 노트 전용 브랜드까지 만들었다. 근영사의 프리미엄 노트는 출시 3년 만에 회사 매출의 15~20%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용규 근영사 생산기획실장은 “학생들이 다 쓴 노트는 버리지만 일기장은 버리지 않는다. 소비형 문구 시장은 점차 줄어들지만 소장형 문구는 성장가능성이 여전하다는 데 주목하고 프리미엄 노트 시장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근영사는 회계장부를 만들면서 확보한 제본 기술을 아이디어 방카 제품에 그대로 녹였다. 표지에 들어가는 고급 인조(PU) 가죽도 유럽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양질 제품을 사용했다. 이용규 실장은 “중국에서 디자인을 카피하더라도 질은 카피할 수 없도록 최고급 자재를 사용했다. 몰스킨 등 유럽 제품보다 질이 더 좋다고 자부한다”며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수출 문의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구 프랜차이즈 드림오피스는 직접 개발한 신제품 스마트터치펜슬을 들고 나왔다. 가맹사업을 펼치는 문구 브랜드가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스마트터치펜슬은 샤프형 연필과 터치펜을 결합한 제품으로 2017년 신제품 경진대회에서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상을 받았다.
김학상 드림오피스 대표이사는 “파버카스텔이나 스태들러에서 만드는 샤프형 연필을 한차원 업그레이드 했다. 알루미늄 소재로 전도성도 좋아 터치펜 인식률도 상당히 뛰어나다”며 “글로벌 시장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자신감 넘치는 해외 업체
문구 선진국인 일본과 독일의 기업들은 남다른 기술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일본 기업인 펜텔(Pentel)과 제브라(Zebra)는 심이 부러지지 않는 샤프를 비롯해 신기술을 접목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방문객 전원에게 펜을 증정한 제브라의 부스는 발 디딜 틈 없이 방문객이 가득 찼다. 제브라는 이날 기존 잉크보다 건조 속도가 빠른 ‘사라사 드라이’ 볼펜과 심이 부러지지 않는 델가드 샤프를 적극 홍보했다.
사라사 드라이 볼펜은 쓰자 마자 형광펜을 칠해도 번지지 않을 정도로 잉크가 빨리 말랐다.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계약을 어겼다’라는 말은 앞으로 못쓰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브라 제품을 수입하는 ㈜짐모아의 직원은 “일반펜은 쓰다보면 손이 지나가면서 번지거나 손 옆면에 묻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라사 드라이는 그러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펜텔은 스테디셀러 펜 ‘에너겔’과 신제품 샤프 ‘오렌즈’를 전면에 내세웠다. 오렌즈는 펜텔이 새롭게 개발한 샤프심이 부러지지 않는 샤프다. 제브라의 델가드가 스프링의 탄력으로 샤프심을 보호한다면 오렌즈는 샤프심이 샤프 팁(샤프 앞쪽의 뾰족한 부분) 외부로 나오지 않게 해 심을 보호한다. 이 때문에 오렌즈는 0.2mm의 초극세필이 가능하다.
지난해 국내에 진출한 독일의 슈나이더(Schneider) 제품은 ‘Made in Germany’를 강조하며 높은 완성도를 부각시켰다. 슈나이더 제품을 써 본 한 방문객은 “정말 부드럽다. 가격이 얼마냐”며 바로 구매해갔다. 슈나이더 문구를 수입한 대림엔터프라이즈의 관계자는 “슈나이더 제품은 고객 만족도가 높아 충성도가 큰 제품”이라며 “연간 매출 5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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