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블레이드 러너 2049>, 걸작의 우아한 계승

정원식 기자 2017. 10. 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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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저주 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1982)가 35년 만에 <블레이드 러너 2049>로 돌아왔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스타일은 세련됐고 메시지는 철학적이며 세계관은 더욱 확장됐다.

<블레이드 러너 2049> . 소니 픽쳐스 제공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블레이드 러너>는 2019년 LA를 배경으로 한다. 인류는 외계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해 살고 있다. ‘오프월드’로 불리는 외계 식민지에 갈 사정이 안 되는 사람들만이 지구에 남았다. 인간이 기피하는 힘든 노동은 지능은 동일하고 신체적인 능력은 우월한 복제인간이 수행한다. 그러나 복제인간들의 반란이 일어난 후부터 복제인간 사용 금지령이 내려진다. 블레이드 러너는 금지령 이후 인간 사이에 숨어 지내는 복제인간을 찾아내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경찰이다.

줄거리만 보면 복제인간과 블레이드 러너 사이의 숨막히는 추격전과 강렬한 액션으로 무장한 블록버스터 SF 영화일 것 같지만, 감독은 복제인간과 인간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허물면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흥행에서 참패하고 비평가들로부터도 상반된 평가를 받았던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서야 걸작으로 재평가됐다.

<시카리오>와 <콘택트>로 주목받은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는 2049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LA 경찰 소속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는 복제인간이다. K는 구형 모델 넥서스 8과 달리 인간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영화 초반 K는 출산 흔적이 있는 여성의 유골이 담긴 상자를 입수하고, 유골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30년 전 사라진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와 조우하게 된다.

전편은 데커드의 정체와 관련해 분명한 답을 주지 않은 채 모호한 상징으로 일관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편에서 암시와 상징으로만 처리됐던 부분들에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 . 소니 픽쳐스 제공

전편이 그랬듯 <블레이드 러너 2049> 또한 기억과 정체성에 관한 영화다. 영화에는 인간과 복제인간,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경계가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확고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가득하다. K는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복제인간이지만,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유년기 기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의 문제를 놓고 실존적 고민에 빠진다. 때로는 목소리로, 때로는 홀로그램 영상으로 존재하는 인공지능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가 연인 K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실제 인간의 그것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사실적이다. 영화 속 인간들은 복제인간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인간과 절대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영혼이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관념의 산물일 뿐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편을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다소 느리고 사색적인 영화로 느껴질 것 같다. 그러나 우울한 디스토피아적 풍경을 풍부한 질감으로 담아낸 촬영과 장중하면서도 몽환적인 음악은 그런 관객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무엇보다도, 감독은 인공지능 시대의 초입을 살고 있는 우리가 오래 곱씹어 볼 만한 질문을 우아한 방식으로 새겨놓았다. 오는 12일 개봉.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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