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투 매트릭스]⑦ '제조혁명' 스마트 팩토리, 아시아 성장 모델 위협..無人공장의 후폭풍

박성우 기자 2017. 10.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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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혁명이 인류를 ‘신세계(新世界)’로 안내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클라우드가 모든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5세대 통신이 현실과 가상현실(VR)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인간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도 진화를 거듭한다. 200억개가 넘는 사물의 연결, 급속한 클라우드화, 일상화된 인공지능, 가상화폐와 가상현실의 보편화 등이 특징인 고도의 정보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조선비즈 특별취재팀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4차 산업 혁명이 이끄는 고도의 정보화 사회, 이른바 ‘매트릭스(matrix)’로 불리는 세계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진화의 방향을 알면 우리의 대응 방법이 보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아디다스가 23년만에 아시아에서 독일로 생산거점을 옮긴 ‘스피드팩토리’의 로봇팔이 운동화를 생산하는 모습 /아디다스 제공

※ 참고로 이번 기사는 ‘로그인 투 매트릭스’ 시리즈의 7번째 연재 기사이며 제2부 ‘극단의 사회 분리'편의 3번째 연재 기사다. 독자들이 이전 기사와 연결해 볼 수 있도록 숫자 ⑦을 붙였다.

<제2부 극단의 사회 분리>⑦ '제조혁명' 스마트 팩토리, 아시아 성장 모델 위협......無人공장의 후폭풍

독일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는 지난해 9월부터 독일 안스바흐에서 운동화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1993년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이전했다. 아디다스가 23년 만에 독일 내 일부 생산라인을 가동할 수 있었던 것은 로봇과 3차원(3D) 프린터로 무장한 완전 자동화 공장인 ‘스피드 팩토리(Speed Factory)’ 덕분이었다.

일반 공장에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맞춤형 신발을 제작하려면 최소 20일이 걸린다. 아디다스의 스피드팩토리는 이 대기 시간을 20분의 1로 단축시킬 전망이다. 앞으로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운동화를 주문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매장에서 주문한 신발을 하루 이틀 만에 배송받는 게 가능해진다.

기러기 편대형 이론

로봇이 제품을 만드는 무인(無人)공장이 세계 제조업의 기지인 ‘아시아의 성장 모델’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적인 제조업체들이 인건비 부담으로 중국, 베트남 등으로 생산 기지를 옮긴 덕에 아시아 국가들은 기술을 습득하고 자국 경제도 부흥시키는 효과를 누려왔지만, 4차 산업 혁명 기술은 세계 산업 분업 체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실제로 아디다스는 독일과 미국 애틀랜타에서 로봇과 3D 프린터를 중심으로 한 스피드 팩토리의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카본과 3D 프린터를 통한 신발 생산속도 가속화를 목적으로 파트너십 계약을 맺기도 했다. 나이키, 언더아머 등 경쟁사들도 로봇이 제품을 생산하는 이른바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 더이상 쓸모없는 ‘기러기 편대 이론’

한때 아시아 국가의 경제 발전을 설명할 때 ‘기러기 편대 이론(Flying Geese Paradigm)'이 각광을 받았다. 1930년대 일본 경제학자 카나메 아카마쓰(Kaname Akamatsu)가 아시아 경제후발주자들이 선진국인 일본을 따라잡는 산업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이론으로 1960년대 꽤 인기를 얻었다.

플리커(Flickr)

선진국 산업이 후발국에 순차적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경제발전이 일어나고 후발국은 이를 통해 결국 선진국을 따라잡는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카나메 아카마쓰는 기러기들이 떼(隊形)를 지어 하늘을 나는 모습처럼 일본을 대장 기러기로 비유하고 그 뒤를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신흥산업 국가가 따르고, 대형의 꼬리 부분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과 같은 아세안 (ASEAN) 국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선두 기러기가 노동집약적 생산부문에서의 비교 우위를 점차 상실하게 되면, 노동집약적 생산부문의 빈자리는 서열의 하부에 위치한 국가가 차지한다. 예를 들어 과거 노동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일본은 노동집약적인 섬유산업을 포기했다. 두 번째 대열로 합류한 한국과 대만 역시 섬유에서 신발, 가발, 공장건설과 설비개발을 거쳐 가전제조, 반도체 등 점진적으로 보다 자본집약적인 산업으로 전환한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 반도체 기업의 주문을 받아 조립생산하는 하청업체에서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국가가 됐다.

‘후진국이 선진국 성장 패턴을 추종하며 성장한다’는 기러기 편대 모델의 효용 가치는 갈수록 떨어졌다.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1990년대 이후 다국적 기업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국민경제를 기반으로 한 단위보다는 기업 위주 국제분업적 생산공정이 많아졌다. 둘째, 일본 경제는 침체하고, ‘세계의 공장' 중국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 경제의 편대 비행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무인공장, 기계학습 등 기술의 고도화로 노동 집약이 필요했던 산업에서도 선진국이 비교 우위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국가별 산업 분업 흐름/블룸버그

◆ 4차 산업혁명으로 붕괴되는 아시아 성장 모델

연간 100만 켤레를 생산하는 아디다스의 독일 내 스피드팩토리의 상주인력은 10여명에 불과하다. 보통 신발공장에서 600명이 매달려야 하는 일을 로봇이 거의 다 해치우는 셈이다. 인간 노동력의 98% 이상이 불필요해졌다.

아디다스와 협력업체들은 아시아 지역에 직간접적으로 100만명을 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스퍼 로스테드 아디다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생산공장의 90%는 아시아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공장이 유럽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은 완전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그의 발언은 아시아 거래처 달래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아디다스는 아시아 공장에 근무하는 인력 100만명도 98%를 줄일 수 있는 기술력은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6월 21일 ‘수십년 간 이어진 아시아의 경제 모델이 이제 깨졌다(This Economic Model Organized Asia for Decades. Now It’s Broken)’는 기사를 내보내며 4차 산업혁명발(發)로 아시아 경제모델의 붕괴를 예고했다.

주요 기업 리쇼어링 현황

해외시장 개척과 저렴한 임금 등을 이유로 중국과 미국, 중남미 등 앞다퉈 해외로 나갔던 일본 제조업체들도 자국으로 '유턴(U턴)'하고 있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과 첨단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팩토리 구축 효과로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지을 효용이 예전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공장을 통한 기술 유출 등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는 자국 공장이 유리하다는 최고위 경영진의 판단도 작용했다.

최근 혼다는 소형 오토바이 ‘슈퍼커브’의 생산 거점을 중국에서 일본으로 옮기기로 했다. 지난 2012년 혼다가 생산비 절감을 위해 슈퍼커브의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긴 지 5년 만에 자국으로 ‘U턴’한 것이다. 혼다는 지난해 소형 오토바이 ‘조르노’ 생산 거점도 중국에서 일본으로 옮겼다.

혼다의 U턴은 중국 노동자의 임금이 계속 오른 탓이다. 일본 노동자 임금 상승률은 낮고 엔화 약세가 계속돼 중국 노동자와 일본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계속 줄고 있다. 여기에 혼다 경영진은 기술력 우위를 지키기 위해 자국 공장에서 일정 정도 생산량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캐논은 이달 초 미야자키현에 디지털카메라 공장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인건비 부담은 공장 자동화로 완화할 예정이다. 캐논은 2015년 자국내 생산 비율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제이브이시(JVC)켄우드도 고급 오디오 생산 거점을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으로 옮긴다고 밝혔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제조업 국내 회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시점을 기준으로 1년간 생산 기지를 해외에서 자국으로 바꾼 기업이 전체 조사 대상 기업의 11.8%에 달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이같은 추세를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은 늘어나는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근로자 1만 명당 로봇의 수를 의미하는 ‘로봇 밀도’를 2015년 49단위에서 2020년 150단위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단위가 높다는 건 근로자에서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노동자 감축, 기술 확대 적용을 ‘리쇼어링(선진국 기업의 해외 공장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대응책으로 내세운 것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제조와 관련된 기술과 자본의 이동을 살펴보면 유럽(영국)에서 출발해 미국으로 온 뒤 일본을 거쳐,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등 동에서 서로 이동했다"면서 “하지만, 스마트팩토리의 등장으로 임금 상승과 관계없이 어디서든지 동일한 조건에 제조가 가능해짐에 따라 작업환경과 기술력이 좋은 선진국에 산업 시설이 남아있거나 이미 이전한 시설도 선전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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