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고물을 보물 만든 '중고나라 대통령'

송혜진 기자 2017. 9. 3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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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 기자의 느낌] 국내 최대 온라인 중고 거래 장터.. '중고나라' 이승우 대표

'중고나라' 대표 이승우(40)씨가 2012년 초 결혼하고 처음 산 가구는 12만원짜리 3인용 소파였다. 싼 맛에 샀지만 누워 있으면 허리가 아팠다. 한 달을 참다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장터에 9만원에 내놨더니 10분도 안 돼 연락이 왔다. 동네 파출소 순경이었다. "고 사이즈가 우리 파출소 민원 응접용으로 딱이겄소!" 순경은 바로 화물차를 불러 소파를 실어 갔다.

이승우씨는 "그 소파는 내겐 잘못 사들인 물건이지만 순경 아저씨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소파를 치워서 속 시원했고 순경 아저씨는 찾던 소파를 싼값에 들였다고 흡족해했다. 물건이라는 게 그렇게 돌고 돌다 보면, 모두에게 좋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중고나라’가 지난 1월부터 운영하는 폐쇄형 쇼핑몰 ‘비밀의 공구’에서는 ‘엠제이(MJ·Multi Jockey)’라는 이들이 활약한다. 최근엔 전직 개그맨이 많아졌다. ‘중고나라’ 이승우(가운데) 대표는 이 날 회사 헬멧을 쓰고 달렸다. 뒤에 선 개그맨 출신 MJ 김범용(왼쪽)씨와 이광득(오른쪽)씨가 이렇게 외친다. “대표님! 이거 언제까지 찍어야 해요? 과메기 팔러 가야 하는데!”/오종찬 기자

2003년 12월 네이버 카페로 처음 문을 연 '중고나라'는 현재 우리나라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이자 중고 거래 장터로 꼽힌다. 이들이 내건 구호는 '자원의 선순환(善循環)'. 누군가가 쓰다 내놓는 물건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을 담았다. 저성장 시대에 딱 맞는 얘기여서일까. '카페'였던 '중고나라'는 어느덧 '나라'가 됐다. 최근 연간 방문자 수가 1억9000만명, 회원 수는 네이버 카페와 모바일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합쳐 2100만명 정도다. 지난 한 해 동안 성사된 중고 거래 건수는 6000만 건에 이른다. 대한민국 사람 10명 중 4명은 '중고나라'를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19일 서울 삼성동 사옥에서 만난 이승우씨는 "처음 카페를 열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사람이 몰려들 줄 몰랐다"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중고나라' 사이트를 열어 보였다. "이젠 1초에 58명씩 찾아오고, 1초에 세 건씩 새 중고 거래가 등록되는 곳이 됐어요. 지금 제가 말하는 동안에만 벌써 중고 거래 9건이 등록됐어요. 그 사이 174명이 왔다 갔고요…." 말을 맺는 사이, 방문자 끝자리 숫자가 또 바뀌었다.

1초에 58명 왔다 가는 장터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전지현이 아끼던 가방을 '중고나라'에 몽땅 내놓는 장면이 나왔죠. 김수현이 "운포는 뭐고 에눌은 뭐냐?"고 했고요.

"그게 참…. '중고나라' 회원들끼리만 쓰던 인터넷 용어가 어느덧 보통명사가 돼버렸어요. '운포(운송비 포함)' '택포(택배비 포함)' '에눌(물건값 깎아줌)' '미개봉(뜯지도 않은 중고품)' '쿨거래(기분 좋은 거래)' '드림(돈 안 받고 그냥 줌)' 같은 말을 너도나도 다 쓰는 세상이 된 거죠. 그게 나중엔 드라마 대사로도 쓰이고(웃음). 카페를 만든 건 저와 초창기 멤버들이지만 지금의 '중고나라'는 제가 만든 게 아닌 거죠."

―초창기 '중고나라'에서 많이 팔리던 건 뭐였죠.

"카메라, 렌즈, 한정판 CD…. 뭐 그런 것들이었어요. 아무래도 초기엔 수집벽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어요. 아내 몰래 쌈짓돈으로 값비싼 물건을 수집하는 남자들이요. 그러다가 2008년 미국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불황이 왔고, 너도나도 중고를 사고팔기 시작했죠. 회원이 200만~300만명에서 갑자기 500만명을 넘어섰고, 금세 1000만명, 2000만명이 됐죠."

흔히 '중고나라'를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인터넷 커뮤니티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중고나라'는 제법 덩치가 큰 회사다. 이승우 대표는 인터넷 카페였던 '중고나라'를 2014년 '큐딜리온'이라는 법인으로 만들었다. 2015년에는 엔젤 투자자 및 벤처캐피털에서 80억원가량을 투자받았다. 최근엔 폐쇄형 공구 쇼핑몰 '비밀의 공구', 중고품을 와서 실어가는 '주마'서비스도 시작했다.

―'중고나라'가 이젠 마누라 몰래 중고 카메라와 렌즈를 사들이던 곳을 넘어섰다는 얘기인 거죠. 언제 이렇게까지 컸나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돌아보면 우연이 쌓여 어느덧 운명이 된 것도 같아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걸로 돈을 벌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안전결제'라는 걸 만들었어요. 중고품을 사고팔 때 이 프로그램이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테스트를 하다 규모가 커져 이게 사업이 된 거죠."

―풀어놓고 키운 병아리가 알 많이 낳는 닭이 됐다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비슷해요. 다만 그냥 놔둔 것만은 아니고 애정을 많이 쏟았어요. 별별 사업을 했다 망했다 반복하는 와중에도 이 카페 관리는 열심히 했어요. 게시판에 불평불만이 올라오면 바로바로 처리해주려고 애썼고요, 사람들 관심이 뜨거운 분야가 특별히 눈에 띄면 그것도 바로바로 정리해줬어요. 출산용품, 교복, 유아책, 장난감, 중고폰… 이런 식으로요."

―수수료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무료로 운영했죠.

"시장 갈 때 입장료 안 받잖아요. 그것과 똑같죠. 그냥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서 제가 벌여놓은 판에 모여 떠들고 만나고…, 그런 걸 보는 게 재밌었어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고 있다는 희열, 처음엔 그게 다였죠."

실패와 오지랖이 쌓이고 쌓여

이씨 어머니는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에서 옷을 팔았다. 이씨는 "6~7세 무렵부터 일하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그 곁에서 혼자 놀았다"고 했다. 지하상가 어느 집이 장사가 잘되는지, 어느 곳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지 어린 눈에도 훤히 보였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장사하는 풍경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했다.

1999년 광운대 법대에 갔고 남들처럼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영 재미가 없었다. 대학 강의도 상법(商法) 위주로 골라 들었다. 2002년 어느 날, 도서관에서 신문을 뒤적이다가 '중국 시장 뜬다'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책을 덮고 나와 상하이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상하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한 백화점에서 영국 축구 유니폼 '엄브로(Umbro)'를 파는 걸 봤다. 한국에선 10만원가량에 팔리는 유니폼이 2만~3만원가량이었다.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300만원을 빌린 뒤 다시 상하이로 날아가 '엄브로' 유니폼 300만원어치를 샀다. 첫 장사였다.

―중국 도매상을 찾아가 정식으로 물건을 샀다는 건가요.

"아뇨. 그냥 백화점에 가서 옷 300만원어치를 덜컥 산 거예요. 그걸 들고 서울에 왔는데 이걸 어찌 파나 싶더라고요. '도카닷컴'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하나 만들어 옷을 팔기 시작했는데, 축구 애호가들에게 금세 다 팔렸어요. 26세 나이에 돈 버는 맛을 알게 됐으니 너무 신났죠."

―창업 1년 만에 축구 관련 쇼핑몰 매출 1위를 기록했죠.

" 누군가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을 올리면 답은 무조건 10분 안에 달아줬어요. 물건 떼러 가는 길에도 질문 올라왔다는 전화를 받으면, 차 세우고 답을 단 다음에야 다시 떠나는 식이었죠."

월 매출은 1억5000만원까지 나왔지만 4년쯤 지나자 '가랑비에 옷 젖듯' 매출이 야금야금 떨어졌다. 포털사이트에서 키워드 광고를 시작하면서 축구 관련 1위 사이트였던 '도카닷컴'이 슬슬 밀려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쿠거'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스포츠 유니폼도 만들어 팔았다. 옷은 잘 팔렸지만 재고 관리가 쉽지 않았다. 업체에 꼬박꼬박 현금을 줘야 사업이 돌아가는데 늘 돈이 모자랐다. 이번엔 식당에 손을 댔다. 부침 요리와 막걸리를 파는 가게였다. 역시 쉽지 않았다. 걸핏하면 아르바이트생이 잠적했고, 주방일 하는 사람도 자주 그만뒀다. 결국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2007년에는 한 외국 회사로부터 소송도 당했다. 이씨가 만들어 파는 옷이 해외 브랜드 업체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네요.

"소송 비용만 1억원 넘게 들여가면서 2년 넘게 싸우다가 막판에 합의했어요. 그렇게 회사문 닫고 나니 수중에 딱 3000만원 남더라고요. 근데 무슨 오기인지, 그 돈으로 또 마지막 옷을 찍어냈어요. 월세 20만원짜리 지하 단칸방 얻어 티셔츠 500박스 들여놓고 마지막 옷 장사를 했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는데, 세상 일이 이상하죠. 일주일 만에 다 팔고 나왔어요. 그때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까짓 것 또 벌면 되는 거구나….'"

중고나라’ 로고가 박힌 자동차를 타고 환하게 웃는 이승우 대표. “중고나라는 이제 베트남을 비롯한 해외에도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오종찬 기자

네가 잘돼야 나도 잘된다

사업을 다 정리하고 나니 '중고나라'가 보였다. 회원 수는 이미 3000만명을 육박하고 있었다. 때마침 신발 가게를 하다가 쫄딱 망하고 마지막 남은 재고 정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한 명 만났다. 시험 삼아 그에게 남아 있다는 신발 4800켤레를 '공동구매'라는 이름으로 '중고나라'에서 팔아봤다. 일주일도 안 가서 몽땅 팔렸다.

―내게 이런 자산이 있었나 싶었겠군요.

"그럼요. 내가 만든 장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니…. 그게 그제야 눈에 들어온 거죠. '위코마켓'이라는 사이트를 구축해서 공동구매를 시작했죠."

'위코마켓' 연매출은 금세 10억원까지 올랐다. 주위에서 다들 "이제 진짜 돈벌이를 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그러나 수익 일부를 아동복지센터에 기부했고, '위코마켓' 사이트는 아예 굿네이버스에 기부했다.

―망했다가 겨우 일어났을 때 아닙니까.

"맞아요. 다 기부하고 굿네이버스 직원으로 2년인가 일했어요. 한 달 200만원 받았나 그래요. 처음엔 물론 아깝기도 했죠. 근데 망했을 때 이미 한번 제대로 배웠잖아요. 돈이라는 건 또 벌면 된다는 걸요."

―그 무렵 결혼도 하지 않았나요.

"네. 어쩌면 그래서 더 기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첫아이가 태어난 직후였을 거예요. 거실에 앉아 TV를 틀었는데, 어떤 40대 가장이 통닭을 사 들고 집에 가다가 길에서 퍽치기 강도에게 당해 숨졌다는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갑자기 변을 당한 가족들이 어떻게 살까 생각해보니 무작정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누군가를 꾸준히 도우면 내게 무슨 변고가 일어나도 날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이었죠."

2016년 이씨는 뇌병변·지체장애인 4명을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들은 '중고나라'에 올라오는 사기·불법 거래를 감시하고 신고하는 일을 담당한다. 작년에는 이들 장애인 직원 전원에게 '우수사원' 시상을 했다. 장애인 직원은 올해 7명으로 늘어났다.

―이분들이 하루 270건이 넘는 사기 거래를 잡아낸다면서요.

"맞아요. 이분들이 이렇게까지 일을 잘할 줄이야…. 장애우권익연구소에서 직원 추천을 받았는데 거기서 그래요. '이분들을 위한 일을 따로 만들지 마세요. 남들 시키는 일 그대로 시키고 못하면 못한다고 혼내세요. 제대로 못 하면 해고하시고요. 그래야 이분들이 벽을 넘습니다.' 그 말대로 했죠. 그런데 다들 일을 정말 잘하더라고요. 이분들 덕분에 사기 거래가 줄어들었어요."

전국 고물상을 '중고나라'로

올 1월 이씨는 '비밀의 공구'를 론칭했다. 싸고 품질 좋기로 소문난 물건을 짧은 시간에 팔아치우는 공동구매 쇼핑몰이다. 이곳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검색해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 먼저 입장한 회원에게 초대를 받고 가입 절차를 밟아야만 물건을 살 수가 있다. 다른 곳에서는 팔지 않는 싼 물건을 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비밀의 공구' 회원은 순식간에 10만명으로 불어났다.

―요즘은 전국 고물상 분들과 만난다던데요.

"우리나라 곳곳에 크고 작은 고물상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몇백 곳은 돼요. 그런데 다들 갈수록 '장사하기 어렵다'고들 하세요. '중고나라'에서 이분들이 일하면 잘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헌옷이나 헌책, 폐가전을 치워주고 대신 팔아주는 사업을 해보시라고 권했죠. 서비스 시작하자마자 터졌어요. 요즘 이 고물상 기사분들 돈 잘 버세요(웃음). '중고나라 덕분에 살 만해졌다'고 하시는 말 들으면 기분 좋죠."

―'중고나라'도 그렇고, '비밀의 공구'도 그렇고…, 결국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장사하고 돈 벌도록 판을 짜준 셈 아닙니까.

"맞아요. 장사라는 게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녜요. 다들 '혼밥' 하고 '혼술' 하는 시대지만, 장사는 그렇게만 해선 이뤄지지가 않아요. 반드시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서 부딪혀야만 이뤄져요. 전 어쩌면 사람들을 골방에서 나와서 만나도록 하는 데 재능이 있는 건지도 모르죠."

―만남이라는 게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죠.

"그럼요." 이씨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때론 괴로운 일이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다들 만나고 부딪혀야만 세상이 돌아가는 걸요. 바퀴가 부딪치면서 삐걱거려도 그래야 움직이는 것처럼요. 어찌 됐건 우리는 앞으로 가야 하니까요."

―어머니는 '중고나라'가 어떤 곳인지 이해하시나요.

"아뇨." 그가 싱긋 웃었다. "아직도 거기가 뭐 하는 곳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하세요. 그냥 아들이 고물상 해서 돈 잘 버나 보다 하시죠(웃음)." 그 고물상이 꽤 사람 냄새 나는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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