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기억을 신는 신발, 그게 제 철학

이정구 기자 2017. 9. 23.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슈마스터 부츠 팩토리' 김슬기씨
부친 도우며 신발과 인연
美서 등산화 수선 알바 그때 재미에 푹 빠져
도봉산 입구에 매장내자 잘 고친다 소문 주문쇄도
성수동 가게 내고 수제화
부츠도 에이징해야 신는 게 더 멋집니다
아들·손자에게 물려줄 그런 기억의 신발 만들것

레저스포츠 강사였던 아버지는 1997년 외환위기로 직장 사정이 어려워지자 경기 고양시 집 근처에 작은 컨테이너 구둣방을 열었다. 모두 어려웠던 시절이라 주변 구둣방 텃세가 심했다. 가게를 찾아와 다른 곳에서 장사하라며 욕설하고 훼방 놓았다. 고교생 아들은 부모를 도우려고 일요일이면 고양과 파주의 학교들을 돌며 조기축구회 회원들의 낡은 축구화를 거둬 왔다. 서울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서 부츠 수선과 독특한 디자인의 수제화 만들기로 소문난 김슬기(37)씨 이야기다. 김씨는 "2002년 월드컵으로 축구 인기가 오르지 않았으면 아버지 구둣방은 문을 닫았을 것"이라며 "하루에 학교 50군데를 돌면서 조기축구 회원들한테 축구화를 걷어다 주중에 '뽕(밑창)갈이'를 해서 그다음 일요일 아침에 돌려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대학을 다니며 틈틈이 아버지 일을 돕던 김씨는 2004년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신발 수선에 뛰어들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갔던 김씨는 요세미티 국립공원 근처에서 등산화 수선 아르바이트를 하다 신발 고치는 재미에 빠졌다고 했다. 김씨는 "많이 낡았는데도 자신에게 길든 신발을 계속 고쳐 신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고 말했다. 공무원이나 평범한 회사원이 되길 바랐던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부산에 있는 신발 관련 학과로 학교를 옮겨 공부했다.

김슬기 슈마스터는 인터뷰 전날 새벽 재봉틀을 다루다 손을 찧어 엄지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살은 뭉개졌지만 뼈는 이상이 없어 작업할 수 있다”고 했다. / 성형주 기자

김씨와 아버지는 축구화 수선에 이어 등산화 수선을 시작했다. 등산화 수선 주문이 늘자 2006년에는 도봉산 등산로 입구에도 매장을 냈다. 산행을 끝난 등산객 등산화를 받아 일산 공장에서 수선해 택배로 보내주거나 다음번 산행 때 찾아가게 했다. 등산화를 제대로 수선하기 위해 희귀한 신발 제조 장비를 들여오고, 기능성 제품으로 유명한 '비브람' 밑창은 이탈리아 본사에 직접 연락해 직수입했다. 등산화 수선 잘하는 곳으로 소문이 나자 컬럼비아, 코오롱스포츠, K2 같은 국내외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수선 의뢰가 들어왔다. 수선이 필요한 등산화가 하루 100켤레 가까이 들어왔고 사업도 커졌다. 매장 이름은 신발 장인을 뜻하는 '슈마스터'로 정했다.

김씨는 2015년 성수동에 가게를 새로 냈다. 등산화 수선을 전문으로 하는 일산 공장과 달리 부츠 수선과 수제화 작업을 하면서 '부츠 팩토리'란 이름을 덧붙였다. 고기를 숙성시켜 더 깊은맛을 내는 것처럼 부츠도 '에이징(숙성)'하면서 신는 것이 더 멋지다는 게 김씨의 '구두 철학'이다. 기술을 배우려고 무작정 일본에 있는 장인을 찾아가기도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신발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소개하고 부츠 고치는 모습을 보며 눈동냥을 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부츠 수선법도 손에 익을 때까지 계속 돌려봤다.

기연(奇緣)도 있었다. 유명 부츠 브랜드 '레드윙'은 2012년 국내 매장을 열면서 김씨에게 수선을 맡겼는데, 이 회사 아시아 지사장 스즈키 미치야씨가 그때부터 김씨의 멘토가 됐다.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본사 공장을 견학시켜주고 김씨가 구하기 어려운 도구나 재료 구매도 연결해줬다. 김씨는 시간과 돈이 더 많이 들더라도 최대한 원래 신발 제작에 쓰인 재료와 도구를 사용한다. 최근 나온 장비와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도 비슷한 작업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쉬운 길을 두고 왜 돌아가느냐고 묻자 김씨는 얼마 전 고쳤다는 등산화 이야기를 꺼냈다. 낡은 등산화 한 켤레를 든 여성이 찾아와 "등산을 좋아하셨던 아버지께 첫 월급으로 선물했던 신발"이라며 "병을 앓다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했는데 차마 버릴 수 없어 깨끗이 고쳐 아버지 모신 봉안당에 같이 두고 싶다"며 신발을 맡겼다고 한다. 김씨는 "30년 전 대학 등산 동아리에서 처음 신었던 등산화를 다시 신고 싶다는 중년 회사원, 아버지가 물려주신 통가죽 부츠를 잘 신고 아들에게 다시 물려주고 싶다는 청년처럼 사연 있는 신발이 많아 그 기억이 잘 이어지도록 원래 모습 그대로 고쳐주고 싶다"고 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