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전학자의 브랜드 인문학] (14) 도발적 스트리트 패션, 일상을 예술로 물들이다
[경향신문] ㆍ이브 생 로랑
■ 시(詩)가 명품이 되고 명품이 시가 되어
브랜드는 오브제다. 오브제는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소재. 이브 생로랑은 그 소재를 찾아 자신의 패션에 도입한 전위적 예술가였다. 이런 디자이너의 패션은 시가 되고 예술이 된다. 기존 패션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이브 생로랑. 그는 상류층 패션의 고정관념에 극도의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꼈다. 결국 그는 상류층의 패션(오트쿠튀르)을 넘어선 기성복 패션(프레타포르테)의 선구자가 되었다.
프라다, 카르티에, 지방시, 구찌
아르마니, 베르사체, 이브생로랑
그 외 내가 계보도 모르고
유행도 모르고 가치도 모르고
이름조차 모르는 그녀의 시들
그녀의 시들, 그녀를
허황되고도 아름답게 보이게 하네
백화점 명품관은 그녀의 시집
때때로 그녀는 삶을 고양시키려
그곳을 기웃거리네
(…)
허황되고도 아름다운 그녀
그녀의 머리는 시로 가득하네.
― 황인숙, ‘시(詩)’에서
이 시에서는 명품이 시가 되고 시가 명품이 되는 세계가 소개된다. 명품 브랜드를 열거한 화자는 급기야 그것을 ‘그녀의 시들’이라 부른다. ‘그녀의 시집’은 당연히 그 명품이 모여 있는 백화점. 명품을 시로 부른 이유는, 그저 명품이 ‘허황되고도 아름답게’ ‘삶을 고양’시키기 때문이란다. 화자에게 시가 그렇듯 명품도 그랬다. ‘허황되고도 아름답게’ ‘삶을 고양’시키는 또 하나의 시가 이브 생로랑에게는 패션. 시를 일종의 예술로 본다면, 명품은 시가 되고 예술이 된다.
■ 오트쿠튀르를 뒤로하고 스트리트 패션으로
1957년 파리.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21세의 이브 생로랑은 그 후임을 맡게 되었다. 그는 1955년부터 디올의 보조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쌓아온 경력뿐만 아니라 각종 디자인대회에서도 수상을 통해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상태. 하지만 오트쿠튀르의 대표였던 디올을 이끌었음에도 이브 생로랑의 마음은 거리(스트리트)로 향하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문화를 전파하면서 새로운 창조와 소비의 주역이 되었던 1950년대 말. 거리에는 각양각색의 새로운 스타일이 즐비했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은 누구에게 질세라 숨 가쁘게 그것을 좇고 있었다. 바로 이런 스트리트 문화를 이브 생로랑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1960년 드디어 생로랑은 디올의 디자이너로 ‘비트룩’을 제작한다. 이 의상은 비트족의 스트리트 패션을 담아낸 것. 비트족은 1950년대 전쟁 이후 물질주의 환경 속에서 보수화된 기성 질서에 반발해 저항적인 문화와 기행을 추구했던 일단의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 이들은 개인이 거대한 사회 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되는 것에 대항하며 시대정신을 거부했다. 하지만 오트쿠튀르의 하나였던 디올의 상류층 마니아들은 이브 생로랑의 ‘비트룩’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의상을 저속하게 느꼈고 자신들을 향한 저항으로 여기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비트룩’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이브 생로랑의 디올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 패션의 아방가르드와 오브제
1962년 이브 생로랑은 자신의 이름으로 간판을 내걸고 ‘패션의 예술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그런데 이브 생로랑의 ‘패션 예술’에는 아방가르드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아방가르드(Avant Garde)’의 ‘아방’은 ‘앞’을, ‘가르드’는 ‘경비대’를 뜻하기에 이 단어는 ‘앞을 지키는 부대’, 즉 ‘전위대’라는 의미다. 19세기 말에 이 용어는 군사적 의미에서 예술적 의미로 바뀌어 “자신의 시대보다 앞서려는 예술 운동 내지 문화 운동”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던 중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이후 작가들은 전쟁 비판과 함께 과거의 타성적인 작업, 그러니까 기존의 언어, 문학, 회화, 연극 체계를 거부하며 새로운 것을 찾는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아방가르드는 본격적으로 ‘전위예술’을 뜻하는 말로 자리매김한다. 이들은 “모든 것이 예술이고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라는 기치 아래 일상을 예술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일상을 예술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작품 소재의 확대, 그러니까 오브제의 확장이 ‘일상의 예술화’에 근간이 된다. ‘오브제’란 본래 물건, 물체, 객체 등의 뜻을 지닌 프랑스어이지만, 아방가르드, 특히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서 오브제란 개념에 독특한 의미를 덧붙여 자신들의 예술 기법으로 삼았다. 이들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우표나 상표, 신문, 잡지, 벽지, 입장권, 계산서, 악보, 천, 쇠붙이, 나뭇조각, 톱밥, 모래, 나뭇잎, 사진 등 다양한 조각들을 붙여 전혀 다른 물체끼리 조합함으로써 색다른 효과를 노렸던 것. 1960년대에 유행한 팝아트 역시 테크놀로지나 대중매체를 오브제로 활용하여 나타난 예술이었다.
예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상의 소재를 본래의 기능에서 떼어내 서로 연결시키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의미가 생긴다. 이때 일상적인 물건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면서 예술 작품이 된다. 작품의 소재가 된 오브제는 기존에 사용되던 기능과 의미와 대립한다. 예를 들자면,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에서, ‘샘’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받은 변기가 바로 오브제다. 이런 작업의 결과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무너지게 되었고, 급기야 ‘예술의 일상화’와 ‘일상의 예술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 리브고슈: 젊은이들을 위한 오브제
1966년 이브 생로랑은 자신의 오트쿠튀르 매장과는 별도로 기성복 부티크 ‘리브고슈’를 개장한다. ‘리브고슈’란 ‘왼쪽 강변’이라는 뜻으로 파리 센강 왼편 보헤미안이 살았던 지역을 말한다. 그 거리는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이 거리에서 영감을 얻은 생로랑은 ‘문화적 혼성’이 파리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 파급될 것임을 확신했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저급문화로 치부되던 온갖 오브제가 기존의 고급문화로 끊임없이 침투할 것을 직감했던 것. 이런 사실은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아방가르드의 세계적인 전파 현상을 생로랑이 직시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실제로 이 시기에 아방가르드는 ‘일상과 예술의 조화’를 외치면서 유럽은 물론 미국과 아시아에까지 신속하게 전파되어 전 세계적인 예술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브 생로랑이 자유자재로 활용한 오브제들은 다음과 같다. 남성 정장 스타일의 여성용 ‘르 스모킹’(턱시도의 프랑스 용어, 1966), 핀 스트라이프 무늬의 ‘팬츠슈트’(1967), ‘지바고룩’, 노브라의 ‘시스루룩’, ‘사파리룩’과 ‘버뮤다쇼츠’, ‘카르멘룩’(1968), 수가 놓인 활기 있는 ‘집시룩’(1969)의 미니스커트, 날씬하게 드리워진 매혹적인 ‘실크숄’(1970), ‘러시아’ 컬렉션의 ‘노블 페전트룩’(1976), ‘몽골룩’(1977)의 모피 ‘트리밍코트’, 금색 가죽 ‘트렌치코트’(1980) 등을 선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생로랑은 당시 예술가들의 오브제에 영향을 받은 의상들도 선보였다. ‘옵아트룩’(1963), ‘몬드리안드레스’(1965), 앤디 워홀의 영향을 받은 ‘팝아트룩’(1966), 브라크를 모티브로 한 ‘가운’(1984), ‘피카소에 대한 오마주’ 컬렉션에서 나온 ‘할리퀸드레스’(1979), 호화로운 ‘마티스’ 이브닝가운(1981), ‘큐비즘에 대한 오마주’ 컬렉션(1988) 등이 그의 대표적 오브제들이었다. 그가 영감을 받은 작가는 몬드리안, 고야, 벨라스케스, 피카소, 달리, 브라크, 마티스, 반 고흐, 워홀, 톰 위셀만 등이었으며, 그들에게서 줄기차게 오브제를 찾아냈다.
생로랑은 거리에서 우연히 본 오브제와 예술가들의 오브제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의미를 재창조해냈다. 앤디 워홀도 이브 생로랑의 이 점을 높이 평가한다. 생로랑이 오브제를 바꾸어가며 디자인을 했다는 것은 아름다움도 변하고 그것으로 꾸미는 신체도 변할 수 있으며, 정체성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시 창작과 오브제, 그리고 패션
오브제는 아방가르드의 예술과 생로랑의 패션에서뿐만 아니라 시가 창작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시적 언어는 일상 용어였지만 일단 본래 기능에서 절단되어 새롭게 구성된 언어와 연결되면, 그동안 포착되지 않은 세계의 틈새를 볼 수 있게 만든다. 다음의 시로 생각해 보자.
한 꼬마가 아이스케키를 쭉쭉 빨면서
땡볕 속을 걸어온다
두 뺨이 햇볕을 쭉쭉 빨아먹는다
팔과 종아리가 햇볕을 쭉쭉 빨아먹는다
(…)
전엔 나도 햇볕을
쭉쭉 빨아먹었지
단내로 터질 듯한 햇볕을
지금은 해가 나를 빨아먹네.
― 황인숙, ‘아, 해가 나를’에서
‘아이스케키’나 ‘햇볕’, ‘빨아먹는다’는 일상용어다. 그런데 이 용어들이 같이 연결되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된다. 화자는 뜨거운 낮 햇볕을 받으며 얼음과자를 먹는다. 그런데 시인은 ‘두 뺨’과 ‘팔과 종아리’가 ‘단내로 터질 듯한 햇볕을’ ‘빨아먹는다’라고 엉뚱하고 발칙하게 연결했다. 뜨거운 열기를 내는 햇볕은 단내로 터질 듯한 ‘아이스케키’다.
여기서 의미의 반전이 생긴다. 이때 시인은 얼음과자의 찬 기운과 햇볕의 열기를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에 얼음과자에서 풀풀 나는 단내를 햇볕의 열기와 연결시킨 것. 더워도 얼음과자에 정신이 팔린 꼬마는 온몸으로 ‘땡볕’을 ‘쭉쭉 빨아먹는다’. 하지만 “지금은 해가 나를 빨아먹네”라면서 시인은 이제 조금만 더워져도 숨이 턱에 닿는 늙음을 경험한다. 그것은 신세계를 못 보고 오히려 거기에 치여 힘겨워하는 지루한 인생. ‘빨아먹네’라는 일상의 언어가 얼음과자에서 햇볕으로, 또 나를 대상으로 하면서 언어의 본래 의미가 바뀐다. 거기서 전혀 생각지 않았던 세계를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시인이 일상에서 기호와 상징을 따다가 변형시켜 그 틈새를 보게 하듯이 이브 생로랑은 오브제들을 가져다 새로운 것, 틈새에 있는 것을 창조했다. 그래서 그의 패션은 항상 새로운 사물로 연결되게 한다.
앞서 소개했던 황인숙 시인의 ‘시(詩)’로 돌아가 보자. “허황되고도 아름다운 그녀/ 그녀의 머리는 시로 가득하네.” 화자인 ‘허황되고도 아름다운 그녀’는 ‘제 주제에 사치한다’는 말을 듣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식비도 궁하던 시절 한 사람은 고픈 배를 대충 때워 가며 새 시집이 나올 때마다 사고 또 사다가 읽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제 주제에 사치한다’고 수군거린다.
남이 보기에 그것은 분명 사치다. 바로 그 시절 또 한 사람은 몸이 부서져라 지나친 아르바이트로 본인이 사고 싶은 명품들을 악착같이 모았다. 그의 손에 닿는 물건마다 제법 명품으로 폼이 날 즈음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그에게 핀잔을 놓았다. ‘제 주제를 알아야지.’ 남이 보기에 이것도 분명 사치다. 시인은 ‘시(詩)’의 서두에 의미심장하게 박완서 선생님의 저 문장을 인용하면서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가 아니었을까. ―박완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치’하는 이 땅의 시인과 멋쟁이들을 정작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시도 사치고 명품도 사치지만, 그것들은 모두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위에 소개된 사람들은 사치로 보이는 시집, 그리고 명품 때문에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했다. 시집과 명품에서 다른 사람은 못 보는 세계를 보았기 때문. 현실의 한계에 맞닥뜨릴 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세계 속 또 다른 틈을 못 보는 일상은 지루하다. 이런 답답한 일상을 시가 됐든 패션이 됐든, 그것을 예술로 바꾸려는 삶에 우리는 침묵할 뿐이다. 그들은 한계를 극복할 몸부림을 하는 것이니까. 황인숙 시인의 말처럼 ‘허황되고도 아름답게’ ‘삶을 고양’시키고 있으니까. 그들의 ‘사치’가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니까. 당신은 무슨 꿈으로 그것을 극복하는가.
이브 생로랑은 유독 많은 예술 작품을 자신의 패션에 나타냈던 디자이너다. 또한 하급 문화로 취급되던 스트리트 패션을 과감히 도입한 전위적 예술가였다. 이런 디자이너의 명품은 과연 시가 되고 예술이 된다.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며, 가난이 문학이 되고 문학이 가난이 되는, (거리)예술이 패션이 되고 패션이 (거리)예술이 되는 세계, 이브 생로랑이 틈새로 본 우주였고, 무용한 듯 보이는 사치를 일삼는 자들의 천국이었다. 그들에겐 일상이 예술이다.
<김동훈 서양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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