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불운은 언제 끝날까

송창섭 기자 2017. 9. 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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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 (28)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세 자녀들 '신사업' 발굴 경영수업 중

현대그룹은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계열사 49개를 둔 국내 최대 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대 이름은 재계 순위 50위권 안에서도 보기 어렵다. ‘형제의 난’이 터져 나오면서 2000년 현대차그룹, 2002년 현대중공업그룹이 그룹에서 분리됐다. 2001년에는 유동성 위기로 현대건설·현대전자·현대투신·현대정유 마저 떨어져 나갔다. 2003년 그룹 총수인 정몽헌 전 회장이 대북송금 관련 조사를 받던 중 타계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정 전 회장의 부인이다. 현대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8년 박왕자씨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됐다. 이로 인해 현대아산은 현재까지 1조1127억원의 매출 손실을 보고 있다. 2015년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로지스틱스)가 롯데그룹으로 넘어가더니 지난해에는 그룹의 양대 축이었던 현대상선과 현대증권의 주인마저 산업은행과 KB금융지주로 바뀌었다. 올 상반기 기준 계열사 수는 13개에 불과하다.

현정은 회장(오른쪽)과 맏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 사진=연합뉴스

 

반얀트리 신관동 일부 ‘위반건축물’에 올라

하지만 최근 현대그룹 임직원들은 하나같이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매년 대기업 자금난이 거론될 때마다 현대그룹은 여기에 단골메뉴처럼 이름이 거론됐다. 한 직원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회사채 만기가 곧 다가오는데 사정이 괜찮으냐는 전화를 거의 매년 받아왔는데,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등을 판 뒤 자금 상태가 좋아지면서 지금은 오히려 새롭게 다시 출발하자는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올 7월 서울 종로구 연지동 본사 사옥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행사한 것은 최근 달라진 상황을 잘 말해 준다. 이 건물은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면서 2012년 코람코자산운용에 판 것이다. 만기가 되자, 우선매수 기회가 왔다.

현재 이 건물에는 주력사인 현대엘리베이터를 비롯해 현대아산·현대유엔아이(U&I)·현대경제연구원 등이 입주해 있으며 작년까지 계열사였던 현대상선이 터를 잡고 있다. 우선매수권 행사가는 2500억원으로 이를 위해 현대그룹은 9월10일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성공시켰다. 그룹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5년간 임차 계약을 맺어 안정적인 임대가 보장돼 있으며, 전 계열사를 집결시켜 시너지를 내자는 의견이 많아 우선매수권 행사를 결정했다”고 매입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현대엘리베이터다. 지난해 매출 1조7588억원(이하 연결회계 기준), 영업이익은 1816억원이었다. 시장점유율은 43.1%로 국내 1위다. 지주사인 현대엘리베이터는 그동안 계열사 부실과 국내 주택경기 성장세 둔화, 해외시장 경쟁력 약세가 성장의 발목을 잡아왔다. 하지만 현대상선 등 부실 계열사들과의 관계가 끊기면서 오히려 우려가 줄었다. 국내 주택경기는 신규 주택보다는 재고 주택 엘리베이터 보수 시장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세 번째 약점인 해외시장 약세는 단기간 내 해결되기 힘든 문제다.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는 8.7%의 지분을 가진 현정은 회장이며, 자녀들의 지분은 모두 1% 미만이다. 현 회장 다음으로는 모친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6.1%로 많다. 법인으로는 8.5%를 가진 현대글로벌이 가장 크다. 이 회사는 2011년 8월 현대유엔아이와 인적분할을 해 생겨났다. 현대글로벌은 현 회장이 지분 91.3%로 가장 많고, 현 회장의 장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41)가 7.89%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한때 스위스 엘리베이터 회사 쉰들러와 지분 경쟁을 벌였지만, 현재 현 회장 우호지분을 합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업종의 특성상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과거 찬란했던 현대그룹의 영광을 현대엘리베이터로 재현해 내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대북사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현대아산의 추락은 그룹 측면에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고 난 이듬해 설립된 현대아산에서 금강산 관광은 핵심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사업은 중단됐으며, 최근 남북관계 경색으로 쉽사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13년 1603억원이었던 매출은 2016년 910억원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72억원이다. 중단 직전까지 1084명에 달했던 직원 수는 현재 179명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다 보니 현대아산은 신사업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현대아산은 개성공단 조성 실적을 갖고 있다. 때문에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주택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한국과 중국을 잇는 위동훼리·회동훼리·단동훼리 등 3개 크루즈에 선상 면세점을 세웠다. ODA(공적원조) 위탁 용역사업과 크루즈 전세선 사업, 크리스탈 가이저 탄산수 국내 독점 사업들도 벌이고 있다. 주요 국제회의와 인센티브 행사를 유치하는 마이스(MICE) 사업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현정은 회장 취임 이후에도 계열사 이탈은 계속됐다. 하지만 유일하게 인수·합병(M&A)을 통해 신규 사업을 추가한 것이 있다. 바로 호텔업이다. 2012년 현대그룹은 쌍용건설로부터 6성급 호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반얀트리)을 1600억원에 사들였다. 유동성 위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고가에 매입해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반얀트리는 겨우 흑자전환에 성공한 수준이다. 반얀트리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엘앤알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6억7300만원에 그쳐 한 해 전 5억942만원보다 약간 늘어났다. 매입가를 감안하면 운영 실적은 기대 이하다. 이 때문에 반얀트리 인수는 현 회장의 경영능력을 문제 삼고자 하는 쪽의 좋은 공격거리가 되고 있다. 사업 적합성 판단부터 인수가격 및 운영까지 모든 것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한 호텔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위치가 좋더라도, 객실수가 50개도 채 되지 않는 상태에서 고가의 회원권만으로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을 잘 모르고 결정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강레오 셰프와 함께 컴템포러리 한식 레스토랑 '페스타 다이닝'을 오픈하고 웨딩 쇼케이스를 개최하는 등 복합 엔터테인먼트 컴플렉스로 발전시켜 수익성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행히 반얀트리 모기업인 현대엘앤알은 올 5월 사모사채 560억원(금리 8.955%)을 상환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만 50억원에 이른다. 또 반얀트리 특성상 부채의 79.1%가 비유동부채(회원 보증금, 장기선수수익)인 데다 유동부채의 73.1%를 상환해 당장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런 가운데 반얀트리 신관동은 현대그룹에 인수되기 전인 2011년 6월9일 수영장 뒤편 창고를 불법으로 증축해 관할 관청으로부터 위반건축물에 오른 것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당시 위반건축물에는 창고·주차장·사무실·테니스장·수영장 등 여러 시설이 이름을 올렸다. 이후 관련 시설물을 자진 철거해 일부 해제됐지만, 수영장 등 일부 시설은 여전히 위반건축물 명단에 올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 시사저널 미술팀

 

남북 화해무드 조성되면 실적 개선 기대

현정은 회장은 남편인 고(故) 정몽헌 회장과 사이에 1남2녀를 뒀다. 맏딸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다. 정 전무는 2004년 현대상선 재경부 직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현재는 전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정 전무가 근무하는 현대유엔아이는 현대상선 시스템 관리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공급하는 회사다. 그렇다 보니 매출의 상당 부분을 현대상선에 의존했다. 2016년 매출액은 1081억원이었다. 현대유엔아이 재경부에는 둘째 딸인 정영이 차장(34)도 근무하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정영선씨(33)는 현대투자파트너스에서 이사로 있다. 현대투자파트너스는 신규 투자를 검토하는 벤처캐피털 성격의 계열사다. 매년 신년사에서 현 회장은 “사업 안정성 확보를 위해 핵심사업 외에 사업구조 다변화에 힘쓰고, 미래 핵심 사업으로 성장할 신사업 발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룹 내에서는 이 업무를 현대투자파트너스가 맡을 것으로 본다. 아직은 직원 수가 8명 남짓으로 규모가 작다. 정영선 이사에 대한 그룹 내 반응은 ‘좀 지켜보자’는 쪽이다. 다만 신사업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확실한 투자처만 생길 경우 그룹의 역량이 총동원될 가능성은 높다. 이를 위해 최근 자본금도 100억원으로 늘렸다. 동시에 금호리조트에 대한 지분 투자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내부에서는 정 이사가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수업을 쌓은 뒤 본격적인 후계 경영에 나설 것으로 본다. 현대경제연구원과 현대종합연수원도 현대그룹 계열사로 있다. 

현대그룹 가계도

現 회장 세 자녀 모두 평범한 집안과 결혼​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잘나가는 재벌가 황태자였다. 형제들 중에서도 외모가 부친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쏙 빼닮은 데다 경영 스타일도 여러 면에서 비슷했다. 이 때문에 정 전 회장은 1998년 현대그룹 공동회장에 올랐으며, 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단독 회장이 됐다. 하지만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2003년 타계했다. 현대그룹의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후 기업 경영을 책임진 부인 현정은 회장은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모친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은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의 누나다.

현 회장의 맏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41)는 1977년생으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는 신두식씨와 결혼했다. 둘째인 정영이 현대유엔아이 차장(34)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12년 현대유엔아이에 입사했다. 그 역시 평범한 직장인과 올해 결혼했다. 막내아들인 정영선 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33)도 누나 정 차장보다 한 해 앞선 지난해 일반인과 결혼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가문보다는 당사자들의 선택을 중시하는 현대가(家) 가풍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세 자녀 모두 회사 내에서 평범한 직장인처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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