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얀센 다인저 "남편이 받았던 선물 '율'..윤이상은 나에게 운명같은 이름"

2017. 9. 1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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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이상이 한국 수감생활중 작곡한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율(律)’
초연했던 한스 다인저의 아내 니나 얀센-다인저가 윤이상 탄생 100돌 기념 연주회서 연주

클라리네티스트 니나 얀센 다인저(오른쪽)와 재독 작곡가 조은화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대 교수(왼쪽)가 17일 통영국제음악당 앞에서 만났다. 니나 얀센 다인저는 19일 통영과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윤이상 탄생 100돌을 기념하는 연주회에서 윤이상의 실내악 <율>과 조은화 교수가 윤이상에 헌정한 <사람, 바다를 품다>를 연주한다. 조은화 제공

지난 17일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고 윤이상(1917~1995)이 태어난 지 꼭 100돌이 된 날이다. 그는 지난 1967년 6월 박정희 독재정권이 조작한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의 누명을 쓰고 독일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강제 납치되어 모진 고문과 수형생활을 당했다. 이 ‘상처받은 용’은 차가운 독방에서도 <나비의 미망인>, <율>, <영상> 등을 작곡하여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그러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죄르지 리게티, 한스 베르너 헨체,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지그프리드 팔름, 한스 다인저 등 세계적인 예술가 160여명이 구명에 나섰다. 특히 실내악곡인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율(律)>은 윤이상이 그의 구명활동을 벌였던 당대 최고의 클라리네티스트 한스 다인저(83)를 위해 1968년 2월 작곡해 그해 7월 독일 에를랑겐에서 한스 다인저(클라리넷)와 베르너 아이더(피아노)의 협연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 <율>이 주한독일문화원과 윤이상 평화재단이 윤이상 탄생 100돌을 기념해 공동으로 개최하는 음악회의 대표곡으로 선정되어 19일 통영국제음악당과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신홀에서 모르겐슈테른 트리오와 니나 얀센-다인저(45)의 협연으로 다시 선보인다. 특히 클라리네티스트 니나 얀센-다인저는 1968년에 <율>을 세계 초연했던 한스 다인저의 아내이어서 연주회가 더욱 뜻깊다. 지난 17일 통영을 방문한 니나 얀센-다인저를 이메일로 만났다.

“윤이상의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이 연주자에게 굉장한 영광입니다. 특히 <율>은 윤이상이 내 남편을 위해서 작곡한 작품이기 때문에, 제가 이 특별한 곡을 연주함으로써 작품의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점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두 사람의 연주가 100퍼센트 같은 소리를 낼 수는 없지만, 이 음악에 대한 기본적 견해는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니나는 부부가 번갈아 <율>을 연주하는 것이 “우연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운명이란 “윤이상의 음악에 대한 우리 두 사람의 공통된 사랑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2005년 7월에도 윤이상 서거 10주년 기념으로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음악 연주단체인 ‘앙상블 모데른’과 함께 초청되어 윤이상의 <8중주>를 연주했다. 그는 “당시에는 서울에서 단 하루만 일정이 잡혀서 공항과 호텔, 공연장밖에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서울과 윤이상의 고향인 아름다운 통영에서 닷새 동안 지낼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건강이 좋지 않아 함께 오지 못해 못내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윤이상은 영하의 날씨에 감옥 바닥에 앉아 <율>을 작곡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아직도 저로서는 믿을 수 없는 대단한 일입니다. 그는 아주 끔찍하고 절망적이며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조건에서 이런 위대한 걸작을 남겼어요. 이 작품은 대단한 열정과 매혹적인 소리를 표현합니다. 주요 음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이런 음악 언어는 한국 전통음악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윤이상이 독일인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1967년 한국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되었을 때 수많은 독일의 예술가가 한국 정부에 “판결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감옥에 갇힌 윤이상에게 작품을 위촉했던 것은 “그만큼 독일인이 윤이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이상이 석방된 뒤에 독일로 돌아가 남편 한스 다인저가 연주하는 <율>을 듣다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숨은 일화도 소개했다.

“윤이상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조화’와 ‘화해’를 끊임없이 추구했어요. 무엇보다도 ‘진정성’과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결핍되어 있는 ‘겸손함’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작곡자로서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 훨씬 앞섰으며, 유럽인은 윤이상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요.”

클라리네티스트 니나 얀센 다인저(오른쪽)와 재독 작곡가 조은화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대 교수(왼쪽)가 17일 통영국제음악당 앞에서 만났다. 니나 얀센 다인저는 19일 통영과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윤이상 탄생 100돌을 기념하는 연주회에서 윤이상의 실내악 <율>과 조은화 교수가 윤이상에 헌정한 <사람, 바다를 품다>를 연주한다. 조은화 제공

그에게 이번 연주회에서 즐겁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정보를 물었다. 그러자 “아무런 선입견 없이 콘서트에 와서 오로지 두 귀와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음악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번 연주회에서 윤이상의 <율> 말고도 작곡가 조은화(44·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대 교수)씨와 요하네스 모츠만(39)이 주한독일문화원과 통영국제음악재단으로부터 특별 위촉받아 작곡한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사람, 바다를 품다’>와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한계점 아래’>도 세계 초연한다. 작곡가 조은화씨는 2009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콩쿠르 역사상 여성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작곡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조국에서 추방된 윤이상이 평생 그리워했던 통영의 바다와 자신의 고향인 부산 바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깃든 진도 앞바다를 모티브로 <사람, 바다를 품다>를 작곡했다고 한다. 그는 “바다를 보며 우리 가족들을 생각하듯 윤이상의 바다, 세월호의 바다를 잊지 않기를, 그 기억들이 잊히지 않고 깨어있기를, 그리고 다른 차원으로 승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율>과 <사람, 바다를 품다>는 통영과 서울 연주 이후에도 23일 대만에서 열리는 ‘이노베이션 시리즈 2017’의 개막공연, 내년 1월 베를린에서 열리는 현대음악제인 울트라샬 페스티벌에서도 니나 얀센-다인저의 연주로 선보일 예정이다.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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