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이유가 숱하게 생긴 가을 하동, 내 마음의 팔경

2017. 9. 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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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 갔다. 평사리들판이 보고 싶었다. 지리산 상공에 납작 떠 있을 달님도 그리웠다. 가을이 이미 당도해 있을 산촌에서 마지막 푸르름, 야생녹차밭의 이국적 풍경도 물론이다. 제주에서 서울 찍고 너덧 시간을 달려 구례를 지나 섬진강을 따라 화개면을 향해 달리는 19번 국도에서는 2017년 가을을 만나 인사도 나눴다. 새로운 시간을 만나는 것이야 일생을 통해 겪어야 할 일이지만 이번 여행은 남다른 여정이다. 그곳에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하동8경 중 제1경은 당연히 그곳의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의 알프스 하동. 하동군 악양면 일대는 슬로시티로 지정, 느림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느림보들이 이곳을 찾기엔 다소 멀고 깊은 느낌이다.
▶ 하동1경 | 하동 사람과 야생차밭

내가 제주에 사는 것을 친구들은 참 좋아한다. 인기 관광지에 아는 사람이 산다는 것은 현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시간대별 여행 포인트, 원주민이 좋아하는 맛집, 오일장 정보, 감성 돋는 민박, 카페 등 믿고 가볼 만한 정보를 득할 수 있음은 물론, 조금 조르면 최적화 된 루트까지 제안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성가실 때도 있지만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그 정도 서비스는 해드리는 게 우정이라는 생각이다. 친구들이 나를 가족에게 소개할 때 보통은 ‘제주에 이주한 서울 친구’ 정도이지만, 간혹 유난을 떠는 인간들은 ‘외할아버지’, 또는 ‘외할머니’(친할아버지 친할머니로 소개하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는 여전히 모계사회다)로 소개해 속을 뒤집어놓기도 한다. 아니, 지랑 나랑 동갑이거나 차이가 커봤자 열살 안팎인데 내가 왜 지 아버지야? 할아버지야 그렇다 쳐도 외할머니는 또 무엇인고? 암튼 제주에, 그것도 시골 구석에 절친이 있다는 든든함의 표현이니 타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 또한 전국 곳곳에 지인들이 살고 있어서 시시때때로 그들을 만나러 간 김에 여행을 다니거나,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친구와의 만남을 여정에 넣기도 하니까. 하동 여행은 몇 달 전부터 희망했던 일인데, 몹시도 더웠고 그 어느 해보다 몸을 써야 할 일이 많았던 지난 여름엔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리산 자락에서 산사나이와 함께 지내는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봄부터 평사리, 평사리 하더니 왜 오지 않냐고. 난 이 문자를, 고달팠을 산촌 생활의 거처 마련 작업을 일 단계 정도 마쳤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살고 있는 화개면 산자락은 우리나라 최고의 청정지역이다. 십리벚꽃길로 주로 알려져 있는 이 계곡은 야생차 산지이기도 하다. 하동군에서는 야생차는 물론 이 지역에서 다른 농사를 짓는 그 누구도 농약을 치지 못하게 관리한다. 어떤 작물이든 수확기가 되면 공무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와 일일이 시료 채취를 해 농약 살포 여부를 확인한다. 만일 농약을 조금이라도 사용한 흔적이 나올 경우 즉시 허가가 취소된다. 다른 농작물에도 농약을 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살포 과정에서 농약 성분이 야생차밭에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야생차밭의 청정 농법을 근거로 나는 하동 1경을 친구들과 더불어 야생차밭으로 지정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갖지 않았다. ‘그녀와 산사나이’는 그 화개 산자락에 작은 집 두 채를 짓고 살고 있다. 한 채는 남자가 5년 전에 홀로 들어와 지은 집이고 또 한 채는 여자를 위해 손수 지은 별서다. 그 집에 들어가려면 가파른 언덕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큰 길을 걸어가다 대나무숲 우거진 소로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동선이 마치 무릉으로 가는 길목같아 신비로운 느낌이었다(나는 무릉과 도원을 책을 통해 상상해 보았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며, 있다손 쳐도 근처에도 못가봤다). 마당엔 잔디가 곱게 깔려있고 커다란 바나나나무가 우뚝 서 있으며 현관 앞에는 삽살개와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묵줄을 한 채 있었다. 개야 그렇다 치고 고양이를 묶어놓은 이유는 동네 깡패냥이가 간혹 기웃거려 행여 가엾은 녀석이 멀리 달아날까봐 내린 조치라고 한다. 또 한 채의 집은 한 사람이 겨우 다닐 나무 계단 위에 있다. 그곳에는 카페 주방같은 공간과 차실이 있는 집, 그리고 부추, 배추, 고수 등 어느 정도 자라면 언제든 뜯어먹을 수 있는 푸성귀가 자라고 있다. 한 달 생활비가 50만원도 들지 않지만 최소의 생활과 미래를 위해 5월부터 10월까지 남자는 차밭에서 일해 돈을 모으고 여자는 사람에게 고마운 음식과 자연이 원리를 배워 훗날 그 지식을 세상과 공유하는 꿈을 꾸며 열공 중이다. 나같은 허당 속물은 생전 꿈도 꾸지 않은 일이지만, 막상 그렇게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나이 들어 지리산에 들어와 이런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실행 가능성은 제로지만.

평사리들판

▶ 하동2경 | 평사리들판

▶하동3경 | 한산사 백구

▶하동4경 | 최참판댁 할머니

하동에서의 첫 밤은 쌍계사 근처 한 리조트에서 지냈다. 민박을 구하기엔 준비가 부족했고, 친구 집에 머물기엔 민폐가 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어차피 저녁에는 원고 등 업무도 봐야 했으므로 와이파이 등 모든 시설이 원만한 리조트를 선택한 것이다. 예약은 하동의 그 친구들이 해 주었다. 동네 주민 특별 할인을 받았고 오랜만에 만난다며 숙박비도 그들이 내줬다. 거기다 문 닫을 준비하는 쌍계사 입구 청운식당에서 맛있는 사찰 식단에, 곡차(머리가 아프지 않은 동동주),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기막힌 된장찌개까지 얻어먹었으니 역시 가끔은 친구가 사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청운식당 주인 여자는 그날 밤 무슨 모임이 있었는지 두 번이나 가게를 비웠다. 친구들은 ‘어째, 손님 오면 받을까요?’라고 농을 건냈고, 여인은 ‘그러시등가’ 하며 되받아준다. 사하촌 식당이지만 마을 사람들끼리 나누는 정감 어린 대화와 신뢰를 보며 뭉클한 무엇이 올라온다. 동시에 친구들이 이 고장에서 어떤 인품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나는 굳이 방값, 밥값을 내가 내겠다고 강짜를 부리진 않았다. 그들이 베풀며 뿌듯했다면, 그것을 억지로 빼앗을 필요는 없는 일이다. 나 또한 받아서 고마웠으니 우린 모두 감사한 일을 주고 받은 게 아닌가. 또한 언젠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그들의 ‘선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였다. 물론 고맙고 말고…. 다음날 아침 난 친구에게 문자를 날렸다. 커피나 한 잔 얻어마시자고. 다시 찾은 산자락 도원에서 커피와 빵 두어 조각을 먹고 본격 여행길에 오르려는데, 두 사람이 말했다. “우리 정말 한가한데, 진짜로 할 일도 없는데, 동행합시다!” 하하하, 나도 시골 생활하는데, 시골집에 할 일이 없다는 건 지나친 겸손이지. 하지만 오랜만에 만났으니 사양할 이유 또한 없다.

평사리 들판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등장한 곳으로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평사리, 악양면 등이 궁금해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많아졌다. 그러자 군에서 ‘농사는 유지하되 전봇대 등 일체의 인공구조물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펴’ 단순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9월 초순 현재 들녘의 벼는 여전히 초록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9월 말쯤 황금색 풍경이 시작되면 더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평사리들판은 한 컷 사진에 풍경 모두 담을 수 있는 촬영 포인트가 중요하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한산사 앞 전망대와 활공장 꼭대기, 최참판댁 담장, 그리고 회남재를 알려주었다. 모두 들판과 그 옆을 흐르는 섬진강을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다는 한산사 앞에 오르니 그 모습이 제대로, 선명하게 보인다. 온통 녹색으로 뒤덮인 곳에 ‘대한민국 알프스 하동’이라는 문양을 새겨넣었는데, 글자와 그림만 흑미로 연출한 들녘아트이다. 전망대 뒤의 한산사는 알려지기로는 구례 화엄사와 창건 시기가 비슷하다고는 하나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한다. 당시 화엄사 스님 한 분이 중국의 악양 고소성과 지명이 같은 하동에 한산사를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중국 한산사 역시 절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시인 장계(張繼)가 ‘풍교야박(楓橋夜泊)’의 시를 읊어 유명해졌다고 한다. 중국의 한산사 풍경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하동의 한산사 풍경만 할까 싶기도 하다. 대부분의 고찰이 그렇듯, 한산사 역시 오랜 풍파에 무너지고 쓰러진 것을 1960년경 송상형 스님이 중창해 불사, 대웅전, 약사전, 삼성각 등의 전각이 오늘이 이르고 있다. 궁금해서 들어가보니 스님들은 다 어디 가고 없고 백구 한 마리가 격하게 반겨준다. 인사를 나누려고 쪼그려 앉아 손등을 내밀자 혓바닥으로 연시 핥는가 싶더니 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살짝살짝 깨물기 시작했다. 무심코 개밥그릇을 보니 단 한 톨의 사료도 보이지 않았고, 일순, 이시키가 날 밥으로 아나! 얼른 손을 빼고 말았다. 사람을 너무도 좋아하는 게 분명한, 개보살 백구를 나는 전망대, 한산사와 함께 내맘대로 하동팔경 3경으로 하기로 했다. 물론 2경은 평사리들판이다.

발길은 곧장 최참판댁으로 향한다. 소설에 등장한 최참판이라는 인물의 집과 이야기를 마치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지은 큰 집이다. 전통 한옥과 한국식 정원을 구경할 수 있고 숙박도 가능하지만 11월까지 운영하는 평사문학관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숙박은 이용이 중단된 상태다. 최참판댁을 구경하고 담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들녘과 저 멀리 섬진강의 모습도 좋았지만, 관람로 입구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할머니는 삶은 옥수수와 산채, 과실청 등을 팔고 계셨는데, 줄담배를 어찌나 맛있게 피우시는지,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서 옥수수 한 봉지를 샀다. 조금 거친 음성으로 가격과 구입을 권하는 할머니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없었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비슷한 질문을 던져댈까, 그러실만도 하겠다, 생각하는 찰나에 할머니가 한 마디 던지신다. “내가 귀가 먹어서 못알아듣소.”

관광객을 위해 지은 초가 흙벽보다 더 고운 피부색을 하고 계신 할머니를 나는 하동4경으로 옹립했다. 가을 최참판댁에 가는 여행자들은 꼭 이 할머니를 만나 무엇이든 한 봉지 사 주실 것을 권한다. 분명 지리산이 제비 한 마리 보내주실 것이다. 최참판댁을 나온 우리는 곧장 벌판으로 내려갔다. 평범한 논들이 반듯한 모습으로 있지만 특별히 볼 거리는 없다. 유명한 부부소나무 근처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을 읽으면 악양벌의 본명은 평사리들판이고, 무딤이들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딤이들’이란 이 들판과 섬진강 사이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에서 나온 말이다. 섬진강에 홍수가 나거나 남해에 물이 가득 차 수면이 높아지면 무시로 이 들판으로 물이 들어오고, 섬진강 수면이 낮아지면 다시 빠져나가는 것을 두고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물론 지금은 치수가 가능한 농업지역이 되었지만 말이다. 평사리들판을 일컬어 악양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중국에 있는 지명에서 가져온 것으로, 어감은 예쁘지만 우리 것은 아니다. 그 이름의 흔적인 악양루는 평사리들판 북쪽 끝 악양면 사무소 근처에 위치한다.

정성이 듬뿍 들어간 쌍계사 사하촌 청운식당 산채 식단

▶하동5경 | 구재봉 활공장

▶하동6경 | 콩사랑 차이야기 & 청운식당

평사리들판을 빠져나와 구재봉 활공장에 올랐다. 나는 전혀 몰랐던 곳으로 친구들의 권유에 의한 발길이었다. 원래 그들은 지리산 회남재를 권했었다. 회남재는 지리산 형제봉 근처에 있는 고개로, 조선 시대 때는 지리산 북쪽 함양, 산청 지역 사람들이 하동시장, 화개장터 등을 오가던 고달픈 길목이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청암면 묵계리와 악양면 등촌리를 잇는 루트로 안내되고 있다. 이곳이 회남재가 된 것은 조선의 학자 남명 조식이 지리산 유람을 마치고 이곳을 통해 되돌아 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지리산 종주를 밥먹듯 한 친구는 ‘회남재에서 내려다 보는 평사리들판이 길고 광활해 가슴이 벅찰 지경’이라고 말했지만 여러가지 여건 상 그곳에 가는 것은 포기하고 구재봉 활공장에 오른 것이다. 그것은 참 잘한 결정이었다. 구재봉에 오르니 평사리들판과 마을과 섬진강, 그리고 회남재와 천왕봉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구재봉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자동차로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서 하동과 지리산 일대를 조망하기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지닌 곳이었다.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남해 다도해까지 눈에 잡힌다고 하나 그날은 안개가 시야를 가려 뿌연 하늘과 바다만 아련하게 보일듯 말듯 할 뿐이었다.

구재봉을 내려간 우리는 화개천변 콩사랑 차이야기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현지인들이 애정하는 식당이다. 콩국수, 청국장, 손두부백반, 손두부찌개, 재첩국, 꽃게된장, 두부김치, 감자전, 간장게장, 산채비빔밥, 두부전골 등 모든 메뉴는 딱 내 취향! 전부 먹어보고 싶었으나 친구들이 주문한 손두부백반과 감자전을 토 달지 않고 먹기로 했다. 하기사 요즘 부쩍 줄어든 식사량을 생각하면 다른 메뉴는 커녕 두 가지 음식 전부를 비울 자신도 없지 않던가. 먼저 감자전이 테이블에 오르자 막걸리가 자동으로 당기는 걸 보면, 나 아직 쓸만한 걸까? ‘도란도란 정감을 나누다’라는 부제가 붙은 악양주조 정감생막걸리는 넘어가는 느낌이 부드러웠고 맛도 향도 담백했다. 이어서 나온 손두부백반의 콩국물과 두부의 부드러움에 홀짝 반해 더 이상의 음주는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이런 따뜻한 콩국물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만들어내는 것일까? 해서, 나는 어제 저녁에 갔던 쌍계사 아래 청운식당과 오늘의 콩사랑 차이야기를 하동6경으로 결정했다. 음식 맛은 극히 주관적이라는 게 맞는 말이긴 해도, 내 맘대로 하동6경에 오른 두 곳의 식당 음식맛은 누가, 언제 먹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올 품격있는 맛이라는 것을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 하동7경 | 삼신산 쌍계사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 주고 혼자 쌍계사를 찾았다. 아마도 대여섯번 째 방문인 듯 하다. 쌍계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에 들어가면 마치 보물찾기 하듯 호기심이 만발하기 때문이다. 번뇌니 해탈이니 따위를 생각할 겨를도 없다. 불교는 ‘모든 것은 다르지 않다’고 가르치면서도 ‘번뇌를 끊기 위해 수행에 정진하라’는 또 다른 가르침을 주고 있으니, 그 또한 알쏭달쏭 새로운 번뇌를 줄 뿐이다. 그저 묵묵한 것은 쌍계사를 두르고 있는 지리산 줄기와 거대한 숲과 나무들, 그리고 낮에도 달을 보여주는 푸르디푸른 하늘 뿐. 인간이 해탈의 경지에 이르면 무어 하나 달라지는 게 있긴 한 걸까? 성철 스님은 ‘무심이 곧 부처’라 했는데, 무심한 인간치고 상대에게 상처주지 않는 법이 없는데, 그냥 오지랖 떨며 사는 게 착한 삶은 아닌 건지, 번뇌니 해탈이니 생각할 겨를이 없어 좋다며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적묵당 마당에 올라 기어이 생각의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쌍계사 적묵당은 통일신라 문성왕 2년 서기 840년에 최초로 세워진 뒤 800년 뒤인 조선 인조 9년 벽암선사가 중건했고, 330년 뒤인 1978년 고산스님이 고쳐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람은 비바람 속에 소멸해가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거듭했으나, 행자를 거쳐 겨우 삭발식을 끝낸 ‘신입 스님’들이 수행하는 가람의 기능은 1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쌍계사는 30여 곳의 가람들이 곳곳에 밀집하거나 까마득한 계단을 올라가야 볼 수 있어서 나름 미로를 걷는 기분이 든다. 개인적으로 나는 수많은 가람 가운데 일주문을 제일 좋아한다. 다포식 공포로 디자인된 일주문은 만다라를 연상케 한다. 인간의 희노애락, 생로병사, 그런 것과 상관없이 묵묵히 이어지는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리라. 일주문에 걸려있는 두 개의 편액 서체도 사랑스럽다. 조선과 식민지 시대 때 근대 서화가로 이름을 떨쳤던 김규진이 쓴 이 글씨체는 정돈된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예쁜 서체가 보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일주문은 경남유형문화재이다. 산지에 지은 쌍계사는 자연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가람들을 건축한 모범 사례에 속한다. 대웅전이 대표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적묵당과 설전당 중앙 마당에서 올려다 보는 그 모습은 단정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역시 국가문화재 보물 500호로 지정되었다. 쌍계사에는 이 밖에도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47), 진감선사부도(보물380),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925), 대웅전 삼세불탱(보물1364), 팔상전 팔상탱(보물1365), 대웅전 목조 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보물 1378) 등 30점의 국가문화재,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한 쌍계사이다. 하룻밤 머물고 싶다면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면 된다. 예불, 참선, 발우공양, 다도, 운력, 차 만들기 등 소담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다.

▶하동8경 | 가을 섬진강

산자락에 올라 섬진강을 내려다 보면 심지어 목이 메기까지 한다. 우리가 모래톱이 있는 강을 본 게 언젯적 일이었나. 우리의 젓줄들이 모두 도륙을 당하고 있을 때 섬진강은 다행히도 4대강에 포함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다. 모래톱이 있고 은어잡이가 가능하며, 강변에서 뛰어놀 수 있는 이곳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의 팔공산 자락의 옥녀봉 아래 데미샘에서 발원,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를 굽이쳐 흐르고 보성강 등 여러 지류들과 합치며 내려와 광양만에서 바다와 만나는 225km의 물길이다. 이번 하동 여행에서 맨 먼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풍경은 섬진강이었다. 봄이면 왕벚꽃으로 가득했을 강변 가로수가 잠들어 있는 사이 어느덧 만개한 베롱나무꽃(백일홍)이 사람들 마음을 기쁘게 해주더니, 이즈음 가을빛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섬진강변을 달리는 19번 국도변에는 몇몇 전망 포인트가 있어서 오가는 여행자들에게 가을 감성을 전해주고 있다. 자연천 섬진강의 진가를 볼 수 있는 곳은 곳곳에 산재하지만 역시 하동 화개장터 앞 남도대교 일대가 최강의 뷰포인트라 할 만하다. 오후 세 시쯤 이곳에 가면 넘어가는 햇살에 강물이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긴 장화를 입고 낚시에 열중인 사람들, 쉬어가는 새들의 모습 등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다.

사람도 새들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자연은 그러나 벌거벗은 채 말없이 자기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언제나 무심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96호 (17.10.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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