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뉴스]생리대를 둘러싼 '최초'의 기록들

장회정 기자 2017. 9. 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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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여성환경연대의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합물(VOC) 실험 결과에 대해 ‘과학적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발표했는데도 생리대 위해성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애용하는 건강용품 직구 사이트인 아이허브에서는 영국산 유기농 생리대가 품절됐다. 아마존에서는 생리컵 주문이 폭주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온라인상에서는 “한국 여성들이 세계 생리용품을 쓸어 담고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여성환경연대 관계자는 이번 검사가 “국내 최초로 시도된 유해물질 검출실험”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평생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는 1만1400개에 달한다. 국내 생리대 시장 규모는 약 4천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내 기업용 분석 소프트웨어(SW), 국내 미술품, 국내 냉동만두, 국내 교복 시장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15~59세 여성 95.5%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함(2013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도 불구하고 안전성에 대한 관리 감독은 허술했다.

생리대 관련 ‘최초’의 기록을 찾아봤다. 여전히 일부 슈퍼마켓에서는 신문지에 둘둘 만 뒤 검은 비닐봉투에 담아서 건네는‘일회용 생리대’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 세계 최초의 여성용 생리대

미국 킴벌리사의 코텍스가 세계 최초 일회용 생리대라는 것은 잘 알려졌다.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코텍스는 금세 퍼졌고 일회용 생리대의 대표 이름이 됐다. 그러나 코텍스는 처음부터 여성을 위해 개발된 제품이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킴벌리사는 셀루코튼이라는 솜 대용품을 군납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펄프에서 추출한 섬유질을 가공한 셀루코튼은 천연면화 솜보다 저렴해 야전병원에서 애용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남은 셀루코튼의 처분을 고심하던 킴벌리사는 간호사들로부터 힌트를 얻어 일회용 생리대 생산에 뛰어든다. 당시 천생리대를 빨아 쓸 시간이 없던 야전병원 간호사들이 셀루코튼을 거즈로 감싼 생리대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다.

■ 국내 최초 일회용 생리대

1970년 4월 16일자 매일경제신문은 “현대여성들이 간편히 쓸 수 있는 새로운 여성 생리대가 나왔다”며 ‘아네모네·내프킨’의 출시 소식을 알렸다. “100% 펄프를 원료로 특수방수지까지 코팅된 완전 자동제품으로 위생적이고 촉감이 부드럽고 사용하기 간편하다”라고 소개했다. 1969년 출시된 ‘아네모네·내프킨’의 가격은 개당 5원70전. 당시 재래식 생리대의 가격은 개당 10원이었다. 표준형(핑크)과 두터운 다중형(그린) 두 종류로, 권장 평균 사용시간은 5~6시간이라는 설명.

■ 자유를 안겨준 최초의 접착식 생리대

1975년 나온 접착식 코텍스 뉴 후리덤은 일회용 생리대의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대중적인 이름이 됐다. 별도의 핀이나 벨트 필요없이 패드의 접착띠를 팬티에 고정시켜 사용할 수 있는 후리덤 광고에는 “생리 중 보다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들었다.‘혁명적인 자유의 율동’이라는 카피에 걸맞게 광고 모델은 ‘미니스커트의 전설’ 윤복희였다. 1975년 3월 10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광고는 윤복희 귀국 리사이틀과 뉴 후리덤 홍보의 ‘콜라보레이션’이라 할만하다. “75년은 세계 여성의 해,” “한국이 낳은 슈퍼스타,” “뉴 후리덤 춤 개발”이라는 문구를 읽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저 팬티에 붙이는 것만으로 “삐져나오거나 밀려나올 염려 없는” 생리대의 등장만으로도 여성들은 “혁명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 ‘순수, 깨끗’을 강조한 생리대 광고의 등장

일회용 생리대의 광고 이미지가 ‘자유’에서 ‘순수’로 바뀐 최초의 시점은 1977년 ‘소피아 푸리’가 아닐까 싶다. 1995년 “깨끗해요”라는 카피를 내세운 ‘코텍스 화이트’ 이후 생리대 광고들은 청순한 여대생의 순수한 이미지를 마르고 닳도록 재생하고 있다.

‘소피아 푸리’의 신문광고 속 여성모델은 말을 타고 있지만, 메인 카피는 “여성세계는 보다 더 깨끗한 것, 그리고 순수한 것”이다. “활동성을 부여한 접착식 생리대”라는 하단의 문구와 어딘가 겉도는 느낌이다. 승마와 같은 격한 운동에도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 기적의 흡수제, 미라클젤

‘생리대는 곧 후리덤’으로 통하던 1970년대를 건너와 1980년대 들어서는 더 다양한 제품이 출시됐다. 쌍용제지가 내놓은 소피미라젤은 ‘앞서가는 여성의 앞서가는 패드’라는 타이틀로 승부수를 던졌다. 1987년 광고에 등장한 ‘알고 넘어갈 것인가? 모르고 넘어갈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문구는 생리혈을 곧바로 젤리상태로 변하게 하는 흡수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기적의 흡수제’는 물은 280배, 생리혈은 45배나 흡수한다고 강조했다. 접착띠의 길고 짧음을 운운하던 이전 제품에 비하면 엄청난 진보였다. ‘안심할 것인가? 조마조마할 것인가?’(U자형 방수막), ‘바지를 입을 것인가? 치마를 입을 것인가>’(몸에 꼭 맞도록 재단된 끝부분), ‘천연 감촉이냐? 아니냐?’(보풀이 일지 않는 천연감촉 커버) 등 생리를 둘러싼 여성 불안 심리를 공략한 카피는 제대로 통했을 법 싶다.

■ 생리대, 날개를 달다

1986년 미국의 P&G가 내놓은 날개 달린 생리대는 말 그대로 세계 시장에서 날았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89년, 위스퍼라는 이름을 달고서였다. 당시 광고는 커리어우먼을 연상시키는 정장 차림의 모델 이미지와 함께 ‘생리대를 교체할 때 속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는 문구가 붙었다. 가뜩이나 생리 기간 중 심신이 불편한 가운데 속옷 관리에도 신경 썼던 인고의 세월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1년 경향신문 기사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지적을 하고 있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여성 103명을 대상으로 생리용품 사용 및 의식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1회용 생리대의 환경오염문제를 지적한 여성은 4%밖에 되지 않았다”며 여성들은 1회용 생리대의 환경오염에 대한 영향을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당시 조사 결과 여성의 87.4%는 1회용 생리대를 사용했고, 나머지 12.6%는 여전히 재래식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1회용 생리대가 환경오염에 어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 생리대 TV 광고, 심의의 벽을 넘다

1995년 1월 1일 방송위원회의 광고에 관한 심의규정이 바뀌기 전까지 생리대는 방송광고를 할 수 없었다. 기존 규정에 따르면, 모델이 술을 마시는 장면도, 어린이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것도,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마네킹이 아닌 모델이 속옷을 입고 나오는 것도 다 규제대상이었다. 이후 등장한 생리대 TV 광고에서 생리혈을 파란색 액체로 대체한 것은 생리를 불경스러운 것으로 보았던 기존 심의잣대를 지나치게 의식한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

심의의 벽은 넘었으나 인식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1996년 9월 17일자 동아일보 ‘지금 PC통신에선’ 코너는 생리대 광고를 둘러싼 갑론을박을 담았다. “초저녁에 텔레비전을 켜서 애국가가 울릴 때까지 지켜보면 수없이 나오는 한 광고가 있다. 생리대 광고다. 어쩔 수 없이 여성의 성을 연상하게 한다…며느리와 시아버지가 함께보는 TV에서 멀쩡한 여자탤런트가 ‘1센티 자유’하고 속삭이면 민망스러울 수 밖에…여성잡지에나 등장하던 생리대 광고가 어느틈에 TV에까지 진출해 소리를 높이게 됐는지”라는 의견과 “여성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생리대다.…자신의 신체에 잘 맞고 편하며 생리조건에 적합한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오히려 이제서야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되찾은 셈이다.…여성의 정상적인 신체대사라는 걸 누가 모르는가. 언제까지 음지에서만 얘기해야하는가”라는 네티즌의 반박이 함께 실렸다. 불과 21년 전 얘기다.

■ 생리대 부가가치세 폐지

여성환경연대, 여성민우회, 불꽃페미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8월 24일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회용 생리대 안전정 조사하여 여성건강을 보장하라”로 요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2002년 여성민우회가 발표한 일회용생리대보고서에 따르면 여성들은 생리기간 동안 평균 20~25개의 패드를 사용하고 한 달에 5000원 이상을 생리대 구입에 지출했다. 여성 평균 가임기간인 37년 동안 매달 그 금액을 쓴다면, 약 222만원을 생리대 비용으로 지출하는 것이다. 여성단체들의 노력으로 지난 2004년 10%에 이르는 생리대의 부가가치세는 면제됐지만, 꾸준한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생리대 지출 비용 부담은 여전하다.

지난해 유한킴벌리가 8% 가량 가격 인상 계획을 밝히고 저소득층 소녀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깔창을 사용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지며 생리대는 논란의 중심이 됐다. 올해 생리대는 발암물질 함유 건으로 다시금 이슈가 됐다. 생존과 관련된 안전기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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