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등산 가는 것 맞아?"..기능성 일상복이 대세

2017. 9. 6. 20: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SC] 커버스토리

[한겨레] 빨강, 파랑, 노랑 등 형형색색으로 대변되는 등산복이 ‘아재 패션’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한때 산을 타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문 산악인에 준하는 패션을 추구하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최근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편안하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연출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산악인 사이에서는 등산복과 일상복을 겸할 수 있는 실용적인 산행 패션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지난 2일 지리산에서 만난 젊은 산악인들의 등반 패션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됐다. 옷차림만 봤을 땐 ‘등산 가는 것 맞아?’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일상복으로도 손색이 없는 맨투맨 티셔츠나 반바지, 스포츠 레깅스, 래시가드 차림에 벙벙한 바람막이 대신 라인을 강조하는 사파리나 군복 야상 재킷을 입은 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등산 모자를 대신한 건 스냅백, 헌팅캡이었으며, 커다란 등산용 배낭 대신 힙색이나 슬링백 등을 멘 이들도 많았다. 트렌디한 캐주얼 브랜드에서 주로 사용하던 카무플라주(군복 무늬), 꽃무늬 등의 감각적인 문양이 새겨진 옷과 가방이 많았다.

흰 셔츠의 밋밋함을 스냅백으로 보완한 정나정씨와 김은주(오른쪽)씨.

지리산 노고단 등반길에서 만난 박윤병(33·서울시 양천구)·김미희(32)씨 부부의 패션은 이런 20~30대 등산 패션의 전형이었다. 등산용 재킷, 티셔츠, 바지, 등산화 대신 라운드티셔츠, 반바지, 레깅스, 운동화, 헌팅캡 차림이었다.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박씨는 “일상복에 기능성을 더한 옷들이 시중에 많아 아웃도어와의 경계가 사라져 굳이 등산복을 입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며 “평소 운동할 때 입는 옷이 산을 오르내릴 때 편할 뿐 아니라 땀 흡수 기능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소 ‘패셔니스타’로 불리는 김씨가 이번 산행에서 가장 신경 쓴 것은 레깅스. 화사한 보라색을 선택한 그는 “알록달록한 색상과 화려한 절개, 애매한 바지 모양의 정형화된 차림은 여성스러움을 강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개성도 드러낼 수 없다”며 “신축성이 좋고 근육의 움직임도 잡아줘 피로를 줄여주는 레깅스가 산에 오를 땐 제격”이라고 했다. 이외에 선글라스와 형광색의 선글라스 걸개, 헌팅캡, 운동화로 세련되면서도 독특한 개성이 가미된 등산룩을 완성했다.

검정색 레깅스의 보색인 노랑 반다나로 멋을 낸 신윤주씨.
체크 남방으로 차별화를 꾀한 이혜진씨.
슬리브리스 티셔츠 차림의 유영근씨.

등산복 패션이 다양해진 건 아웃도어 업계의 ‘탈 아웃도어 의류’ 출시와 무관하지 않다. 몇 해 전부터 이들 업계는 ‘아웃도어=아재패션’ 이미지를 탈출하기 위해 디자인과 색상, 문양 등에서 변신을 꾀해왔다. 애슬레저(Athletic+Leisure. 운동+여가)룩 열풍과 맞물려 젊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화려한 배색, 디테일에서 벗어나 더욱 세련된 색상, 캐주얼한 디자인을 더한 의류를 공격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아이더 상품기획총괄 우진호 부장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아웃도어 문화가 등산 외에 라이딩, 패러글라이딩, 서핑, 스포츠클라이밍 등으로 확대되면서 개성과 취향을 살리면서도 실용성이 가미된 제품을 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리산 성삼재 휴게소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정나정(31)씨와 김은주(28)씨의 복장도 ‘풀착용 등산복 세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1일 지리산에 올라 1박2일에 걸쳐 노고단-벽소령-반야봉 코스를 돈 이들은 절충형에 가까웠다. 등산 바지와 등산화는 착용했지만, 흰색 라운드티셔츠로 포인트를 주고 몸매가 드러나는 사파리 재킷으로 변형된 등산복 패션을 선보였다. 5년째 지리산 등반을 해오고 있는 김씨는 “종주 일정이라 깊은 산속으로 진입해야 하고 산의 기온이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땀이 빨리 흡수되고 건조되는 기능성을 고려했다”며 “종주 일정이 아닐 땐 냉각 소재의 배기바지(엉덩이 부분에 여유가 있는 바지) 등의 편안한 차림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지리산 첫 등반이라는 정씨는 “어르신들의 등산복은 원색 위주의 튀는 색상이 많은 반면 개인적으로 검정,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이 젊은 세대엔 더 어울리며, 실제 젊은층은 눈에 확 띄는 원색 등산복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옷 색상의 무난함으로 오는 밋밋함을 등산 모자 대신 스냅백으로 젊은 감각을 표현하려고 했단다.

평범한 등산복에 주황색 티셔츠로 포인트를 준 김승규씨.

실제 아웃도어 출시 경향을 보면 일상복과 등산복의 경계가 모호한 스타일이 다수다. 성삼재 휴게소에 위치한 라푸마 매장을 가봤더니, 꽃무늬는 물론 20~30대가 선호할 만한 디자인과 색상의 캐주얼풍 의류가 다수였다. 과거에는 티셔츠도 지퍼를 단 형태나 차이나 옷깃에 지퍼를 붙인 형태의 제품이 주류였다면 검정·회색·흰색의 기본 색의 옷깃이 달린 티셔츠, 브이넥 티셔츠 등의 제품이 더 많았고, 배낭과 등산화 역시 꽃무늬가 다수 눈에 띄었다. 블랙야크 마케팅본부 남윤주 팀장은 “등산 소품에 있어서도 반다나(스카프 대용으로 쓰이는 큰 손수건), 공군 모자, 스냅백 등 ‘등산 의류’ 느낌을 뺀 제품이 인기”라고 말했다. 마모트 사업본부 정광호 상무는 “등산 가방의 경우도 용량뿐 아니라 무늬도 도형, 꽃, 선 등으로 다양해져 등산뿐 아니라 하이킹과 조깅 등 다양한 레저활동에 멜 수 있으며, 힙색과 슬링백도 다수 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등산 패션은 스포츠 레깅스, 헌팅캡 등
편하고 개성있는 옷차림으로 ‘아재 패션’ 탈출
가성비 따지는 2030세대 선호 뚜렷

피아골에서 만난 유영근(38)·신윤주(31) 커플의 경우 선글라스와 반다나로 포인트를 준 경우. 슬리브리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유씨는 “어르신들의 경우 등산복이 ‘과시용’ 목적이 더 컸다면 우리 또래는 가성비를 더 꼼꼼하게 따지는 똑똑한 소비를 지향한다”며 “등산, 트레킹 등 산악활동뿐 아니라 도심 속 일상에서도 소화할 수 있는 산악 패션이 앞으로도 유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색 반다나와 선글라스로 개성을 표현한 신씨는 “투박하고 무겁고 딱딱한 느낌의 등산화보다는 통기성이 뛰어나고 가벼운 느낌의 등산화가 더 편하다”며 “반다나는 땀을 닦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발랄함을 연출할 수 있어 애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옷을 갖춰 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신씨의 친구 이혜진(32)씨는 청바지에 남방을 걸치고, ‘플립플롭’(일명 ‘쪼리’라 불리는 슬리퍼)을 신고 산에 올랐다. “개개인이 편하게 산을 즐길 수 있는 복장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티셔츠와 레깅스, 스냅백만으로 산행 ‘패셔니스타’의 면모를 보여준 박윤병·김미희씨 부부.

지리산에서 만난 2030세대의 공통점은 이처럼 개성과 실용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경향이 뚜렷했다. 옷의 색상은 화려하지 않은 데 반해 등산 소품이나 운동화 등은 화려한 색상을 선택해 변화를 꾀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이처럼 아웃도어 패션은 그 카테고리가 더욱 다양하게 확장되는 추세다. 엘에프(LF) 라푸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허은경 상무는 “이전에는 등산용 지팡이(스틱), 장갑, 백팩, 선캡 정도에 불과했다면 최근에는 버킷햇, 페도라, 니트 모자, 스포츠 선글라스는 물론 머리와 목에 둘러 스타일을 강조할 수 있는 반다나, 힙색, 슬링백 등의 인기가 뜨겁다”고 말했다. 등산화 역시 지나치게 갑갑한 느낌을 주지 않도록 통기성이 뛰어나고 가벼운 느낌의 등산화가 주류를 이룬다. 허 상무는 “요즘엔 끈을 묶을 필요가 없는 단순한 디자인의 워킹화가 인기 제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승규 ‘하늘마루2030산악회’ 회장은 “연 10회 이상 주말을 이용해 등산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아크테릭스, 몬츄라, 하그로프스, 마모트 등의 브랜드가 인기”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등산 패션 흐름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산악인은 “편한 옷차림을 하되 안전을 위해 등산화·스틱 등 기본 채비를 갖추고 피부 노출은 되도록 줄일 것”을 권했다.

Jirisan(지리산) 1967년 12월 한국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 1호.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 남악, 두류산, 방장산으로도 일컬음.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1915.4m의 천왕봉.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3개 도에 걸쳐 있으며 면적은 483.022㎢에 이름. 동식물 1200여종이 서식하는 한반도 생태계의 보고이자 등산 애호가들의 성지.

지리산/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 페이스북][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