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기자 덕질기 2] 탕진잼에 빠지다 / 김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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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입문할 때는 비교적 값이 싼 '미니벨로'로 시작했다.
자전거를 접어 부피를 줄일 수 있었고 회사에 타고 와도 부담이 없었다.
레슬링 운동복 같은 쫄쫄이를 입은 라이더가 시커먼 자전거를 타고 앞지르기 시작했다.
미니벨로에서 로드 자전거로 기변(기기 변경)한 뒤, 훨씬 빠른 속도로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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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명진
디지털사진팀 기자
자전거 입문할 때는 비교적 값이 싼 ‘미니벨로’로 시작했다. 자전거를 접어 부피를 줄일 수 있었고 회사에 타고 와도 부담이 없었다. 몇 달 재밌게 탔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샤방’하게 한강을 달리고 있었다. 레슬링 운동복 같은 쫄쫄이를 입은 라이더가 시커먼 자전거를 타고 앞지르기 시작했다. 열심히 쫓아갔다. 2~3㎞를 갔을까. 시커먼 자전거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쓸데없는 경쟁심에 분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검색을 시작했다. 그 자전거는 ‘로드 자전거’였다. 미니벨로와는 다르게 날렵한 첨단 기계 같았다. 로드 자전거는 일반 자전거보다 ‘더 멀리, 더 빨리’ 달리기 위한 자전거다. 힘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무게를 줄이고 공기저항을 덜 받게 만든다.
자전거 업그레이드에 대한 유혹이 점점 강해졌다. 몇십만원대부터 천만원대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프레임과 구동계 종류는 왜 이렇게 많은지. 통장 잔액에 맞춰 중급 카본 로드 자전거를 중고로 구매했다. 부수 장비도 많이 필요했다. 라이트와 페달, 옷, 클리트 슈즈(자전거 페달에 발을 고정하는 신발) 등을 추가로 샀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 수리하고 추가 장비를 사는 데 구매 비용만큼 들었다.
미니벨로에서 로드 자전거로 기변(기기 변경)한 뒤, 훨씬 빠른 속도로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미니벨로를 타고 힘들게 다니던 시절이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만족감이 높았다. ‘이걸로 더 이상의 기변은 없다’고 생각했다. 순진했다. 개미지옥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이었다. 라이딩 실력이 늘지 않으면 자전거를 탓했다. 끊임없이 자전거 중고거래 누리집을 들락거렸다. 어느 순간 플래그십(기함)급 자전거가 내 손에 쥐어졌다.
대부분의 물건이 그렇지만 투자한 만큼 보기에는 좋았다. 그러나 막상 꿈에 그리던 자전거를 타도 라이딩 실력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투자한 돈에 비해 기록 향상은 미미했다. ‘자전거 업글보다 엔진 업글이 중요하다’는 동호인들의 말이 맞았다. 라이더의 엔진이 그대로인데 자전거를 좋은 것으로 바꾼다고 비약적인 발전이 있을 리 없었다.
아파트 작은방 한쪽은 자전거와 옷, 장비 등으로 가득하다. 아내는 ‘자전거방’이라고 부른다. 통장 잔액은 비어 가고 아내의 잔소리는 높아진다. 하지만 출근하기 위해 늘씬하고 멋진 자전거를 끌고 나오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실력 향상이 없으면 어떤가. 나한테 예뻐 보이고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닌가. 오늘도 지름신을 영접하고 탕진잼(소비하면서 느끼는 재미)을 찾아 누리집 이곳저곳을 뒤적인다.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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