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 그대로의 길, DMZ를 걷다

2017. 9. 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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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 지대). 아픈 과거의 산물이며, 희망과 미래의 땅을 꿈꾸는 우리 북쪽의 땅. 휴전협정에 의해 무장이 금지된 지대를 말하는 이곳은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각각 2km씩 폭이 4km이고, 동서 길이가 248km에 이르는 곳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은 냉전의 산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전쟁의 화약고지만 지난 60여 년간 날 것 그대로 남아 이제는 많은 외국인이 찾는 명소가 되었답니다.

생창리 방문자 센터를 통해서 DMZ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연일 북한의 도발로 어지러운 상황에서 우리에게 평화의 안식처 같은 생창리 DMZ생태평화공원을 직접 걸어보았습니다.

휴전 후 민간인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이곳은 이제 방문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탐방코스로 개발됐습니다. 최전방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생창리를 시작으로 탐방로가 시작이 된답니다.

DMZ생태평화공원 표지.
 

성재산 위에 설치한 십자탑이 주변을 조망하기 쉽게 하여 남북한의 철책과 DMZ 내부의 자연환경을 볼 수 있게 짜여진 ‘1코스 십자탑 탐방로’와 남방한계선 가장 가까이 조성된 농업용 저수지인 ‘2코스 용양보 탐방로’로 이뤄졌습니다. 

길 양쪽으로 가시 철책에 쓰여진 지뢰 표지는 여느 길과는 다른 길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언제든 어떤 위험을 만날 수 있다는 분단의 슬픔을 고스란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긴장감 높이는 지뢰표지.
 

군사용 차량이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산길은, 덮고 있는 콘크리트를 걷어 내면 붉고 싱싱한 흙이 더운 김을 뿜어 낼듯합니다. 지뢰로 발길이 닿지 않는 숲속이 그런 싱싱하고 더운 흙입니다. 그 더운 흙위로 엉킨듯 자리 잡은 온갖 풀이며 꽃이며 나무들이 숲속에 가득입니다.

군 초소 파고라.
 

높은 산의 능선 같은 그런 길을 슬슬 걸어 오르면 얼레지, 금강초롱 등 야생화가 가득인 ‘얼레지 쉼터’, 군 장병이 근무하는 군 초소 파고라와 군용 텐트가 설치되어 군 장병의 근무여건을 느낄 수 있는 ‘DMZ쉼터’를 지날 수 있습니다.

십자탑 전망대가 가까워질수록 오르막으로, 조금 숨이 찰 수 있겠지만 힘을 조금 낸다면 북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으니 힘내 보기로 합니다.

십자탑 전망대로 오르는 길.
 

바람 시원하고 초록 눈이 부신 십자탑 전망대는 성재산 580m 높이에 설치된 십자탑이 있어 십자탑 전망대로 불립니다. 이곳에서 북한의 오성산, DMZ 내부전경, 멀리 북한 마을까지 볼 수 있습니다. 

십자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철원.
 

초록이 유독 짙어 어두운 흑색으로 보이는 그곳은 멀지만 가까운듯한 DMZ 비무장지대입니다. 북쪽으로는 카메라를 둘 수가 없어 두 눈으로 다 담아 보지만, 뭔가 애절함과 비통함에 들숨, 날숨이 거칠어집니다.

누구나 그곳에 선다면 숨이 거칠어지는 걸 느끼게 될 듯합니다. 전쟁의 커다란 상처에서 이젠 새살이 돋아나 그 어떤 곳보다 단단해진듯 보입니다.

슬프기도 하지만, 대견한 마음을 뒤로 하고 내리막 계단과 길이 쭉 이어진 길을 다시 걸어 봅니다. 오는 길이 능선으로 걷기 좋은 길이라면 내려가는 곳은 조금 경사가 졌으니 스틱을 가지고 가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길은 여전히 많은 산소를 뿜뿜 내뿜는 원시림 길입니다. 쓰러진 나무들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길이 더 안정된 느낌은 왜 일까요. 투박한 길 자체가 힐링입니다.

철원 생창리 DMZ생태평화공원은 아직 관광 인프라가 조성되지 않은 곳이라, 투박하고 소박한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가까운 곳에 식당이 없고, 동네 오래된 상점이 유일해서 불편한 듯도 하나, 방문객 스스로가 식당과 매점 등의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이런 자연 그대로의 비밀공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용양보 코스에서 처음 볼 수 있는 호수형 습지.
 

다시 걷기 시작한 용양보 코스입니다. 용양보 코스에서 처음 볼 수 있는 호수형 습지. 멀리서도 감탄을 자아 낼 만큼 크고 아름다운 전경이었습니다. 커다란 산을 하나 호수에 담가놓은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그 습지에서 조금 오르면 습지의 물을 담을 수 있도록 해준 용암보 통문이 있습니다. 이곳이 제가 걸은 길 중에서 북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철책선을 두고 흐르는 물이 말을 전해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옛 DMZ 경계근무를 위한 군인들이 오가던 출렁다리.


용양보는 일제 강점기에 금강산을 오가던 금강산 철도 교각을 사용하여 건설되었답니다. 그래서 철교의 흔적도 볼 수 있었고, 그 멀리에는 오랜 DMZ 경계근무를 위한 군인들이 오가던 출렁다리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전쟁의 흔적은 슬프기도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게 하기도 합니다.

제가 걸었던 코스 중에 눈물 나게 좋았던 화강 징검다리입니다. 북에서 내려오는 차고 맑은 강물 화강은 산행으로 역사의 현실 앞에 덥혀졌던 몸과 머리를 충분히 식혀주는 곳이었습니다.

양말을 벗어 젖은 징검다리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까지 담그고 앉으니, 아마도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통에도 살아 내야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수중보를 징검다리 삼은 화강.


군화를 벗어 젖은 징검다리에 털썩 주저앉은 어린 군인 하나가 눈에 선합니다. 그때의 눈물이 강을 이룬 건 아닐까요. 걸어도, 걸어도 여기저기 슬프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평화로운 오후 시간, 새 소리,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 말고는 들리지 않는 오늘 이곳에는 북한의 도발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날 같이 걸은 일행 중 한 분께 하룻밤을 묵은 김화읍 최북단 생창리 마을의 분위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생창리 주민들의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한 할머니는 “전쟁이야 나겠소. 마을 사람들이야 시끄러운 게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거지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금강산을 오가던 금강산 철도 교각.


시끄러운 것. 우리는 분단의 나라에서 항상 그 시끄러움을 마주하고 살아야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아픔을 상처처럼 지니고 있으며, 두려움을 마주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걸었던 상처가 아물고 있으며, 그 상처가 더욱 단단해져 가는 DMZ는 과거에 머물고 있지 않습니다.

미래를 향하고 있고,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으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그 어디에도, 그 어느 나라도 가지지 못한 곳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평화가 유지되어야 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비가 잦아드는 흐린 하늘에는 이름 모른 큰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누구하나 어디를 가냐고, 어디에서 왔냐고 묻지 않지만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나는 새가 그 어떤 것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이곳은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는 DMZ입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안보 상황은 긴장감으로 가득 하지만, 제가 걸어 던 DMZ 그 길의 상처가 치유되고 있음에 더 이상 덧나지 않도록 평화가 유지되어야 할 이유 중의 큰 이유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전은미 vicp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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