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에서 음악만 나오는 이유는.. 라디오 PD들 제작 중단한 사연

남지원 기자 2017. 8. 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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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MBC 라디오 PD들이 2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언론노조 MBC본부에서 부당한 검열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제공

MBC 라디오 PD들이 28일 오전 5시부로 “잃어버린 청취자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겠다”며 제작을 전면 중단했다. PD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MBC 라디오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추락을 거듭한 이면에는 추악한 검열과 간섭이 있었다”며 “세월호와 위안부, 국정농단 같은 이슈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표준FM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 다수 프로그램들이 진행자 없이 음악만 나가게 됐고, FM4U 채널에서는 오전 5시 이후 정규방송들이 모두 편성에서 빠지고 음악방송들만 편성됐다.

28일자 MBC 라디오 FM4U 편성표. MBC 홈페이지 캡쳐

PD들은 부당한 검열을 참을 수 없어서 일터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PD들이 이날 공개한 ‘MBC 라디오 부당검열 사례’에 따르면 보직간부들은 세월호 1주기를 맞은 2015년 4월16일 라디오의 각종 세월호 관련 아이템을 검열하고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20여명을 구조한 어민을 만나 참사 당시의 상황과 심정 등을 상세히 취재했을 때는 당시 라디오국장이 3차에 걸친 사시를 통해 ‘정부’, ‘해경’등의 단어를 삭제하도록 지시했고 ‘세월호 기름 유출로 미역 양식에 어려움을 겪는 사연을 강조하라’는 지시도 내려왔다. 세월호기록단 활동을 한 박민규 다큐멘터리 감독을 인터뷰하려 했으나 국장이 “위험한 사람이다”라며 인터뷰를 취소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PD들은 말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 <양희은 강석우의 여성시대>에서는 세월호 관련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며 진행자가 “빨리 수습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런데 대통령은 어디 밖에 나가신다고 그러고, 국무총리는 이상한 일에 연루되어서 공백상태가 될 거 같고... 그럼 이거 해결이 되겠습니까? 결정권자가 없는데” 라는 멘트를 하자 라디오국장이 생방송 중인 PD를 국장실로 호출해 발언 경위를 추궁하고 방송 원고를 제출하라고 하기도 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도 대표적 금기 아이템이었다. <세계는 우리는>에서 일본 교과서의 독도영유권 주장 증가에 대해 다루려 하자 당시 라디오국장이 “한일 역사문제를 다루다 보면 위안부 문제와 엮이게 되어 민감해지니 자제하자”며 아이템 변경을 지시한 적도 있었다고 PD들은 밝혔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도 폭로 당사자들이 라디오에 연결되는 것은 금기였다.

지난 1월4일 <시선집중>은 덴마크 현지에서 정유라를 추적해 인터뷰한 박훈규 독립PD와 인터뷰를 하려 했지만 갑자기 취소돼 전날 인터뷰한 AI 농장주를 이틀 연속 인터뷰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를 비판하는 방송을 PD에게 주문하거나 한국GM 노동조합 채용비리를 다루라고 지시하면서 ‘귀족노조’라는 말이 들어가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PD들은 말했다.

“2012년 파업이 끝난 뒤 오상진, 박혜진, 문지애 등 간판급 아나운서의 라디오 출연이 사실상 제한됐다”는 폭로도 나왔다. 출연자 관련 부당 지시는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최근 퇴사한 김소영 아나운서는 지난해 <두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의 한 코너 진행자로 섭외됐지만 출연 불가 결정이 나왔고, 손정은 아나운서는 지난해 3월부터 <세계는 우리는>의 코너 타이틀 등을 녹음해왔지만 4월 중순 손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모두 빼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반면 ‘백종문 녹취록’에서 “제가 요즘 우리 OOO기자를 좀 청탁을 하려고 그러는데요. 어디 뭐 라디오 같은 데, 시사프로그램 같은 데서 뉴스 브리핑을 한다든지”라며 출연 청탁을 한 것으로 나타난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은 2014년 12월26일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했다.

라디오PD들은 그간 제작자율성 침해의 책임을 지고 김장겸 사장과 백종문 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이 퇴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제작중단에 앞선 지난 25일 “제가 추악한 간섭을 많이 해서 청취율이 추락하고 신뢰도가 추락한 것처럼 보이게 글을 써놓았다”며 “자신이 라디오국장으로 발령받은 2013년 5월22일부터 2015년 2월말까지 라디오 청취율조사 12번 가운데 4번을 제외하고는 표준FM이 청취율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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