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뒤에 떠나는 해외여행 | 과즙 터지기 일보 직전, 넥스트 여행지 스리랑카! (두 번째 이야기)

2017. 8. 2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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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남부 휴양지인 ‘미리사’의 백사장에서 서핑하는 젊은 남자들도 구경하고, 돌고래도 보고 하면서 몰디브 못지 않은 화려한 휴양을 즐기려 했었다. 그러나 긴 자동차 여행에 지친 부모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미리사 바로 앞에서 핸들을 돌려야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다. 네곰보 2박-시기리아 1박-캔디 1박-누와라엘리야 2박-엘라1박-갈레 3박-콜롬보 2박으로 마무리 된 나의 첫 스리랑카 여행이다.

▶조심하라! 지갑 털리는 마탈레(Matale)

캔디(Kandy)는 눈물 방울 모양의 스리랑카 지도에서 보면 딱 중간 즈음에 위치해 무게 중심을 잡고 있는 도시다. 콜롬보에서 약 116km, 우측 5도 방향으로 삐딱하게 사선을 그으면 이 도시에 닿는다. 그러나 현실의 길은 지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는 네곰보에서 이틀을 쉰 후, 북쪽의 시기리아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오전 일찍 시기리아 바위산에 오르는 대장정을 마친 후 캔디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길 위 어디에선가 커리와 밥으로 든든히 끼니를 챙겨 먹었고, 마탈레(Matale)를 지나며 그 유명한 노리다케 팩토리 아울렛에서 어느 정도의 경비를 탕진했다. 노리다케는 도자기로 유명한 일본 명품 브랜드인데 공장이 스리랑카에 있다. 그래서인지 아울렛엔 일등급 제품들은 없지만, 믿을 수 없이 싼 가격에 이등품이나 재고 물량을 판매하고 있었다. 사실 여기선 인기 라인이나 신상품은 찾기 힘들고 세트로 구매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이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엄마와 나는 죽이 잘 맞는 쇼핑 2인조다. 이리저리 물건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간신히 짝이 맞는 티팟과 찻잔 세트를 찾아냈다. 게다가 잔잔한 꽃무늬가 있는 하나사라사(Hanasarasa)라인의 인기 접시들도 여러 개 찾아내는 쾌거를 얻었다! 마치 오래된 창고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노리다케 팩토리 아울렛의 모습_마탈레
단언하건대 평소에 머그잔에 티백차를 마시던 사람도 스리랑카에 오면 갑자기 우아한 티팟과 찻잔이 꼭 필요해진다. 스리랑카는 홍차의 나라니까! 차 재배지를 지나면 분명 당신의 양손엔 티(tea)가 한 가득 들려있을 것이고, 일정이 길어지면서 점점 더 찻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암요, 찻잔은 현대인의 필수품 아니던가요?’ 그런 생각을 하며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꼼꼼하게 포장된 전리품들이 박스에 차곡차곡 담겨 차 트렁크에 실리고 있었다. 지갑은 얇아졌지만 뭔가 얻은 듯한 이 기분은 뭘까? 여행지 쇼핑이 그런 거다. 게다가 우린 드라이버와 차가 있으니 짐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부담도 없었다.

▶품위 있는 도시 캔디, 품위 있는 빌라에서 해피뉴이어!

하루 종일 달려 끼니 무렵에 도착한 새로운 도시는 ‘시원하다!’, ‘살기 좋은 동네 같다’란 느낌이 물씬 들었다. 연중 온도가 최고 28~30도, 최저 18~20도이니 정말 살만하지 않은가? 때는 12월, 우리 가족은 이 고산지대에 위치한 캔디라는 어여쁜 이름의 도시의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나긋나긋한 날씨가 천국처럼 느껴졌다. 도시 중심부엔 큰 호수가 있었고 호수를 둘러싸듯 레스토랑과 호텔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 호수는 1803년부터 1807년 사이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이곳에서 우리의 고도 경주를 떠올렸다. 아닌게 아니라 이곳도 싱할리스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고 곳곳에 왕궁 유적들과 유명한 불교사원이 있어 스리랑카 관광 1번지로 알려진 곳이라 한다. 수려한 경관마저 경주와 꼭 닮지 않았나. ‘불치사’라 알려진 ‘달라다 말리가바’ 사원엔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가 있어 불교신자들에게는 죽기 전 한 번쯤 들러야 할 1순위 순례지로 꼽힌다.

불치사 주변의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
“불치사에 가보실래요? 여기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래요.”

짐을 풀자마자 침대에 누운 부모님께 물었다. 사실 부모님은 불교유적지에 큰 관심이 없다. 시기리아 바위산 등반 후 하루 종일 이동하여 저녁 즈음에 도착한 그 도시에서 궁금한 것은 저녁식사를 할 식당이 숙소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메뉴에 밥이 있는지 정도다. 혼자 산책 겸 호수를 한 바퀴 돌며 식당을 탐색했다. 호수 근처 ‘가든카페’란 곳이 예감이 좋았다. 다리가 불편한 엄마는 ‘가든카페’까지 나가는 것도 불편한 기색이었다. 아버지가 음식을 사와서 호텔에서 먹자고 제안하셨다. 호수 전망을 즐기며 식사를 하고, 산책도 하고, 들뜬 연말 분위기도 즐기고 싶었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니 이럴 땐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다.

쌀 요리인 치킨 브리야니와 과일 밀크셰이크 3잔, 양고기와 로띠 등을 가든카페에서 포장해 왔다. 거실 식탁에 거하게 차려내니 제법 그럴 듯하다. 그런데 이렇게 푸짐하게 먹어도 1만5000원이 채 안되다니! 행복한 2016년 12월31일 밤, 한 해의 마지막 식사였다. 그날 우리가 묵었던 ‘그린뷰방갈로’는 일반 호텔이 아니라 빌라였다.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유럽 가구들과 벽을 장식하는 그림, 곳곳에 놓인 조각 예술품들, 정원이 있는 고풍스런 집은 부잣집 친구에게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취향 좋은 주인은 아름다운 식기와 찻잔, 커트러리를 구비하고 있었다. 일하는 분이 우아한 접시들과 함께 홍차도 내오는 친절을 베풀어, 테이크아웃 음식이지만 고급 식당에 온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친절한 메이드에게 팁 300루피도 건네본다.

한편 운전사 ‘샨티’는 근처에 애용하는 숙소가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호텔에서 방을 내주겠다 하는데도 굳이 친구가 있으니 그리 가서 자겠다고 한다. 아마도 뉴이어 파티라도 하려나 보다. 침대에 일찍 누웠으나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밖에 연신 펑펑! 굉음과 함께 불꽃놀이가 한창이었으니까. 우리 호텔은 호수 전망이 아니라서 소리만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새해가 오는 것에 큰 감흥이 없는지 아니면 너무 피곤한 탓인지 “위험하다, 혼자 나가지 마라” 당부하시고는 곧 숙면 모드로 들어갔다. 캔디 숙소는 완벽히 맘에 들었다. 외국인 주인은 집을 메이드에게 맡겨놓고 여행 중인 것 같았다. 우리 돈 1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초성수기인 12월31일 밤, 세 명이 편안히 자고, 근사한 아침식사까지 대접 받았으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예쁜 정원과 집안 곳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2017년 새해 아침을 기분 좋게 맞았다.

▶홍차의 향기를 따라 누와라엘리야(Nuwara Eliya)

잘 쉬고 나니 기분이 하늘까지 닿았다. 간단히 캔디 시내를 차로 둘러보고, 홍차의 도시 누와라엘리야로 향한다. 캔디 다음 목적지로 둔 누와라엘리야, 하푸탈레, 엘라 같은 곳들은 고원지대의 아름다운 차 밭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캔디~누와라엘리야, 누와라엘리야~하푸탈레 구간은 풍경을 감상하고자 차를 버리고, 불편한 기차여행을 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샨티’는 차로 가도 비슷한 경치를 볼 수 있으니 크게 아쉬워하지 말라고 했다. 품위 있어 보이는 도시 누와라엘리야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티 팩토리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곳곳에 티 팩토리가 많았지만 여느 여행자들처럼 맥우드, 블루필드에 들렀다. 입장료 없이 산책을 즐기고, 홍차 시음 및 기념품 구입도 할 수 있는 티 팩토리 방문은 이 지역 관광코스 중 하나다. 홍차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지인들 선물로 차를 챙기다 보면 지갑이 가벼워질 각오는 해야 한다. 물론 가슴 트이는 녹색의 물결, 차 밭 풍경은 이 여정의 메인 코스이다.

누와라엘리야는 해발 1800m상에 위치한 고원 도시다. 영국 식민지 당시부터 천혜의 자연 환경, 쾌적한 기후로 영국 귀족이나 군인들이 별장지로 사용했던 곳이고 지금도 그들은 곳곳에 호텔과 별장, 멤버십 승마클럽 등을 두고 이 도시에 드나든다. 이 부근에서 나는 홍차는 전 세계 고품질의 홍차 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는 차를 ‘실론티’라고 부르는데, 특히 누와라엘리야 인근에서 생산되는 홍차는 향이 부드럽고 맛이 깔끔해서 ‘실론티의 샴페인’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만약 현지에서 실론티(Ceylon Tea)를 구입하고 싶다면 딜마, 믈레즈나, 베질루르, 제스타, 블루필드, 맥우즈 등의 다양한 브랜드들을 만날 수 있다. 차 포장지를 자세히 보면 OP·BOP·BOPF 등의 표시가 있다. OP(Orange Pekoe)는 엷고 가벼운 맛을 낸다. BOP(Broken Orange Pekoe)는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마시는 홍차이고 BOPF(Broken Orange Pekoe Fannings)는 더 작은 입자로 이뤄져 있으며 맛이 강해 밀크티를 만들 때 제격이다. 이 여행 중 생산지뿐만 아니라 수퍼마켓이나 일반 기념품 숍을 지날 때마다 브랜드 별로 티를 양껏 담았더니 6개월이 행복했다. 아침에 한 잔, 오후에 두 잔, 자기 전에 한 잔. 밀크티 만들 때 설탕 대신 향 시럽이나 꿀을 활용해보니 그도 괜찮았다. 가향티 중에는 믈레즈와 브랜드의 사워솝(Soursop)을 골랐다. 사워솝은 망고와 파인애플 맛이 나는 연두색 열대 과일이며 포르투갈어로는 ‘그라비올라(Graviola)’, 스페인어로는 ‘구아나바나(Guanavana)’라고 부른다. 현지의 홍차 가격은 우리나라의 1/3내지 1/5 정도였다.

“오늘 숙소는 샨티가 구해주세요. 아는 곳이 있나요?”

아침에 드라이버 ‘샨티’에게 호텔 예약을 맡겼다. 그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람보다 폭포 바로 앞에 멋진 곳이 있어요. 분명 좋아할 거예요” 한다. 그의 안내로 도착한 람보다 폴즈 호텔(Ramboda Falls Hotel)은 객실 수가 꽤 많은 본격 호텔이며 차 밭이 내려다 보이고, 폭포전망이 있는 곳이었다. 인터넷이 약해, 폭포 소리가 우렁차게 쏟아지는 베란다에 나와 와이파이를 잡아야 하는 것 빼고는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린 홍차 여행을 하는 동안 2박을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트리플 룸 2박에 세 명의 아침, 저녁식사 모두 포함하여 우리 돈으로 약 20만원 정도. 스리랑카 홍차 여행의 본거지가 이곳으로 결정이 된 것이다.

▶실론티의 본고장에서 즐기는 ‘블랙티’

차량으로 이동 중 현지인 식당에 내려 요기를 한다. 질리도록 먹게되는 커리와 로티. 매운맛이 강한 스리랑카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돌아보니 스리랑카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이라면 홍차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이다. 고원지대에서 4일을 보내며 차 향기를 원 없이 맡고,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양 옆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녹색 양탄자에 매일 안구 정화를 하다니, 이것은 정녕 홍차 여행의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알 만한 명품 홍차들은 대부분 유럽 브랜드이지만 그 차의 원산지는 대부분 스리랑카다. 당연히 차 밭의 주인인 영국인들은 어마어마한 토지를 소유한 대농장주들이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작고 마른 덩치의 인도에서 온 소수민족 타밀 여인들이다. 적은 임금에 고된 노동이 이루어지는 삶의 현장이지만 참 잔인하게도 그 풍경이 눈 시릴 정도로 아름답고 포토제닉했다. 사람들은 연신 차 밭의 여인들을 불러내 사진기를 들이댔다. 익숙하다는 듯 렌즈를 응시하는 그들의 손엔 ‘모델비’를 쥐어 주어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스리랑카 산 차를 ‘실론티’라 부르는 이유는 1972년 이전엔 스리랑카를 ‘실론(Celyon)’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실론티엔 녹차나 허브티, 과일티도 있지만 홍차가 가장 유명하다. 스리랑카산 홍차의 90%는 외국에 수출되고 있다. 세계 3대 홍차 생산국인 인도, 스리랑카, 중국의 생산지 이름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었는데 우리가 익히 들어본 아쌈, 다르질링, 닐기리는 인도의 홍차 생산지역이고, 누와라엘리야, 우바, 캔디, 담불라 등은 스리랑카의 생산지 이름이다. 세계적인 홍차 브랜드 중 립톤, 딜마가 ‘실론티’를 주로 사용한다. 그중 딜마 브랜드는 누와라엘리야에 있는 그랜드호텔 내에 티라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유서 깊은 호텔을 천천히 둘러보고 딜마 티라운지에서 홍차 한 잔을 즐겨보도록 한다. 아니, 홍차가 주는 여유를 즐기는 시간은 여행자에게 꼭 필요하다.

딜마 티라운지에서 배운 홍차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한 원산지의 찻잎으로만 만든 것이 ‘싱글에스테이트티’ 또는 ‘스트레이트티’이고 여러 원산지의 찻잎을 섞은 것이 ‘블렌디드티’다. 대표적 블렌디드티가 아쌈, 실론, 케냐 산을 블렌딩한 ‘잉글리쉬 블랙퍼스트티’가 되겠다. 바닐라, 진저, 코코넛 등 과일이나 허브향을 홍차에 섞은 가향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베르가못을 섞은 ‘얼그레이’다. 아하! 잉글리쉬 블랙퍼스트티와 얼그레이가 그런 차이가 있었구나.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스리랑카 현지에서는 홍차를 그냥 마시기도 하지만 밀크티로도 자주 즐겼다. 홍콩, 영국, 인도, 일본 모두 밀크티가 있지만 나라마다 방식이 다르다. 인도식 밀크티인 ‘마살라 차이’는 시나몬, 카다뮴, 정향 등을 넣고 찻잎과 같이 끓인 후 데운 우유를 붓는다. 우유를 밀크팬에 넣어 직접 끓이는 ‘로열밀크티’는 일본에서 마시는 방식으로 우유의 비율이 높다. 스리랑카에선 보통 데운 우유와 설탕을 홍차에 적당히 가미하여 마시며 밀크파우더와 설탕을 테이블에 비치해두고 취향에 따라 편하게 마시게 한다. 누와라엘리야를 떠나 하푸탈레와 엘라로 이동하기로 한 아침, “하푸탈레는 뭐가 있는데? 홍차는 이제 그만 보자, 충분해, 이제 그만!” 이라고 외치는 아버지에게 “풍경이 끝내준대요. 그리고 유명한 하이킹 코스가 있어요”라고 꼬드겼다.

[글 조은영(여행작가, 무브매거진 편집장) 사진 및 일러스트 조은영, 픽사베이,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93호 (17.08.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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