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비디오테이프 가져오세요..추억과 행복 돌려드려요"

2017. 8. 1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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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 파일로 바꿔주는 사업 아이디어 낸 고병득 강서구 공보전산과장

석달간 500여개 접수 ‘호응’

“딸과 추억 나누고 싶은데…”

시중가 80% 수준 가격으로

구 영상미디어센터가 기반

고병득(왼쪽) 강서구 공보전산과장이 11일 사무실에서 비디오테이프의 디지털 파일 변환 사업 담당자인 신연숙 주무관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서구 제공

“소중한 것을 다시 살릴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강서구 주민 이철희(65)씨는 지난달 숙원 사업을 이뤘다. 35년간의 봉사활동 기록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20개를 디지털 파일로 바꿔 시디(CD)에 담은 것이다. 강서구 자치신문에서 디지털 파일 변환 서비스에 대한 소식을 보고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한달음에 구청을 찾았다고 한다. “집에 쌓여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어떻게 다시 볼 수 없을까 늘 안타까웠죠. 구청의 서비스에 너무 고마웠어요.”

강서구는 지난 5월부터 비디오테이프 디지털 파일 전환 서비스를 주민행복증진사업으로 해오고 있다. 석달 동안 비디오테이프 500여개가 접수될 정도로 주민들 반응이 좋은 편이다. 처음엔 한대였던 비디오플레이어도 매달 한대씩 늘어 이젠 석대가 되었다. 작업에 참여하는 인원도 3명으로 늘었다. 양천구, 성동구, 광진구 등 다른 자치구에서도 운영 방식에 대해 문의를 해왔다.

아이디어는 공보전산과 고병득(58) 과장이 냈다. 고 과장은 20대인 두 딸과 추억을 나누고 싶은데 비디오플레이어가 없어 난감했던 개인 경험에서 디지털 파일 변환 서비스를 제안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랍에 처박혀 있는 비디오테이프 영상들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많았어요. 애들 어릴 때 자라는 모습을 보며 추억에 푹 빠지고도 싶고,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부모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으며 자랐는지 보여주고, 애들과 얘깃거리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얘기했더니 현재 구청의 장비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바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런데 수수료를 얼마로 할 것인지 고민이었다. 무료 서비스를 하면 기부행위가 되어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것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의견이었다. 시중 가격에 견줘 지나치게 낮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은 끝에 시중가의 80%인 8000원으로 정했다. 그리고 전액을 장학기금으로 전달하기로 했다. “추억을 다시 꺼내 보는 기쁨도 있고, 지역의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데 동참하는 즐거움도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만들어 냈어요.”

현재 이용자의 대부분은 50대 이상이다. 이 연령대의 주민들은 결혼식, 자녀들 유치원 재롱잔치, 부모님 회갑연 등에서 비디오테이프 영상 촬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소중한 추억을 다시 볼 수 있어 행복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디지털 파일 변환 서비스에 가장 어려운 점은 테이프들이 평균 20~30년 된 것이라 복원에 실패하거나, 복원해도 화질이나 음질에 부분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접수한 비디오테이프의 10~15%가량에서 이런 문제가 생긴단다. 담당자인 신연숙 주무관은 “접수할 때 미리 고지하지만 가끔 작업자의 실수를 의심하는 주민도 있어 일주일간 작업 결과를 보관했다 확인해 오해를 풀기도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파일 변환 서비스를 하면서 고 과장은 가족 간의 소통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사업 아이디도 내놓았다. “가족 간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가족에게 2분짜리 희망 영상 메시지를 만들어 보내는 사업을 추진하려고 해요.”

디지털 파일 변환 서비스와 영상 메시지 제작은 강서구의 영상미디어센터라는 기반이 있어서 벌일 수 있는 사업이다. 강서구는 2002년 인터넷 방송국을 만들면서 주민 영상교육 등으로 사업을 넓혀 영상미디어센터를 열었다. 고 과장은 3년 전부터 센터 운영을 맡아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우리 아이 성장 추억 동영상 만들기’ 수업은 참여한 엄마들이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찍어 훗날 가족이 함께 보며 추억을 나눌 수 있게 한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센터의 아나운서가 ‘스피치 교육’을 해 아이들이 말하는 데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열었다.

고 과장은 아이디어를 참 많이 내놓는다. 그의 다채로운 이력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던 그는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방송통신대 국문과를 다녔고, 1996년 계간 <창조문학>에 신인상을 받아 소설가로 등단했다. 글쓰기 능력을 인정받아 구로구와 강서구에서 26년간 줄곧 공보 업무를 했다. 한방에도 조예가 깊어 2005년에는 침구사 자격증을 따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내년에 정년퇴직을 앞둔 그는 “은퇴하고 나면 소설도 쓰고 침으로 봉사활동도 하며 살 생각입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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