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문재인, 역대 대통령 첫 광복절 경축사에 뭘 담았나

2017. 8. 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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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157

[한겨레]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 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8월 15일은 광복절입니다. 대통령이 경축사를 합니다. 임기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첫 번째 광복절 경축사는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취임사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만 제외하고 1987년 이후 대통령은 모두 12월 대통령 선거에 당선돼 다음 해 2월 25일에 취임했습니다. 그리고 대략 6개월 뒤인 8월 15일에 대통령으로서 첫 번째 맞는 광복절 경축사를 했습니다. 취임한 지 6개월이면 국정에 대한 자신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꿈과 희망을 한껏 펼쳐가는 시기입니다.

노태우부터 박근혜까지 지난 대통령들이 첫 번째 광복절 경축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상당히 많은 분량입니다. 그들이 첫 번째 광복절을 맞아 어떤 꿈과 희망을 밝혔는지, 그 꿈과 희망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원문은 워낙 길어서 다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제 기준으로 의미가 있는 대목만 추려서 보여드리고 간략한 설명을 붙였습니다.

노태우, 김일성 주석에게 남북한 최고책임자 직접 회담 제안

노태우(1988년 광복 43주년) “이제 온 국민의 힘과 정성을 모아 7년을 준비해 온 서울올림픽은 한 달 뒤로 다가왔습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은 우리 겨레 모두에게 우리가 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무한한 자신과 긍지를 심어줄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선진국으로 뛰어오를 도약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1년간 천길 벼랑과 같은 국가적 위기를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로 전환하여 이를 극복하고 오늘의 ‘정치적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국민의 슬기로운 선택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이제와 같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면 4년 후인 1992년, 일 인당 국민소득은 6천불을 넘어설 것입니다. 나아가 10년 이내에 우리는 일 인당 국민소득 1만불 시대를 맞게 될 것입니다.” “지난 7월 7일, 나는 남과 북이 이제는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민족공동체로서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40년이 넘은 같은 민족 간의 분단장벽은 이제 개방과 교류, 협력으로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여건을 성숙시켜 평화적 통일의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남북한 최고책임자가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광복 43주년을 맞아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6천만 동포의 염원에 따라 민족의 통합을 실질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나와 만나 회담할 것을 제의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물인 1987년 개정 헌법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1988년 광복절 경축사가 발표된 것은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때였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민심 수습을 위해 유치한 서울올림픽이었지만, 서울올림픽은 우리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야당의 대선후보였던 김영삼-김대중 씨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어부지리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가 말한 ‘천길 벼랑과 같은 국가적 위기’는 87년 6월항쟁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승자의 여유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그의 전망대로 됐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일시적으로 1만 달러 이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갔고 지금은 2만70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시 경축사를 통해 김일성을 ‘주석’이라고 처음 호칭하며 회담을 제의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는 재임 중에 소련·중국과의 수교,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등 상당한 업적을 이뤘습니다.

김영삼 “북한 핵 투명성 보장하면 핵에너지 공동개발 나설 것”

김영삼(1993년 광복 48주년) “새 문민정부는 이같은 임시정부의 빛나는 정통성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임시정부 선열 다섯분의 유골을 봉환하여 국립묘지에 모신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옛 총독부 건물과 총독 관사를 철거키로 한 뜻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민족의 역사는 바로 서야 합니다. 민족의 자존심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번 금융실명제 실시와 공직자 재산공개는 ‘신한국’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땀 흘린 만큼 열매를 거두는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로 가는 대로가 열렸습니다. 역대 어느 정권도 감히 해내지 못한 일을 문민정부가 해낸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북한 당국이 핵무기 개발 의혹을 해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이제 남북 기본합의서는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 주는 일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기 바랍니다.” “북한이 핵 투명성을 보장하고 성실하게 대화에 임한다면, 우리는 핵에너지를 비롯한 자원의 공동개발과 평화적 이용을 위한 협력에 적극 나설 것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취임 초기에 많은 개혁 조처를 전광석화처럼 해치웠습니다. 군 사조직 하나회 출신들을 내쫓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 공직자 재산을 공개했습니다.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경축사에는 자부심이 흘러넘칩니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사태를 불러오면서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나친 자신감과 공명심이 그를 교만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경축사 내용을 보면 김영삼 정부 초기에 이미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한반도 상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대중 “50년간의 남북대결 주의 넘어서 교류협력 시대 열 것”

김대중(1998년 광복 53주년) “‘제2의 건국'은 우리가 역사의 주인으로서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그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시대적 결단이자 선택입니다. 또한 '제2의 건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저력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완성하기 위한 국정의 총체적 개혁이자 국민적 운동을 가리킵니다.” “‘국민의 정부'는‘제2의 건국'을 계획하고 추진하고자 다음과 같이 국정운영의 6대 과제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권위주의로부터 참여 민주주의로의 대전환을 이룩하여 국민과 정부 사이에 쌍방통행의 정치를 만들겠습니다.” “둘째는 관치로부터 경제를 해방시켜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에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셋째는 독선적 민족주의와 같은 폐쇄적 사고에서 벗어나 보편적 세계주의로 나아가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넷째는 물질 위주의 공업국가를 창조적 지식과 정보 중심의 지식기반 국가로 바꾸어야 합니다.” “다섯째는 노사 간의 대립과 갈등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화합과 협력의 시대를 향한 신노사문화를 창출하는 역사적 대전환을 이룩해야 합니다.” “여섯째는 지난 50년간 한반도를 지배해온 남북대결 주의를 넘어서, 확고한 안보의 기반 위에 남북 간 교류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가고자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복 53주년 기념일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제2의 건국’을 대대적으로 제안했습니다. 선거에 의한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로 당선된 대통령답게 대한민국을 아예 새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입니다. 그가 밝힌 국정과제 중에는 지방경찰 제도 실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저효율 고비용의 국회제도 개혁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2의 건국’은 여론의 강한 역풍을 맞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 운동처럼 정부 주도의 운동이 먹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를 확대해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제2의 건국’을 실현하려면 국회에서 다수 의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밀려 1당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개혁의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 기본합의서 정신에 입각해 북한의 안정과 발전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며 금강산 개발과 농업개발을 포함한 경제협력 지원을 제안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보낼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의 강한 집념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결실을 보았습니다.

노무현 “자주독립 국가는 스스로의 국방력으로 나라 지켜야”

노무현(2003년 광복 58주년) “경제와 안보를 보다 튼튼하게 다져야 합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번영의 질서가 자리 잡게 해야 합니다.” “민생을 안정시키고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 주택가격을 비롯한 부동산 안정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자주독립 국가는 스스로의 국방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저의 임기 동안,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리 군이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정보와 작전기획 능력을 보강하고, 군비와 국방체계도 그에 맞게 재편해 나갈 것입니다. 주한미군의 실질적인 전력이 약화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부대의 재조정도 수용하려고 합니다. ‘용산기지'는 가능한 최단 시일 안에 이전하도록 할 것입니다. 주한미군 제2사단의 재배치 등 전반적인 재조정은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 상황에 맞추어서, 그 시기를 조절해 시행하도록 부시 미국 대통령과 협의하겠습니다.” “다행히 북핵 문제는 이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북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핵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핵무기는 결코 체제보장의 안전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고립과 위기를 자초하는 화근일 뿐입니다. 이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우리는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해서 앞장설 것입니다. 이웃 나라들과 협력해서 국제기구와 국제자본의 협력도 아울러 끌어들일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제와 안보를 튼튼하게 다져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10년 이내에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생 안정을 위해 주택가격을 비롯한 부동산 안정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국민소득 2만 달러는 달성했지만, 부동산 안정은 실패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8월15일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8.15경축행사장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3년 광복절 경축사의 핵심은 자주국방 선언이었습니다. 그는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을 상호보완의 관계로 파악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질서가 평화와 번영의 질서로 발전하게 되더라도 한편으로는 대립과 갈등의 잠재적 가능성이 계속 존재할 것”이라며 “그동안 한미동맹 관계는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제안을 미국 정부나 한국의 보수 야당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로 가는 길목에 북한 핵 문제와 남북관계가 가로놓여 있다”고 지적하고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도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그는 북한 핵이라는 숙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에 북한이 핵실험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고를 무시했던 미국 정부나 우리나라 보수 세력은 그 이후 사태를 훨씬 더 악화시켰습니다.

이명박 “해양시대와 대륙시대 동시에 열면서 통일한국, 세계중심국가로”

이명박(2008년 광복 63주년) “대한민국 건국 60년을 맞는 오늘, 저는 ‘저탄소 녹색성장(Low Carbon, Green Growth)'을 새로운 비전의 축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 녹색 기술(GT: Green Technology)과 청정에너지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국가발전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녹색기술은 정보통신기술(IT), 생명공학 기술(BT), 나노기술(NT), 문화산업기술(CT)을 아우르면서도 이를 뛰어넘습니다. 녹색기술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일자리 없는 성장'의 문제를 치유할 것입니다. 재생에너지 산업은 기존 산업에 비해 몇 배나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정보화시대에는 부의 격차가 벌어졌지만 녹색성장 시대에는 그 격차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녹색성장은 한강의 기적에 이어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해양과 대륙이 연결되어 한반도는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바닷길, 땅길, 그리고 하늘길로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번영의 관문이 될 것입니다. 부산에서 화물을 싣고 대륙횡단철도를 따라 중앙아시아, 서유럽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해양시대와 대륙시대를 동시에 열면서 통일 한국은 세계중심국가로 도약할 것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향후 60년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녹색성장을 통해 다음 세대가 10년, 20년 먹고 살 거리를 만들어내겠다고 했습니다. 2009년 1월 대통령 직속기구로 녹색성장위원회가 설치됐습니다.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이 제정됐고 시행됐습니다. 그러나 녹색성장 비전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녹색성장위원회는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 소속으로 변경됐고 이후에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2008년 8월15일 경복궁 흥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60주년및 63주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습니다. 광복절 경축사에도 ‘남과 북 모두 함께 잘사는 꿈’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금강산 피격사건,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습니다. 남북관계는 점점 더 악화했습니다.

박근혜 “불신과 대결을 넘어 평화와 통일의 시대 열어가야”

박근혜(2013년 광복 68주년) “올해로 남북이 분단된 지 68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남북한 간에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북한이 핵을 버리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동참한다면,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어려움도 함께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한쪽에서 굶주림과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새 정부는 정치적인 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적인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일본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함께 열어갈 중요한 이웃입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최근 상황이 한일 양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직시하려는 용기와 상대방의 아픔을 배려하는 자세가 없으면 미래로 가는 신뢰를 쌓기가 어렵습니다.” “일본은 이런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안고 살아가고 계신 분들에 대해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책임 있고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강조하며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는 2002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많은 사람이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북한을 대화로 끌어낼 수 있는 역량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제68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2013년 8월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광복회원,독립유공자,주요 내빈 등 3천 여명이 참석해 열렸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의 재임 기간에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개성공단을 폐쇄했고 사드 배치를 전격 결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불안정성이 점점 높아가고 있습니다. 부담은 고스란히 문재인 정부가 떠안았습니다.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 방안에 합의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 합의를 바탕으로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고를 친 셈입니다. 위안부 문제의 부담도 문재인 정부로 넘어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임자 탄핵과 궐위에 의한 5월 9일 대선으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100일이 지나기도 전에 첫 번째 광복절을 맞았습니다. 북미대결이 격화하며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맞은 첫 번째 광복절입니다. 경축사도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문재인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북핵 반드시 평화적 해결”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할 것 없이 평화입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 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입니다.”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제 지난 백 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 년을 위해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광복절 경축사도 훗날 그의 업적과 함께 평가받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첫 번째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평화의 꿈’과 ‘통합의 희망’이 모두 다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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