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이 뭐길래

2017. 7. 3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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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경지에 다다른 고수에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넓은 앞마당의 대형 천막 아래 수십 명이 번호가 불려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수법은 이랬다.

가장 수상한 후기는 같이 간 일행이나 자신의 인증샷이 없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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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사에 다닐 때 한 선배가 여름철 점심 시간이면 사라지곤 했다. 미식가로 유명한 선배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혼자 몰래 냉면집을 다닌 거다. 진상을 알게 된 후배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지자 그 선배 왈, “미안하다. 내가 너무 아끼는 식당이라서…”

이 정도 경지에 다다른 고수에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선배야말로 진정한 미식가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우린 두 손을 들었다. 그 음식점은 지금은 평양냉면 좀 안다는 사람은 다 아는 성지가 됐다. 여름철에는 늘 줄을 서야 하지만 나도 30년 넘는 단골이 됐다.   

▶ 강남구 한 허름한 골목에 잘 아는 콩국수집이 있다. 테이블은 네다섯 개밖에 되지 않았다.고소하면서도 담백한 콩물이 생각날 때마다 제법 오랜 세월 다녔다. 지금은 안 간다. 인터넷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식사 시간이면 줄을 서야 했다. 식당도 신장개업을 해서 넓어지고 인테리어도 세련돼졌다. 값도 슬그머니 올랐다. 그런데 왠지 맛이 예전 같지 않고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엉덩이가 불편했다. 그 선배의 마음을 이해할 만했다.   

▶ 이번 휴가철에 전 구간이 완전 개통한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속초에 다녀왔다.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은 당연히 맛집 탐방이다. 그 고장 사람이 아닌 한 인터넷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먹고 싶은 물회를 검색했다. 가장 포스팅이 많은 식당을 선택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게다.

휴가철임을 감안해도 은행처럼 순번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하는 음식점은 처음 가봤다. 넓은 앞마당의 대형 천막 아래 수십 명이 번호가 불려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크는 연신 “○○번 손님 입장하세요”를 외쳤다. 기분이 좀 묘했다. 행사장 이벤트에 참가한 느낌이랄까. 신축한 듯한 4층짜리 현대식 대형 단독 건물에는 층층마다 손님이 꽉 들어찼다. 천천히 먹으면 왠지 뒤통수가 따가울 것만 같았다. 전국 어디든 택배도 해준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아들은 “웬만한 중소기업 저리 가라네요”라고 감탄했다.

▶ 음식점 자영업이 위기라고 한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2015년에 자영업 중 음식점의 폐업률이 가장 높았다. 15만 3000여 명이 폐업해 전체 자영업 폐업자의 21%였다. 반면 음식점(주점업 포함) 수는 약 65만 개로 늘어났다. 국민 약 80명 중 1명이 음식점 사장인 셈이다. 가장 손쉽게 창업할 수 있으면서 가장 빨리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서 알바보다 적게 가져가는 동네 골목의 치킨집 분식집 사장이 실제로 생겨나고 있다.
TV에는 하루 매상이 수백 만 원이니, 1000만원 대니 하는 유명 맛집 이야기만 나온다. 잘 되는 집은 계속 잘 되고, 안 되는 집은 여전히 안 된다. 우리는 왜 유명한 맛집만 배불려줄까.

▶ 나도 맛집을 찾아다니지만 맛과 정성이 유명세에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그래도 그리 유명하다니 한 번 안 가보면 안 될 거 같은 강박심리가 있다. 특히 ‘○대천왕’이니 ‘○○미식회’니 하는 TV의 유명 먹방 프로그램에 약하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한 해물탕집을 방송이 나온 주말에 간 적이 있다. 이런 걸 도떼기 시장이라고 하나. 전쟁터였다. 손님은 결코 왕이 될 수 없는 구조였다. 종업원이 왕이었다. 그날 나는 아내의 구박만으로 배가 불렀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도 누굴 만나려면 타성처럼 음식점을 검색한다. 검색에 안 잡히는 집에 가는 건 모험이다. 이것도 병인 줄 알면서.

▶ TV 채널도 많아지고 덩달아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넘치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식당마다 TV에 나온 집이라고 내걸고 있다. 같은 메뉴가 몰려있는 먹자골목은 특히 그렇다. 그러다보니 어떤 식당은 아예 ‘TV에 안 나온 집’이란 발칙한 문구로 차별화 전략을 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압권은 ‘TV에 나올 집’이라고 떡 내걸은 어느 식당이었다. TV와 맛집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다.

▶ 네이버 검색창에 ‘맛집 블로거 마케팅’을 쳐봤다. 50개가 넘는 업체가 떴다. 그 내용은 대체로 이렇다. “맛집 블로거, 100% 리얼 후기, 기획부터 체험까지, 배송상품 리뷰도 가능, 광고 집행기간 25~36개월.”

서울경찰청이 최근 한 블로그마케팅 업체 대표를 구속했다. 그의 수법은 이랬다. 블로그에 한 시간에 두세 번씩 자동으로 클릭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계약업체의 트래픽을 높여 검색 상위에 노출을 유지시켰다. 동일한 인터넷 주소(IP)로 반복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와 노트북 150대를 동원했다. 포털에 동일한 글이 여러 개 올라오면 포털 메카니즘이 인위적 조작으로 자동 인식해 게시글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이 점을 악용해 경쟁업소 후기를 마구 퍼날라 아예 검색이 되지 못하게 했다. 그는 식당과 서비스 업체 등을 대상으로 22억 원을 벌었다. 많이도 벌었다

▶ 맛집을 검색해서 가는 사람들은 이제 눈치가 빨라야 한다. 블로거들이 돈을 받고 좋게 써준 음식점 후기와 일반인이 자발적으로 쓴 후기를 구별하는 눈썰미가 있어야 한다. 공정위가 정한 규정이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내가 경험을 통해 터득한 구별 방법은 이렇다. 우선 마케팅 차원의 블로그 후기들은 전개 방식이나 표현이 비슷비슷하다. 혹하게 잘 쓴다. 오늘은 어디를 갔다가 우연히 이런 숨어있는 맛집을 알게 되었다든지, 대접할 손님이 있어서 발품을 팔아 어렵게 찾았다든지, 회식을 하러 갔는데 너무 만족했다든지 하면서 운을 뗀다. 또 사진의 해상도가 매우 높아 누가 봐도 참 잘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집을 소개한 다른 후기도 찾아봐야 한다. 동일한 사진인 경우가 많다. 한 메뉴만을 소개하지 않는다. 이것 저것 다 맛봤는데 한결같이 기가 막혔다고 한다. 그의 위는 얼마나 큰지 모르겠다. 가장 수상한 후기는 같이 간 일행이나 자신의 인증샷이 없는 글이다.

요즘엔 소비자 눈치도 빠르니까 마케팅 전술도 업데이트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아마추어 냄새를 풍긴다. 순진하고 거칠게 쓰기도 한다. 사진도 대충 찍고 식당의 단점도 은근히 지적한다. 홍보마케팅 기법은 늘 우리를 앞서 간다. 결국 감으로 진위를 가려야 한다.

▶ ‘입소문의 저주’란 말이 있다. 이건 신문에 나온 이야기다. 서울 강남구의 한 레스토랑은 한 유명 먹방 프로그램에 소개된 지 1년여 만에 휴업했다. 갑작스레 손님이 몰리자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갑자기 손님이 폭증하자 음식과 서비스의 질을 지키기가 어려워졌다. 마음에 드는 직원을 충원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손님들이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셰프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휴업 간판을 내걸었다.

방송에 나온 식당 중 30% 정도가 이런 ‘입소문의 저주’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 음식평론가가 말한 적이 있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입소문이 나면 주인은 당황하게 된다. 단골한테도 서비스가 소홀해지고 결국은 뜨내기 손님이나 단골이나 다 잃게 된다는 것이다. 또 인기가 올라가면 식당을 깎아내리는 악플에 시달릴 수도 있다.

▶ 내가 친구들과 자주 가는 술집 중에 서울대 앞 샤로수길에 위치한 횟집이 있다. 가성비가 최고 수준이다. TV에 방영됐다는 자랑도 없다. 그런데 손님은 늘 제법 많은 편이다. 주인장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렇다.
“뭐하러 방송에 나갑니까. 블로그 마케팅인지 SNS 마케팅인지 관심 없습니다. 그런 거 안 해도 장사 잘 됩니다. 찾아오는 손님 서비스하기도 힘이 딸리는 판에 손님 더 많은 거 원치 않습니다.”
그러면서 씨익 웃는다. “진짜 맛집은요. 숨어있는 집이에요.”

▶ 하상욱이라는 꽤 유명한 SNS 시인이 있다. 그의 시는 두 줄을 넘지 않는다. 우리의 고정관념과 인간관계, 일상에서의 위선이나 사회의 부조리를 한두 줄로 유쾌하게 비틀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촌철살인급이다. 두 줄짜리 그의 시다.
“내가 다른 걸까/내가 속은 걸까.”
이 시의 제목은 무얼까? 정답은 이 글 안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다.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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