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자연에 길을 묻다]뜸북뜸북 뜸북새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2017. 7. 3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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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나라 잃은 슬픔에 몸과 마음을 제대로 가눌 수 없던 시기였습니다. 일제의 눈을 피해 서울로 또 만주로 떠나야 했던 오빠를 그리워하는 누이동생의 애절함을 담은 ‘오빠 생각’입니다. 최순애 선생님(1914~1998)이 12살의 어린 나이에 쓴 동시에 박태준 선생님(1900~1986)께서 곡을 붙여 1925년에 세상과 만납니다.

노랫말의 속뜻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 무척 좋아했던 동요입니다. 대학 시절에 농촌활동을 갔을 때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멍석 위에 모여 앉아 꼭 불렀던 노래였으며, 이제 오십 후반에 들어섰지만 오랜 벗들을 만나면 부를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를 수 있는 동요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동요를 생각할 때 개인적인 안타까움 하나가 있습니다. 논에서 운다는 뜸부기입니다. ‘오빠 생각’을 지은 1925년은 말할 것도 없었겠고, 나의 중학교 시절이었던 1970년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논에는 뜸부기가 제법 많았습니다.

큰바람이 불지 않았는데 발길이 잦지 않은 구석진 논에 벼 몇 포기가 누워 있다면 그것은 뜸부기 둥지가 틀림없었습니다. 뜸부기는 우리나라의 여름철새입니다. 벼가 무릎 정도로 클 무렵에 와서 여름을 지나며 번식을 하고 가을이면 떠납니다. 수컷의 몸 색은 검은색이며, 부리는 노란색이고 발은 녹청색입니다. 수컷은 머리에 닭처럼 붉은 볏이 솟아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암컷은 수컷보다 조금 작고 몸 색도 옅습니다. 수컷이 벼 사이나 논둑을 걷는 모습을 보면 다리와 목이 조금 긴 검은색의 닭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뜸부기를 한자로는 수계(水鷄)라고 하며, 영어 이름이 ‘water cock’인 것도 이러한 까닭입니다.

노랫말에는 뜸부기가 ‘뜸북뜸북’ 우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뜸부기가 ‘뜸북뜸북’ 소리를 내며 울지는 않습니다. 뜸부기가 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 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에는 무척 힘겹게 기침을 하듯 목을 털며 ‘컥, 컥, 컥’ 하는 소리로 시작하다 ‘컥’ 소리가 ‘뜸’ 소리로 바뀌며 ‘뜸, 뜸, 뜸뜸뜸…’ 그렇게 웁니다. 하지만 이제 논에서 뜸부기를 만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천수만 일대나 민통선 안쪽을 비롯한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뜸부기가 먹이로 삼던 육상곤충, 수서곤충, 물달팽이, 우렁이 등이 먼저 논을 떠난 데다 정말 어이없게도 뜸부기가 몸에 좋다는 소문까지 퍼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논을 떠나거나 사라졌습니다. 뜸부기는 결국 2005년 3월17일 천연기념물 44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기에 이르는 우리 땅의 또 다른 슬픈 생명체가 되고야 맙니다.

논이 벼를 키우는 공간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논에서 벼만 자랐던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생물들이 어우러져 함께 숨 쉬는 온전한 습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많았던 논의 생명체들은 살충제와 제초제를 비롯한 농약의 독성을 더 이상 견뎌낼 길이 없어 논을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근래 농약의 사용을 자제하는 유기농법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더라도 아직은 안타까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얻기 위해 우리가 논에서 쫓아낸 친구들의 숫자는 다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논을 떠나지 않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생명체가 있다 하더라도 그 개체군의 크기는 이미 급격히 감소한 상태입니다. 뜸부기만이 아닙니다. 언뜻 떠오르는 것만 해도 등애풀, 올챙이자리, 물고사리, 매화마름, 붕어마름, 물뚝새풀, 세모고랭이, 생이가래, 곡정초, 넓은잎개수염, 통발, 논우렁이, 다슬기, 거머리, 벼메뚜기, 섬서구메뚜기, 긴꼬리투구새우, 물자라, 장구애비, 게아제비, 미꾸라지, 미꾸리, 드렁허리, 참개구리, 청개구리, 유혈목이, 능구렁이, 황새, 제비 등이 있으며 그중에는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종들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의 의미가 없는 생명체가 존재할 리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모두 서로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은 생태계라는 거대한 존재 사슬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생태계라는 무대에서는 인간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인간이 주인공이 되려고 하면 할수록 그 무대는 점점 엉망이 될 뿐입니다.

논에 대한 인간의 욕심이 도를 넘어서면서 우리 논의 현실은 정말 암담해졌습니다. 논에 벼만 외롭게 서있습니다. 녹색의 사막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생명체들은 살 수 없는 공간에서 홀로 버티고 살아남아 맺은 나락, 그 얇은 껍질만 벗겨낸 것이 바로 우리의 주식인 쌀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수십년 전으로 완전히 시간을 되돌리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논을 떠난 생물들을 다시 하나씩 불러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내쫓기는 금방이었어도 다시 부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해내야 합니다. 논에 벼만 홀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가 더불어 사는 공존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마을마다 ‘뜸, 뜸, 뜸뜸뜸…’ 뜸부기 소리를 다시 들을 마지막 기회의 시간만큼은 아직 있습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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