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소 습격' 서울 강북·도봉 일대 가보니.."쓰레받기로 퍼나를 지경"

이유진·유설희·유수빈 기자 2017. 7. 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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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4일 취재 기자의 노트북에 하늘소가 날아와 앉았다. 유설희 기자

“새처럼 날아다녀. 떨어지면 ‘툭’ 소리가 나.”

지난 24일 서울 강북구 국립 4·19묘지입구 사거리 인근에서 치킨집을 하는 차모씨(55)는 매일 밤마다 벌어지는 ‘벌레 떼’의 습격을 이야기하며 손사레를 쳤다. 차씨는 “일주일 전부터 밤에 손바닥만한 벌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며 “문을 열어두면 가게 안으로 수십마리씩 날아들어와 살아있는 벌레를 쓰레받기로 퍼날랐다”고 말했다.

이날도 가게 야외 테이블과 벽에 약 6㎝ 크기의 흑갈색 벌레 십여 마리가 붙어 있었다. 차씨는 “내가 직접 구청에 전화해 약을 쳐달라고 해 오늘은 그 수가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4·19묘지입구 사거리 인근 도로에는 5~6m 간격으로 벌레의 사체들이 발견됐다.

강북구의 한 편의점 인근에 붙어 있는 하늘소. 유수빈 기자

25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지금 서울 도봉구를 중심으로 미끈이 하늘소가 출몰 중인데 수십 마리씩 얼굴에 폭탄처럼 달라 붙고 있다”, “강북구에 사는데 밤만 되면 길가에 주먹만한 벌레가 1m 간격으로 보여 까치발을 들고 다녀야 할 정도다”, “하늘소 때문에 밤에 외출을 못하겠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시민들은 이 벌레를 ‘미끈이 하늘소’라고 불렀다. 미끈이하늘소는 옛 명칭으로 이 곤충의 정식 명칭은 ‘하늘소’다.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인 ‘장수하늘소’와는 다른 종이다. 성충 몸길이가 약 4~6㎝ 정도다. 몸은 흑갈색이며 등에는 회황색의 짧은 털이 밀생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약간 긴 회색의 털이 나 있다. 머리에는 미세한 주름 모양의 점각이 있고 앞가슴 등 쪽에는 큰 주름이 있는 게 특징이다.

서울 강북구 국립4.19묘지입구사거리 인근 인도에서 발견한 하늘소. 유설희 기자

난데없이 하늘소 떼가 출몰하면서 서울 강북·도봉구 일대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강북구 수유동 주민 박정심씨(59)는 “하늘소가 워낙 많아 날아다녀 사람 몸에 부딪히는 건 물론 차에 치이기도 한다”며 “27개월 된 손자가 있는데 아이들한테는 피해가 없을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정모씨(58)는 “밤에 길을 걷다 편의점에서 40~50마리가 떼지어 나오는 걸 봤다”고 했다. 수유동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전모씨(25)는 “불빛을 보고 날아든 하늘소 때문에 손님들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대전대학교 생명과학과 남상호 교수(생물학)는 “하늘소는 참나무 속을 갉아먹는 해충으로 인근에 산이 있는 지역에서 자주 출몰한다”며 “가뭄이 심했다 비가 갑자기 많이 오는 등 기상 여건 변화로 숲 속 유충들이 대거 부화해 개체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봉구에는 도봉산, 강북구에는 북한산이 있어 하늘소가 이들 산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홍성철 환경부 국립과학연구원 지구환경연구과 연구원은 “기후변화가 하늘소 개체활동 시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북구청 관계자는 “국립수목원 전문가들과 현장 실사를 실시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유진·유설희·유수빈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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