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대학 차별 말자는 취지는 좋지만..깜깜이 채용 우려도

나현준 2017. 7. 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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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전공 기재 않고 토익 점수도 해외 파트만..학점은 직무관련 과목에 한정
서류전형은 대부분 통과, 필기는 NCS기반해 출제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소재지출신 최소30% 선발

◆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 '블라인드 채용' 4대 궁금증 ◆

지난달 22일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열린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고등학생 두 명이 채용공고를 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올해 하반기부터 332개 공공기관이 최종학력, 가족관계, 출신지, 사진 등을 이력서에서 뺀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다. 출신 학교는 물론 학과, 나이, 성별 등을 모두 가린 상황에서 오로지 '실력'에 따라 인재를 뽑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지원자의 '스펙'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지방대 출신 등을 서류전형에서 줄줄이 떨어뜨렸던 현행 공공기관 채용제도의 문제점을 개혁한다는 점에서 방향은 맞지만, 문제는 이렇게 되면 공공기관의 수요에 적합한 인재를 어떻게 가려서 뽑을지가 새로운 숙제로 남는다. 물론 제대로 블라인드 채용 관행이 정착되면 채용 절차상의 공정성을 더 높일 수 있어 오히려 공공기관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도 나온다. 공공기관은 대체적으로 1차 서류전형, 2차 필기시험, 3차 면접으로 채용 절차가 진행된다. 단계별로 어떤 쟁점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① '대부분 통과하는' 서류전형 도입?

앞으로 공공부문 1차 서류전형은 대부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부터 학교, 학력, 학점, 영어 점수와 관련된 '스펙'뿐만 아니라 나이와 성별 등도 모두 기재란에서 빠지기 때문이다. 다만 토익은 영어를 필요로 하는 직무에 지원할 경우 관련 서류를 내야 한다. 가령 발전소 기술직렬이면 토익 점수를 낼 필요가 없다. 반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나 산업인력공단 해외인력 담당자와 같이 영어를 주로 써야 하는 기관에 응시하는 취업준비생은 토익 점수가 필요하다.

학점은 전체 학점이 아니라 응시하는 직무와 관련된 학점만 기재하면 된다. 가령 회계직렬에 응시하면 회계원리, 중급회계, 고급회계 등 관련 수강 과목만 기재하면 된다.

다시 말해 응시하는 직무와 관련된 '학점'(교육사항), 경력, 자격증만 보고 나머지는 모두 이력서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다만 특수경비직 채용에 시력을 요구하거나 연구직을 채용할 때 관련 논문이나 학위를 기재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직무 관련 활동이나 수강 이력, 자격증이 있다면 2차 필기시험을 볼 수 있게끔 기회를 준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② 필기시험은 직무능력 중심으로

2차 필기시험은 응시를 한 직무와 관련된 문제가 출제된다. 가령 생산공정 직무는 단계별 불량률과 투입비용이 표와 그림으로 제시되고 이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공정을 조합해야 최적의 비율을 맞출 수 있는지 등을 객관식으로 선택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정부는 각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기출문제를 단계적으로 공개하도록 할 예정이다. 그동안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관련 일부 샘플 문항만 공개됐는데 이를 확대하고 취업준비생이 보다 예측 가능할 수 있게 해 시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일부 수험생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전에는 1차 서류전형 때 상당 부분이 걸러졌다. 공공부문 취업준비생에게 선망의 대상인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학점은 평균 A에 경영학·경제학 등 해당 직렬 공부를 하면 누구나 예측 가능하게 입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차부터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탓에 오히려 열심히 스펙을 쌓은 학생들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커졌다. 그동안 영어, 학점 등을 관리해온 한 4학년 학부생은 "1차 서류전형은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응시생 누구나 다 2차 필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하면 그동안 내가 쌓아온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응시하는 직무와 관련된 서류를 냈다면 1차 서류전형을 통과시켜 필기시험을 보게끔 한다는 방침"이라면서도 "각 공공기관에 따라 상황이 다른 만큼 1차 서류전형 통과율을 자율로 맡길 것"이라고 밝혔다.

③ 압박면접 안 하지만…공정 면접 될까?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됨에 따라 앞으로 면접 과정에서도 개인 신상과 관련된 질문이나 압박면접은 금지된다. '냉장고에 코끼리를 어떻게 넣을 것인가?' 등 이상한 상황을 줘서 지원자의 임기응변 능력을 테스트하는 '압박면접'도 사라진다. 반면 '직무'와 관련된 경험이나 상황을 물어보는 체계화된 면접이 이뤄진다. 법무직렬은 회사가 처한 특정 소송 상황을 예시로 던져주고 어떤 식으로 업무를 처리할지를 묻는다. 이미 선도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5급 행정고시 공무원 면접에 참여했던 한 정부 관계자는 "지원자에게 문제를 던져놓고 해결 방법을 물어보면 50분이면 그 사람의 실력이 드러난다"면서 "블라인드 채용으로 공정성이 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④ 지방인재 채용은 어떻게?

앞으로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은 신규 채용 시 소재 시도 출신의 인재를 최소 30% 이상 뽑아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전체 공공기관에 대해 지방대 출신을 35% 이상 뽑도록 지도해왔고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현재 채용 인원의 절반가량을 지방대 출신으로 뽑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는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들이 소재지 인재를 적극 뽑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주로 이전한 한국전력공사는 고졸 채용 시 전남·나주 소재 고등학교 출신을, 대졸 채용 시 전남·나주 소재 대학 출신을 30% 이상 채용해야 하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역 대학과 연계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취지"라면서 "다만 타 지역 출신 등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있는 만큼 보완책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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