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지옥 넘어 바닥지옥에서 난 도망쳤다

2017. 7. 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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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런, 홀로
셀프 인테리어, 셀프 지옥
새로 얻은 낡고 평범한 연립주택
바퀴색 방문과 창틀부터 칠해갔다
도망칠 찰나 도착한 민트색 페인트
공사를 하면 할수록 욕심도 커졌다

싱크대 상부장 대신 선반을 세우고
겹겹이 장판을 뜯고 붙이는 데 열흘
인생 최초로, 나의 흔적이 남겨진
그곳이 나의 첫번째 집이었다

[한겨레]

칠지옥과 시트지 지옥을 지나서 모든 것이 끝나갈 무렵에, 나는 지옥문을 하나 더 추가했다. 화이트우드 색상의, 타일 모양으로 잘라놓은 장판을 한 장씩 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후회했다. 바닥 깔기는 칠이나 타일 붙이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살이의 시작을 함께한 상도동의 반지하집. 현관문을 열어두면 쥐와 고양이가 들어오는 친환경적이고 개방적인 구조였는데 너무 개방적이라서 나중엔 도둑까지 들어왔다.

청춘의 흑역사를 써 내려간 사직동 빌라. 겨울만 되면 냉동고가 따로 없을 정도로 외풍이 심했다.

일산동의 오래된 빌라. 여기서 얻은 교훈은 요즘 세상에도 물이 안 나오는 집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의 이사를 앞두고 끔찍한 옛집들을 차례차례 떠올렸다. 아무리 뒤져봐도 집에 얽힌 따스한 기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돌아보면 거의 10년간 마지못해서, 싸다는 이유로, 뾰족한 수가 없어서, 허술하고 위험하고 낡은 집에서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살았다.

3일의 칠지옥이 끝나자…

새로 얻은 집 또한 평범하고 낡은 연립주택이었다. 선택지가 여러 개라면 절대로 고르지 않을, 그런 집. 전세 계약서를 쓰는 자리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집주인에게 물었다.

“집을 고쳐도 될까요?”

집주인의 허락이 떨어졌고 중개인이 계약서 한쪽에 특이사항을 적어 넣었다. ‘페인트칠, 기타 인테리어 허용’이라고.

새로운 집은 꾸민다기보다 ‘고친다’는 표현과 더 어울렸다. 일단 바퀴색이라고 불리는 칙칙한 고동색이 방문, 창틀, 싱크대를 휘감았다. 몰딩은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가뜩이나 좁은 공간을 더 좁아 보이게 했다. 부엌 벽면은 집주인이 다이소에서 사다가 붙인 형광색 체크무늬 시트가 곱게 발려 있었다. 싱크대 상부장은 엉뚱한 위치에 덩그러니 달려 있었는데 안에는 인근 치킨집, 중국집에서 뿌린 스티커와 생활의 더러움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바퀴색 퇴치였다. 페인트칠에 앞서 방문과 창문, 몰딩에 젯소(gesso)를 발랐다. 젯소는 페인트의 색을 선명하게 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베이스 구실을 한다. 색조 화장을 하기 전에 프라이머를 바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방문을 칠하고 창문을 칠하고 몰딩을 칠하고 화장실 벽면을 칠하고 도배에서 소외된 두번째 방을 칠하고. 칠하고 칠하고 칠하고. 이 도도한 흐름을 끊고 밥을 먹으러 가기도 곤란해서 빵으로 때우며 칠하기에 전념했다. 그런데도 목표치의 반도 못 채웠다. 밖에는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불균질한 허연 액체를 얼룩덜룩 뒤집어쓴 집은 내가 손을 대기 전보다 훨씬 더 흉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이게 잘하는 짓일까? 집이라는 것은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는 연애편지가 아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지? 부담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오래 고민할 새도 없이 벤자민무어의 페인트와 붓이 집으로 배달됐다. 벤자민무어나 던에드워드의 페인트는 코스메틱 브랜드 나스(NARS)의 블러셔만큼이나 다양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떤 실패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가 고른 민트색 페인트를 칠해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다시 각오를 다졌다.

집을 칠한다는 것은 확실히 특이한 경험이다. 성당 천장에 걸작을 남긴 미켈란젤로도 아니고, 세상 어떤 사람이 방문, 창틀, 몰딩을 온종일 노려보겠는가? 이력서에 쓰고 싶을 정도다. ‘특이사항: 방문, 창틀, 몰딩 성애자’라고. 칠은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아서, 나는 새로운 집을 ‘칠지옥’이라고 불렀는데 3일 만에 드디어 지옥문이 닫혔다. 뿌듯했다. 흰색과 민트색으로 채색된 집은 한결 환해 보였다. 몰딩도 벽면과 같은 흰색으로 통일시켰더니 공간이 넓어진 것처럼 보였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부엌 벽면에 겹겹이 발린 시트지를 인정사정없이 잡아 뜯었다. 형광 연두에 세입자 하나, 형광 핑크에 세입자 둘. ‘추악한 시트지 콘테스트’에서 입상했을 것 같은 싸구려 시트지가 끝도 없이 나타났다. 마침내 시멘트 벽면이 드러났을 때 너무 감격해서 울 뻔했다.

그 자리에 눈처럼 희고 깨끗한 타일 시트를 붙였다. 시멘트 가루에 물을 붓고 치약과 비슷한 점도로 개는 공정에서 작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이것만 해내면 타일을 붙이는 일은 의외로 쉽고 재미있다. 미술시간에 지점토 인형을 만들던 것과 비슷하다.

셀프 인테리어의 함정은 공사를 진행할수록 욕심도 같이 커진다는 데 있다. 부엌 수리를 시작한 그날부터 나는 틈날 때마다 싱크대 상부장을 노려봤다. 커다랗고 더러운 수납장이 당장 없애버려야 할 부조화의 상징처럼 느껴져서 참을 수 없었다. 아마 베를린 장벽이나 레닌 동상을 그냥 둘 수 없었던 성난 군중들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저것만 없으면 훨씬 더 넓어 보일 텐데!

상부장을 떼어내는 일을 두고 마지막까지 망설인 이유는 그것이 혼자 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무모하게도 그 일에 뛰어들었다. 내부의 선반을 모두 꺼내고 벽에 박힌 못을 뽑은 다음 상부장의 몸통을 붙들고 잡아당겼더니, 조금씩 흔들거렸다. 혼자서 들 수 없는 무게라서 몸통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한 다음에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집수리의 전 과정 중에서 가장 무섭고 힘든 순간이었다. 상부장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키가 크고 얇은 선반을 세웠다. 그 위에 좋아하는 그릇과 컵을 마음껏 수납했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고르라면 주저하지 않고 그곳을 꼽았다.

칠지옥과 시트지 지옥을 지나서 모든 것이 끝나갈 무렵에, 나는 지옥문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토록 바퀴색과 맞서 싸웠음에도 거실 겸 부엌의 장판이 여전히 바퀴색이었다. 거실은 내가 빈둥거리고 책을 읽고 일을 하는 공간이라서 특별히 더 아름다울 필요가 있었다. 화이트우드 색상의, 타일 모양으로 잘라놓은 장판을 한 장씩 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후회했다. 바닥 깔기는 칠이나 타일 붙이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작업이다. 원래 깔려 있던 장판을 들추자, 엄청난 양의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맨바닥에 친환경 접착제를 바르고 장판 조각을 하나씩 붙이는데 신발에 접착제와 먼지가 엉겨 붙어서 걸음을 뗄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새로 붙인 장판을 더럽힐 수 없으니까 신발을 벗었는데, 한 시간쯤 흘렀을까? 접착제와 먼지가 양말과 신발, 장갑과 두 손, 새로 붙인 타일에 죄다 옮겨붙어서 모든 것이 끈적거리는 형국이 됐다. 우리 시대 최고의 걸작, ‘나 홀로 집에’의 악당들이 케빈에게 ‘접착제 공격’을 당했던 장면을 떠올려주길. 내가 딱 그 꼴이었으니까. 그날도 나는 작업을 하다가 말고 맨발에 운동화를 신고 집으로 도망쳤다.

저질러 놓은 일을 수습해야 했으므로 고통의 집수리는 계속됐다. 그 모든 공정에 정확히 열흘이 소요됐고 드디어 이삿짐을 옮겼다. 가구를 들여놓고 조명을 바꾸고 소품을 배치하고 나서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수리하고 꾸민 집에서 살 수 있었다.

셀프 인테리어, 마치 인신공양 같은

셀프 인테리어,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나를 갈아 넣는' 작업이다. 어릴 때 에밀레종 같은 인신공양 전설을 들었을 때 “무서워, 어떻게 산 사람을 넣을 수가 있어!”라고 정색했는데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건 은유도 소문도 아닌 팩트였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집을 향한 애착 때문이었다. 싱글들은 대개 무리해서 좋은 집을 얻을 일도, 살림을 새것으로 교체할 일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집이 그저 참고 살아야 할 공간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 나는 그 집을 떠나서 또 다른 집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집을 회상할 때마다 일렁이는 감정의 결은 다른 집의 그것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은 그 집에서 내내 행복했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곳을 ‘나의 집’으로서 사랑했고 그건 내 인생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삭막한 도시 어딘가 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에,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산다고 생각하면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낡고 좁고 흠이 많은 그 집이, 나의 첫번째 집이었다고.

All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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