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스포츠외교도 '발탁구의 힘'으로

2017. 7. 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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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IOC 선수위원이 아산 아시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 현장을 찾았다. [사진=더핑퐁/월간탁구]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아산)=유병철 기자] 지난 2일 ‘2017 대한항공 제23회 아시아 주니어&카데트 탁구선수권대회’가 한창인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사실상 한국 유일의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인 유승민(34) IOC 선수위원이다. 북한의 장웅 IOC위원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참석한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 그리고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의 방한까지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일정이었지만 자신의 뿌리인 탁구현장을 찾은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주요 스포츠이슈에 대한 유 위원의 의견을 들어봤다.

# 젊은 스포츠외교관

최근 국내외 스포츠계에서는 유승민 위원에 대한 호평이 많다. 모두가 언더독을 예상했지만 지난 8월 리우 올림픽에서 선수위원으로 당선됐고, 아직 채 1년이 안 됐지만 IOC 내에서는 자리를 잡고, 국내에서는 스포츠외교의 간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요란 떨지 않으면서도, 할 일은 다 하는 실속파로 소문났다. 바흐 위원장은 한국에 올 때마다 유승민을 찾을 정도다. “동료 선수위원은 물론이고, 오래 된 IOC위원님들까지 많은 분들과 친밀도를 높였어요. IOC위원들은 자기 나라에서는 중요한 인물들이잖아요. 이들은 통하면 어떤 일이든 쉽게 접근이 가능해요. 저도 놀랄 정도입니다.”

한 원로체육인은 “한국이 IOC위원 하나는 정말 잘 뽑았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뽑았다기보다는 자기가 열심히 한 것이지만 말이다”라고 평했다. 유승민 위원은 “집행위원회 등 IOC 상층부의 속살까지 제대로 알려면 한 3년은 더 걸릴 것 같아요. 제 임기는 8년으로 2024년까지는 아직도 7년여가 남았으니 열심히 하면 되겠죠? 참, 제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선수로 뛰었는데 그때 왜 독일어를 안 배웠는지 모르겠어(우승)”라고 말했다.

# 남북단일팀, 한국 IOC위원 추가

지난 5월 휠체어육상선수로 홍석만이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의 선수위원으로 선출되자, 유승민 위원은 직접 축하전화를 했다. 국제 스포츠외교 무대에서 협력하자고 말이다. 홍석만 위원의 기분이 좋았던 것은 당연하다.

문 대통령의 제안으로 화제가 된 평창 올림픽이 남북단일팀 및 동시입장은 어떨까? 유승민 위원은 “바흐 위원장이 IOC 차원에서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남북 NOC가 할 일이죠. 스포츠가 남북화합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난관도 많을 겁니다. 스포츠는 계속되는 만큼 평창 말고도 꾸준히 교류하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진단했다. 이쯤이면 감점을 줄래야 줄 수가 없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IOC위원 도전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석을 내렸다. “셀프추천 이런 얘기는 사실 절차문제 때문에 생긴 구설이에요. 사전에 관계자들과 충분히 의논했으면 그런 오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죠. IOC위원의 한 사람으로 한국 IOC위원이 늘어나는 것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이기흥 회장님도 좋은 조건을 갖추셨고요. 잘 되기를 기원하고,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겠습니다.”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에서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장웅 북한 IOC위원(오른쪽부터)을 만난 유승민 위원. [사진=유승민 위원 제공]


# 탁구 및 근황

유승민 위원은 큰아들 성혁 군(4)을 탁구장에 데려왔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는 동영상까지 보여주며 둘째 성공(3)의 운동신경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아들바보’ 30대 젊은 아빠의 전형에 가까웠다. “큰 애는 운동에 관심이 없는데, 작은 애는 운동신경이 깜놀이에요. 탁구, 골프, 축구, 태권도를 하는데 제법입니다. 아버지가 IOC위원이라고 올림픽 종목 다 해보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웃음).”

유승민 위원은 탁구에 대해서도 걱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1999년 이 대회(인도)에서 제가 최고 스타였어요. 남자 주니어 개인단식과 개인복식에서 우승했고, 단체전도 결승에서 중국과 붙었는데, 제가 단식 2개를 따면서 2-3으로 아깝게 졌죠. 그때 왕하오(현 중국대표팀코치)를 이기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에서 다시 이긴 겁니다. 후배들이 주니어시절부터 중국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한국탁구가 예전 같이 않아 속상하지만 곧 다시 올라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덧붙였다.

유승민 위원은 선수시절 ‘펜홀더 발탁구’의 상징이었다.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뛰는 것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다. 요즘 그의 모습을 보면 유승민의 발탁구는 탁구를 넘어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 위원은 IOC 회의 참석차 8일 출국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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