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뻐꾸기 둥지

기자 2017. 6. 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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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뻐꾸기도 유월이 한철이라고 누구나 한창 활동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되지 아니하니 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렷다. 뻐꾸기는 알을 스스로 품지 못하고 딴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으니 이를 탁란(托卵)이라 한다. 그래서 ‘뻐꾸기가 둥지를 틀었다’란, 턱도 없고 얼토당토않은 일을 비꼰 말이다. 그리고 뻐꾸기란,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얼간이에게 비기고, 남녀가 서로 유혹하는 행위를 ‘뻐꾸기 날리다’라고 한다.

오늘도 내 글방 너머 우뚝 선 저 피뢰침 꼭대기에서 뻐꾸기 수놈이 우렁차게 한껏 목청 높여 사랑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녀석들은 곧잘 앞이 탁 트인 곳의 큰 나무 우듬지나 전봇대에 앉아 꼬리를 까딱거리면서 울림 있는 소리를 고래고래 세차게 내지른다. 그 소리는 암놈을 꼬드기는 교태 어린 노래지 결코 구슬픈 울음이 아니다.

뻐꾸기(Cuculus canorus)는 아시아나 유럽 등 세계적으로 널리 살아가고, 4아종(亞種)이 있으며, 우리 뻐꾸기는 한국에서 알 낳고 새끼 치는 여름 철새로 대만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겨울나기를 한다. 뻐꾹새는 두견과로, 검은등뻐꾸기·벙어리뻐꾸기·두견·매사촌들과 한통속이다. 그런데 여름 철새는 대부분 숲새이고, 겨울 철새는 하나같이 바닷새이거나 들새이다. 그나저나 우리네 집집이 뻐꾸기(common cuckoo) 한두 마리씩 키우고 있으니 ‘뻐꾸기시계’거나 ‘쿠쿠밥솥’이다.

뻐꾸기 몸길이는 33㎝ 남짓이고, 등과 멱은 잿빛이 도는 푸른색이며, 배는 흰색 바탕에 회색 가로무늬가 나고, 꽁지는 긴 것이 회색 얼룩이 있으며, 다리가 노랗다. 또 매우 날렵하고 귀티 나는 날렵한 새로, 생김새가 천생 새매(sparrow hawk)를 닮았고, 주된 먹이는 다른 새들이 꺼리는 나방이 유충인 털북숭이송충이(毛蟲·모충)이다. 이들은 산자락이나 숲에 주로 살고, 뻐꾹거리는 녀석은 수컷이며, 암컷은 음치로, ‘삣 빗 삐’ 들릴 듯 말 듯 낮은 소리를 낼 뿐이다.

뻐꾸기를 포함한 두견과 새들은 다른 새에게 알을 맡기니, 이를 탁란이라 하고, 다른 말로 부화기생(brood parasitism)이라 한다. 십자매에게 금화조나 문조의 알을, 닭에게 꿩 알을 품기니 그 또한 탁란이다. 야마리 까진 기생(寄生) 새인 두견과 조류는 얼추 지구 전체 새의 1%를 차지하고, 이들은 숙주(宿主) 새인 뱁새·멧새·개개비·때까치들에게 알을 의탁한다.

그리고 엄청 큰 뻐꾸기와 꼬마 뱁새가 좋은 예인데, 기생 새는 어김없이 덩치가 제보다 작은 숙주 새를 고르니 그래야 새끼끼리 싸워 이길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자기를 키워준 어미 새 둥지에 탁란하니, 이는 어미와 자란 보금자리가 이미 각인(刻印, imprinting)된 탓이리라.

그런데 우리나라에 5월쯤에 와서 10월쯤에 떠나는 뻐꾸기는 태어나서 자란 제 보금자리를 올바로 기억하는 귀소본능(歸巢本能, homing instinct)이 있고, 수명이 6년이나 되는지라 지금 저렇게 우는 놈은 분명 바로 저 자리를 몇 번(해) 다녀갔거나 지난해에 태어난 놈일 터다.

수컷들이 날개는 늘어뜨리고, 꼬리를 치켜들어 1∼1.5초 간격으로 뻐꾹뻐꾹 하고 우짖는 것은 암컷을 꼬드기는 행위다. 그래서 곁에 암컷이 있으면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몸을 양옆으로 움직이며 교태를 부린다. 그런데 뻐꾸기는 새매를 빼닮아서 매의 공격을 피할뿐더러 겁먹은 숙주 새가 숨거나 도망가기에 암컷이 들키지 않고 도둑 산란(産卵)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동물이 자신의 몸을 보호하거나 사냥하기 위해 모양이나 색깔이 다른 것과 비슷하게 됨을 의태(擬態, mimicry)라 한다.

그리고 기생 새의 알이 숙주 새의 알보다 훨씬 크지만 무늬와 색은 매우 흡사하니, 이 또한 알 의태(egg mimicry)다. 그리고 숙주 새 둥지 알이 네댓 개가 돼야 알 품기(抱卵·포란)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제야 알을 맡긴다. 예컨대, 줄곧 주변을 맴돌며 때를 노리던 눈치 빠른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새 허겁지겁 달려들어 성큼 뱁새 알 하나를 깨 먹거나 슬그머니 굴러 떨어뜨리고는 씨알 하나를 10초 안에 퍼뜩 낳고 얼른 줄행랑친다. 이렇게 이집 저집 어슬렁거리며 각각 다른 둥지에 여남은 개를 산란한다.

그런데 뱁새 알이 까이는 데는 14일이 걸리지만, 뻐꾸기 알은 9일이면 부화한다. 뻐꾸기 새끼는 까인 뒤 10시간이 지날 무렵이면 드디어 망나니 본성이 나타난다. 날갯죽지를 뒤틀어서 알은 물론이고 먼저 까인 뱁새 새끼들을 죄 몰아 둥우리 바깥으로 내쳐버린다. 싹쓸이가 따로 없다. 요상하게도 제 등에 야문 것이 닿았다 싶으면 발동하는 이런 본성이 일주일 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단숨에 사라진다. 암튼 녀석들의 이기적인 DNA가 참으로 무섭다.

그리고 뻐꾸기 새끼는 뱁새 어미 맘 사느라 갖은 재롱을 떨고, 뱁새 새끼 소리까지 흉내 내어 주둥이를 쫙쫙 벌려 보채면서 먹이와 사랑을 독차지한다. 제 새끼가 아닌 것도 모르는 뱁새 어미! 제 몸뚱어리를 통째로 삼킬 만큼 훌쩍 커버린 남의 새끼를 영문도 모르고 애면글면, 금이야 옥이야 보살펴 키우는 눈물겹고 안쓰러운 어미 뱁새! 어미 뱁새가 송충이 찾아 날이면 날마다 분주히 숲속을 쏘대고 있을 적에 싹수없는 얄미운 어미 뻐꾸기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어쨌거나, 기구하고 얄궂은 연분이다. 아픈 배로 낳은 어미와 가슴으로 기른, 두 어미를 가진 뻐꾸기 새끼다. 뻐꾸기는 그렇다 치고, 하물며 ‘뻐꾸기 인간’도 더러 있으매, 집 앞에 버려진 아이를 업둥이라 한다지. 요샌 아기 상자(baby box)라는 것도 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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