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콩글리시] '블로퍼', 가출한 여성신발의 진화

2017. 6. 1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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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올여름 여성패션의 마침표는 슬리퍼에 있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불고 있는 블로퍼 열풍에 이어 여름용 블로퍼라고 할 수 있는, '앞뒤가 시원하게 트여 있는 슬리퍼'가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일보는 동네패션의 상징인 슬리퍼가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고 썼다(2017. 6. 8). 발 뒤축을 감싸는 부분이 없는 '백리스(backless) 신발'의 전성시대가 올 여름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블로퍼, 발뒤축을 감싸는 부분이 없는 로퍼가 대세가 된 이래 발뒤축을 감싸는 부분이 없는 샌들인 '뮬' 역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서 여가수가 부른 노래제목이 '은빛샌들'이었다. 그 탓인지 2016년에는 샌들이 크게 유행했다. 한 때 양말 차림에 샌들을 신으면 최악의 패션이라고 평했다. 심지어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종래의 패션금기(禁忌)들이 사라지고 있다. 슬리퍼, 블로퍼, 로퍼, 샌들, 뮬…. 오늘 시비의 대상들이다.

샌들(sandal)이란 가죽끈으로 졸라매어 신는 뒤축이 없는 신발이다(a shoe made of a sole fastened to the foot by straps).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신던 가죽신에서 유래해 발등이 드러나고 뒷굽이 매우 낮은 여자의 여름용 신발 이름이다. 샌들은 1)발등에 덮는 것이 없다. 2)뒤축이 없고 따라서 굽이 낮다. 3)가죽끈으로 졸라서 신는다. 4)지금은 고무로 된 여성 덧신을 가리킨다. 이런 샌들이 슬리퍼 형태라니?

슬리퍼(slipper)는 원래 뒤축이 없는 실내용 신발(indoor wear)이다. 춤추기 위해 부인들이 신는 가벼운 구두도 슬리퍼라고 한다. 유리구두는 글라스 슬리퍼(a glass slipper)다. 통굽샌들이란 샌들에 일반 구두처럼 뒤축을 붙였다는 뜻이다. 신발도 하나의 패션으로, 변형된 새로운 디자인이 계속 출시되고 있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여름을 맞이해 샤넬 구치 마르니 등 명품브랜드가 '국민슬리퍼'로 불리는 삼선슬리퍼와 흡사한 모양의 '외출용 슬리퍼'를 출시했다. 마침내 실내화인 슬리퍼가 집밖으로 가출했다. 실내화 슬리퍼는 무도용의 가벼운 덧신을 지칭하는 말이었고 카펫 슬리퍼(carpet slipper)라고도 불린다. 카펫 슬리퍼란 양피(羊皮)나 헝겊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재질로 만든 실내화다. 집안에 있던 슬리퍼가 문밖으로 가출했으니, 진짜 실내용 슬리퍼는 뭐라고 해야 할까? 뮬(mule)이다(그런데 이 뮬도 가출했다!). 뮬은 뒤축이 터지고 발가락과 발등을 덮도록 만든 실내화다. 장거리를 나는 비행기에 탑승하면 승객들에게 제공되는 기내용 실내화가 뮬(mule)이다. 고무나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슬리퍼는 송스(thongs)라고 하는데, 발을 질질 끌고 다닌다는 데서 스컵스(scuffs)라는 별칭도 생겼다. 스컵스란 뒤축이 없는 굽 낮은 집안용 슬리퍼다(scuffs - a flat-heeled house slipper with no back upper part).

딸깍발이란 표현이 있다. 날씨가 맑은데도 변변한 신발이 없어서 비올 때 신는 나막신을 신고 밖으로 돌아다닌다 하여, '가난한 선비'를 지칭하던 말이다. 나막신 끄는 소리가 딸깍딸깍했던데서 유래했다. 스컵스 외에도 이 같은 표현이 하나 더 있다. 플립플롭(flip-flop)이다. 플립플롭은 고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값싼 샌들로 송스와 같은 말인데, 신고 걸으면 끌리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생겼다. 처음에는 플립플롭 샌들(flip-flop sandal)이었다가 부르기 쉽게 샌들이 떨어져 나가 플립플롭이 됐다.

신발 역시 진화한다. 이번 여름 '블로퍼(bloafer)'가 유행이다. 슬리퍼와 로퍼를 합친 모양의 신발을 우리나라에서 블로퍼라고 부른다. 백리스(backless, 뒤가 없는)와 로퍼(loafer)를 합성해 만든 기상천외한 콩글리시다. 신발의 뒷면을 없앤 로퍼라고 하여 backless의 'b'를 따다 loafer 앞에 붙여서 이런 엉터리 이름을 만들었다. 로퍼는 어떻게 생긴 신발인가? 영어로 로퍼는 부랑아, 건달, 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발을 쓱 넣었다가 쓱 뺄수 있는, 끈이 없는 운동화나 구두가 슬립온스(slip-ons)인데, 특히 가죽으로 만든 슬립온스를 로퍼라고 한다.

영국의 한 구두회사가 이런 신발을 와일드스미스로퍼(Wildsmith Loafer)라는 상표로 처음 출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회사의 상표가 보통명사로 바뀌었다. 로프(loaf)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는 뜻에서 로퍼(loafer)는 신고 돌아다니기 편한 신발을 가리키게 됐다. 멋쟁이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사는 무엇일까? 아마도 여자는 핸드백과 구두, 남자는 시계와 모자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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