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것보다 선하게 사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

권성희 금융부장 2017. 6. 1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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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우연히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을 봤다. 식인 거인으로 인해 멸망의 위기에 놓인 인류의 분투기를 그린 만화다. 케이블TV에서 잠깐 봤는데 식인 거인과 싸우다 죽어가는 병사들마다 “나는 인류에 도움이 됐을까요”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내 삶은 인류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돈을 많이 벌려는 것도, 성공하려는 것도. 자녀 교육에 목매는 것도, 건강에 신경 쓰는 것도 그것이 행복을 느끼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행복은 누구나 다 아는 개념이다. 그런데 마흔 이후의 삶을 분석한 ‘인생의 재발견’이란 책에 따르면 행복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우리가 흔히 아는 행복, 자신의 욕구가 충족됐을 때 느끼는 자기 중심적 쾌락이다. 둘째는 삶의 의미를 추구해가는 가운데 얻는 장기적인 행복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미 그 옛날에 자기 중심적 행복을 헤도니아(hedonia),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 소명을 완수하는 가운데 느끼는 행복을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로 구분했다. 에우다이모니아는 그리스어로 ‘행복’이란 뜻이지만 어원을 보면 ‘좋은’이란 뜻의 ‘에우’(eu)와 영혼이란 뜻의 ‘다이몬’(daimon)이 합쳐진 ‘좋은 영혼’이란 의미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 실현하되 인류의 공통 목표인 도덕성을 갖추는 것이 에우다이모니아에 이르는 길이라고 봤다. 선한 인간으로 살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성취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란 뜻이다. 행복 심리학자로 유명한 마틴 셀리그먼은 ‘에우다이모니아: 좋은 삶’이란 글에서 “자신이 지닌 최고의 힘이 무엇인지 깨달아 자신보다 더 크다고 믿는 무엇인가를 위해 그 힘을 활용하는 것”이 에우다이모니아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에우다이모니아에는 반드시 희생이 수반된다. 지금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꺼이 견디는 것이 에우다이모니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편안한 삶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양보하고 자녀를 키우는 것,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힘든 훈련을 참아내는 것, 회사를 키우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일하는 것이 모두 장기적인 성취를 위해 단기적인 안락을 희생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의 연구 결과 우리 몸은 자기 중심적 쾌락보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얻는 금욕적 충족감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로체스터대학은 150여명의 대학생을 깊고 오래가는 인간관계 등 내적 목표를 추구하는 그룹과 부와 외모, 명성 등 외적 목표를 추구하는 그룹으로 나눠 관찰했다. 그 결과 외적 목표를 달성한 그룹은 수치나 분노 같은 감정적 문제와 기력 부족 등의 신체적 증상을 호소했다. 반면 내적 목표를 추구한 그룹은 스트레스가 훨씬 덜하고 긍정적이었다.

UCLA의 의대 교수인 스티븐 콜은 단기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염증을 일으키는 게놈 지문을 보이는 반면 장기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대해 세포 차원에서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연구로 ‘행복한 것보다 선한 것이 낫다’는 심리학자들의 주장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단기적인 행복을 좇는 것보다 왜 우리 몸에 더 나은 것일까. 삶의 의미를 찾아 소명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위협을 덜 느끼고 결과적으로 싸우거나 도망칠 필요가 적기 때문이라고 콜은 설명한다. 자기 중심적 행복을 중시하면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위협당한다고 느낀다. 반면 삶의 의미와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은 행복이 자신의 욕구에 기인하지 않고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에서 비롯되기에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별로 위협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삶은 환경 때문에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미와 목적이 결여되어 있을 때 견디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우리를 최고의 행복으로 이끄는 것은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올라가 명성을 얻고 자녀도 잘되고 건강해서 비할 바 없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환경이라도 나보다 더 큰 가치에 의미를 두고 실현해나갈 때다. 너무 거창하긴 하지만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병사들처럼 인류에 보탬이 되는 삶을 고민할 때다.

문제는 내가 왜 사는지, 내 인생의 목적이 뭔지,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성경에서 예수가 수제자 베드로에게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요한복음 13장7절)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는 일과 처한 환경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며 깨닫는 때가 있다.

프랭클도 자신이 왜 유대인이란 이유로 수용소에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혹시라도 살아남는다면 수용소 경험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겠다는 목적의식으로 견뎌냈고 실제로 후일 이 경험으로 인류에 큰 위안이 되는 업적을 남겼다. 우리도 삶의 의미를 다 알 수 없지만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하고 보탬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그 목적의식으로 살아가면 이해하는 날을 맞는다. 그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사는 진정한 행복의 비결이라고 과학이 증명한다.

*로체스터대학과 스티븐 콜의 연구 결과 등은 '인생의 재발견'(바버라 브래들리 해커티 지음)에서 인용함.

권성희 금융부장 shkw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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