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민의 푸스발 리베로] '승격 견인' 클롭의 제자들, 빅 리그 강타할까?

2017. 5. 3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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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롭 아래에서 도르트문트 2군팀을 지도했던 바그너,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허더스필드를 EPL로 승격. 클롭 아래에서 도르트문트 연령대별 유소년팀을 차례대로 역임했던 볼프, 슈투트가르트 분데스리가 승격 견인.  

[골닷컴] 김현민 기자 = 위르겐 클롭(현 리버풀)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을 수행하던 당시 애제자였던 다비드 바그너와 한네스 볼프가 허더스필드 타운과 슈투트가르트를 1부 리그로 승격시키며 잉글랜드와 독일 무대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 바그너, 허더스필드를 45년 만에 1부 리그로

허더스필드가 플레이오프에서 셰필드 웬즈데이와 레딩을 차례대로 제치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로 승격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첫 EPL(1992년 출범) 승격이자 45년 만의 1부 리그 복귀이다. 그 중심엔 바로 바그너가 있다.

미군 부친과 독일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바그너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마인츠를 거쳐 1995년 샬케에 입단했다. 1996/97 시즌엔 백업 공격수로 활약하며 샬케의 UEFA컵 우승에 일조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진 미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A매치 8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으나 이후 하향세를 타며 2부 리가와 3부 리가를 전전하다 2005년 은퇴 수순을 밟았다. 

은퇴 후 호펜하임 19세 이하 팀과 17세 이하 팀 감독직을 수행한 걸 제외하면 딱히 하는 일이 없었던 그에게 지도자 경력을 선사한 건 다름 아닌 클롭이었다. 클롭은 마인츠 시절 동료로 한솥밥을 먹었던(클롭은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마인츠에서 활약했고, 바그너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마인츠에서 뛰었다) 바그너에게 도르트문트 2군 감독직을 제의했다. 

바그너는 도르트문트 2군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레기오날리가 서부 지구 우승을 선사하며 3부 리가(분데스리가의 경우 2군 팀이 3부 리가까지 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승격을 견인했다. 비록 2014/15 시즌 18위에 그치며 강등 수순을 밟았으나 3시즌 연속 3부 리가 잔류를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바그너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한 대표적인 선수로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참가한 독일 대표팀 측면 수비수 에릭 둠을 비롯해 독일 대표팀 미드필더 케렘 데미르바이(호펜하임), RB 라이프치히 주전 왼쪽 측면 수비수 마르첼 할스텐베르그, 그리고 쾰른 에이스 레오나르도 비텐코트 등이 있다. 지동원 역시 2014/15 시즌, 바그너 아래에서 5경기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2015년 10월 8일, 클롭이 리버풀 감독에 부임하면서 잉글랜드 전역에 클롭 스타일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폭했다. 속칭 클롭식 '게겐프레싱(Gegenpressing: 압박에 대한 재압박을 의미하는 용어로 강도높은 압박 축구를 지칭한다)'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자연스럽게 클롭을 넘어 그의 제자들에게도 시선이 이동했다. 이 중 허더스필드는 11월 5일, 바그너에게 감독직을 제의하며 가장 먼저 클롭식 축구 이식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바그너는 허더스필드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았을 당시를 회고하면서 "잉글랜드에 도르트문트 축구 이식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고 왜 안 되냐고 답했다. 선수들과 구단이 열린 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허더스필드는 챔피언십에서도 작은 구단에 해당하기에 그들이 더 높은 위치로 올라서기 위해선 새로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허더스필드는 국내는 물론 유럽에서조차 거의 알려진 게 없는 구단이다. 애당초 바그너가 허더스필드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 역시 클롭에 있었다. 바그너가 클롭에게 전화를 해 허더스필드라는 이름도 생소한 구단의 감독직을 제의받았다며 수락 여부를 놓고 고민을 털어놓자 돌아온 답변은 "그냥 해"였다. 

허더스필드는 2003/04 시즌만 하더라도 4부 리그(리그 2)에 속해있던 팀이다. 2012/13 시즌에 이르러서야 어렵게 챔피언십(2부 리그)에 돌아왔고, 2015/16 시즌 초반 바그너가 부임하기 전만 하더라도 22위(챔피언십은 총 24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로 강등권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그너 부임 후 차근차근 성적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허더스필드는 2015/16 시즌을 19위로 마무리하며 잔류에 성공했다. 이어서 이번 시즌 초반 11라운드까지만 하더라도 1위를 달리며 챔피언십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비록 이후 부침이 있는 모습을 보이며 5위로 내려앉았으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셰필드 웬즈데이와 레딩을 상대로 연달아 승부차기에서 극적으로 승리하며 EPL에 승격했다.

이에 바그너는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에서 "이 클럽이 1부 리그를 마지막으로 경험한 건 45년 전이란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는 엄청난 성과이다.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매우 행복핳할 따름이다. 난 플레이오프가 시작하기 전,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영웅이다'라고 말해주었다. 단 일주일 사이에 영웅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Hero to Zero)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전설이 됐다"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 볼프, '남독 명가' 슈투트가르트를 1년 만에 분데스리가로

슈투트가르트가 뷔르츠부르거 키커스와의 2부 리가 최종전에서 마티아스 짐머만의 선제골과 간판 공격수 지몬 테로데의 멀티골, 그리고 다니엘 긴첵의 추가골에 힘입어 4-1 대승을 거두었다. 이와 함께 슈투트가르트는 21승 6무 7패 승점 69점을 기록하며 2부 리가 챔피언에 등극했다.

슈투트가르트는 독일 축구 구단들 중 바이에른 뮌헨(1043승)과 베르더 브레멘(761승), 보루시아 도르트문트(746승), 그리고 함부르크(738승)에 이어 통산 최다 승 5위와 최다 승점 5위를 기록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남독의 명문이다. 1983/84 시즌과 1991/92 시즌, 그리고 2006/07 시즌엔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1953/54 시즌과 1957/58 시즌, 그리고 1996/97 시즌엔 DFB 포칼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남독을 대표하는 구단이 바로 슈투트가르트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 슈투트가르트는 분데스리가 17위에 그치며 2부 리가 강등의 수모를 맛봐야 했다. 1975/76 시즌과 1976/77 시즌 두 시즌 동안 2부 리가에 있었던 걸 제외하면 줄곧 분데스리가에 개근하던 슈투트가르트였기에 그들의 강등 소식은 비단 슈투트가르트 한 도시를 떠나 독일 전역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슈투트가르트는 강등과 동시에 감독과 단장을 동시에 교체하는 강수를 던졌다. 과거 아우크스부르크를 지도할 당시 구자철의 은사로도 국내축구 팬들에게도 친숙한 ‘승격 전문가’ 요스 루후카이가 슈투트가르트의 지휘봉을 잡았다. 토비아스 베르너(아우크스부르크)와 호소가이 하지메(헤르타 베를린) 같은 분데스리가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은 물론 지난 시즌 2부 리가 득점왕 지몬 테로데를 비롯해 포르투갈 신성 카를로스 마네와 아스널에 입단한 일본 대표팀 공격수 아사노 다쿠마를 임대로 데려오며 전력 보강도 착실히 단행했다. 당연히 많은 전문가들은 2부 리가팀 답지 않게 화려한 선수단을 구축한 슈투트가르트를 승격 후보 1순위로 뽑았다.

하지만 슈투트가르트는 기대와 달리 시즌 초반 부침이 심한 모습을 보였다. 루후카이 감독은 마네와 벤먀민 파바드 같은 재능 있는 젊은 선수들을 단지 "경험이 부족하다"라는 이유로 외면했다. 이로 인해 루후카이는 슈투트가르트 신임 단장 얀 쉰델마이저와 마찰을 일으키다 조기 경질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루후카이의 후임으로 슈투트가르트 지휘봉을 잡은 인물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세 이하 팀 감독 한네스 볼프다. 

볼프는 이제 만 36세의 젊은 감독으로, 뉘른베르크 유스 출신이지만 5부 리가와 8부 리가를 전전하던 무명의 축구 선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염성 단핵증에 걸려 만 29세에 선수 경력을 접은 그는 2009년 도르트문트 2군팀 수석코치직에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010/11 시즌 도르트문트 19세 이하 팀 감독을 수행하던 그는 후반기 2군팀 임시 감독직을 수행하다 2011년 여름, 바그너가 2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17세 이하 팀으로 내려왔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볼프는 도르트문트 유스팀을 차근차근 독일 최강으로 만들어나가며 그 역량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2013/14시즌과 2014/15시즌 연속으로 도르트문트 17세 이하팀을 독일 챔피언으로 이끈데 이어 2015/16 시즌 19세 이하 팀 감독으로 승격하자마자 곧바로 19세 이하 독일 챔피언을 차지하며 주가를 높였다.  

슈투트가르트가 볼프를 감독으로 선임한 이유는 마네, 파바드, 아사노, 티모 바움가르틀, 베르카이 외즈찬 같은 젊은 재능들을 육성해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미 볼프는 도르트문트에서 크리스티안 풀리시치와 펠릭스 파슬락, 제니스 부르니치 같은 선수들을 성공적으로 1군 무대에 안착시킨 바 있다. 

슈투트가르트는 볼프 체제에서 착실히 성적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성적과 어린 선수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나간 볼프이다.

물론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주전 오른쪽 측면 수비수 케빈 그로스크로이츠가 물의를 일으키면서 방출되는 사건이 발생했고(구단 측에선 자세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그로스크로이츠가 미성년자인 유소년 선수들을 성매매 업체에 데려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수비진에 균열이 발생한 슈투투가르트는 23라운드부터 27라운드까지 5경기 연속 무승(4무 1패)의 슬럼프에 빠지며 2위로 내려앉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돌격대장 마네마저 장기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터져나왔다.

위기의 순간 볼프는 중앙 수비수로 주로 뛰던 파바드를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돌리면서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볼프 부임 후 철저히 외면을 받았던 '킥 스페셜리스트' 막심이 7경기에서 3골 2도움을 올리며 마네의 공백을 그 이상으로 메워주었다. 25골로 2시즌 연속 2부 리가 득점왕에 오른 테로데가 시즌 마지막 6경기에서 8골을 몰아넣은 가운데 테로데에 밀려 백업을 담당하던 다니엘 긴첵 역시 마지막 6경기에서 3골 5도움을 기록하며 슈퍼 조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결국 슈투트가르트는 시즌 마지막 7경기에서 6승 1패를 올리며 2부 리가 챔피언을 차지했다. 이와 함께 강등 1년 만에 다시 분데스리가 복귀에 성공한 슈투트가르트이다.

# '클롭의 동지' 바그너와 '클롭의 애제자' 볼프

바그너와 볼프 모두 클롭 아래에서 있었던 감독들이다 보니 전술적으로 클롭의 영향력 하에 위치하고 있다. 두 감독 모두 클롭과 마찬가지로 4-2-3-1 포메이션을 선호하고 있고, 강도 높은 압박과 스피드를 극대화한 속공 축구를 추구한다.

다만 감독 고유의 개성은 존재하기 마련. 바그너에게 있어 클롭은 단순한 선배 감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거 한솥밥을 먹은 팀 동료이자 지도자 생활을 열어준 은사, 그리고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동지이다. 심지어 바그너는 클롭에 대해 "난 내 아내보다도 클롭을 더 오래 더 잘 알고 있다"라고 토로했을 정도.

바그너는 클롭 축구의 신봉자라고 할 수 있다. 클롭식 축구로도 충분히 축구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실제 바그너는 축구관과 관련해 "축구에서 성공하는 길이 오직 하나만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추구하는 축구는 도르트문트에서 우리가 해왔던 방식이고, 또 나의 길이기도 하다. 난 도르트문트식 축구에 대해 전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난 스피드를 좋아하고 열정을 사랑하며, 이러한 스타일의 축구를 선호한다. 예를 들어 바이에른 뮌헨은 다른 방식의 축구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나 역시 다른 개념의 축구를 존중한다. 하지만 난 지금의 방식을 고수할 것이다. 내가 선호하는 식으로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바그너는 도르트문트식 축구를 관철하기 위해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독일과 리버풀에서 수급하고 있다. 바그너는 허더스필드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리버풀 코치 마이크 마쉬를 오른팔로 임명했다. 크리스 뢰베와 욘 고렝-스탄코비치는 바그너가 도르트문트 2군 감독직을 수행하던 당시 직접 지도했던 선수들이다. 엘리아스 카충가와 콜린 쿠아너, 크리스토프 쉰들러, 그리고 미하엘 헤펠레 역시 독일에서 영입한 선수들이다. 승부차기 영웅 대니 워드는 리버풀에서 임대로 데려온 선수다. 

바그너는 이에 대해 "만약 허더스필드가 리버풀과 독일 등으로 연결되어 있는 내 커넥션으로부터 수혜를 받을 수 있다면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도르트문트 2군 감독 당시에도 마인츠를 비롯해 다른 독일 팀들의 유망주들을 데려와 발굴한 전례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볼프에게 있어 클롭은 은사이자 멘토이다. 아무도 볼프라는 인물에 대해 몰랐을 당시 그를 도르트문트에 데려온 인물 자체가 클롭이다. 볼프 역시 이에 대해 "클롭 없이 난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클롭이 나의 모든 걸 바꾸어 주었다. 6년 내내 그의 훈련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가 얼마나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말로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그는 언제나 나를 도와주었다. 나에게 있어선 그와 함께 한 6년이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라고 토로할 정도.

다만 볼프는 클롭식 축구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선호하는 포메이션은 4-2-3-1이지만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스리백을 활용하기도 하고, 시즌 막판엔 4-1-4-1을 즐겨 활용하면서 공격력 강화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술적인 측면에선 클롭의 도르트문트 후임 감독 토마스 투헬의 전술적인 영향도 상당히 많이 받은 볼프이다. 

볼프는 이에 대해 "난 클롭과 투헬이라는 두 대단한 감독들과 함께 하는 큰 행운을 누렸다. 이들의 전술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 두 가지를 접목해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두 감독이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지만 난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전설적인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제자들 중 다수가 EPL 무대에서 감독으로 활약한 적이 있다. 스티브 맥클라렌과 고든 스트라칸을 비롯해 마크 휴즈와 브라이언 롭슨, 스티브 브루스, 그리고 로이 킨이 바로 그 대상자이다. 당시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이들을 가리켜 '퍼기(퍼거슨의 애칭)의 MMC(Fergie's Management master class)'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이들은 스승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져 큰 성공을 보지 못한 채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바그너와 볼프는 진정한 시험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만약 이들이 1부 리그에서도 성과를 낸다면 자연스럽게 클롭의 축구 철학 역시 한층 더 조명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클롭 사단이라는 명칭이 유럽 축구판에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를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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