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본부장의 直talk(59)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 제 10편 폴란드

2017. 5. 2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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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강의 근성 폴란드 (1) 코페르니쿠스에서 마담 퀴리까지 이어오는 근성(根性)
폴란드의 상징 ‘백독수리’
피사로라는 이름은 알아도 투팍 아말루란 이름은 아마 모를 것이다. 1572년 스페인에게 처형당한 잉카제국(지금의 페루지역)의 마지막 황제이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이다. 역사는 승자의 이름을 알아주지만 대중은 진정한 승자의 이름을 알아주는 법. 투팍 아말루는 페루의 전설적인 저항운동에서 주로 쓰였던 이름이다. 저항의 역사하면 역시 남미가 가장 떠오른다. 앞에서 이야기한 스페인 편에서 잠깐 언급한 내용이다. 무지막지한 스페인의 정복활동으로 남미가 쑥대밭이 되었다. 이 정도 이름은 알고 가자. 에르난 코르테스 그리고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각각 아즈텍 제국(멕시코)과 잉카제국(페루)를 정복한다. 개인적으로 이들 두 사람의 전기를 검색해서 읽어보길 바란다. 스페인이 왜 유럽의 이야깃거리 공장인지를 알 것이다. 정말 기가 차다. 재미는 있는데 멋은 있는 줄은 모르겠다. 암튼 잘 먹고 잘 살았다. 개인적인 체세로는 배울게 많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극적인 부분은 나중에 남미의 윌리암 월리스(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인 투팍 아마루 2세가 최고다. 두 사람은 사형 방법마저도 꼭 같다. 영화에서 본 그런 식으로 말이다. 끔찍하게. 이 사람이 준 문학적 영감은 이탈리아 편에서 말한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까지 뻗친다. 유럽의 어느 문학 작품에서도 앞서 말한 두 정복자에 대해서 미화하거나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은 없다. 이 두 정복자들의 왕인 독일편에서 말한 스페인 최초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로스 1세(칼 5세)에 대한 치정물인 베르디 오페라 ‘에르나니’만 있을 뿐이다. 왜 그럴까. 대중들이 듣기 싫은 추잡하고 정의롭지 못한 얘기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나중에 회사생활을 하면서 구조조정이나 어느 기업을 인수하는 역할을 시킬 때는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구조조정 대상자나 피인수자에게 매우 잘 해라. 여러분에게 그 역할을 시킨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정말 여러분을 믿는 사람이던지 아니면 당신을 버릴 사람이다. 나도 해봐서 잘 안다.
폴란드 영토는 동유럽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크다.
앞서 본부장이 언급한 몇몇 패권국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만 고난을 겪거나 식민지를 당한 나라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사실 전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패권국이라기 보다는 그냥 보통국가인 경우가 훨씬 많다. 마치 본부장이 조직생활을 하면서 본 조직 안의 인적 구성도 이와 같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통상 조직 관리자들이 많이 하는 실수에는 피상적인 면을 가지고 너무 많은 것을 평가하려 든다는 것이다. 조직이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다. 빛나는 리더십이란 언제나 남들이 보지 못하는 하찮은 것들에서 가치를 찾는 사람이 관리자로 왔을 때 조직원들이 쓰는 말인 것이다. 국제 사회를 보면 나라도 이와 같다. 겉만 번지르르해서 고생 없이 살아오다가 그다지 큰 어려움도 아닌데 너무나 픽픽 쓰러져버리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정말 훌륭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국의 힘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서 어쩔 수 없이 식민지 신세로 전락한 경우도 있다. 항상 말하지만 우리는 역사 공부를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경우의 수를 연습하는 것이다. 지도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지도를 보는 법을 배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중세가 왜 암흑기라는 말을 듣는 줄 아는가. 유럽 전역의 수도원이나 대학이라는 곳에서 수도사나 학생들이 엄청난 양의 내용을 암기를 하면서 많은 서적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방향성에 대한 의문을 가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았다. 방향성 없는 학문연구와 수행과정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결과지향적 공부행태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건 어제 본부장에게 공부방법에 대한 문의를 해온 어느 학생에게 해준 멘토링이라 공유하는 것이다.
일과 사랑 모두를 거머쥔 열정의 화신 ‘마담 퀴리’
자 코페르니쿠스가 어디 사람인지 잘 몰랐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폴란드다. 결국 고집을 꺾지 않아 화형당했다. 역시 폴란드인의 근성이 느껴진다. 아예 직접 망원경을 만들어 눈으로 확인까지 한 갈릴레오는 계속된 추궁에 끝내 자신의 신념을 부인하고 혼잣말로 속삭였다고 하지 않은가. 본부장은 유럽지도를 보면서 폴란드만큼 대중들에게 저평가된 나라도 없다 싶다. 단순히 마담 퀴리나 영화 쿼바디스의 원작 소설을 쓴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와 체스와프 미워시, 레흐 바웬사 등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점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이점들도 당연히 평가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만한 나라는 다른 데도 많다. 본부장은 폴란드가 가진 근성을 말하는 거다. 근성이란 말을 본부장은 신념(信念)이라는 최고의 가치에 결단력까지 겸비된 집념(執念)이란 말로 표현하고 싶다. 실제 행동에 옮겼다는 말이다. 앞서 본부장이 피사로와 투팍 아마루2세를 언급했다. 둘 다 결단력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정복이나 저항은 모두 목숨 내놓고 하는 것이다. 미지의 세상을 향해 나아 가는 게 말이 쉽지 어디 쉬운 일이겠나. 하지만 미지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공포의 대상에게 저항하는 것은 더욱 힘든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마담 퀴리의 어린이용 전기를 읽어보면 그녀가 방사능에 피폭되어서 고통스럽게 죽은 이야기는 잘 안나온다. 애정행각도 물론 안나온다. 완전한 지식이 없어서 무모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의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집념이 알 수 없는 녹색 물질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컸던 것이리라. 방사성 물질을 그냥 손으로 만졌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웃지도 못 할 얘기다. 전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나는 마담 퀴리의 프랑스 연하남과의 연애 스토리를 접하면서 오히려 그녀의 열정이 느껴지더라.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자신이 안한다고 남을 욕해서는 안된다. 신사가 되려면 남의 행위에 대해서 입을 닫아라. 나에게 물어보지 않은 이상 말이다.
초절기교 프란츠 리스트와 우정의 라이벌,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리크 쇼팽’
폴란드는 다시 말하지만 유럽의 대단한 문명국이다. 위에서 말한 코페르니쿠스 같은 근대를 연 과학자뿐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도 물리학, 화학 분야에서 최초의 공동 배출을 했고 그것도 최초의 여성이며 최초의 2회 연속 배출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3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민주투사로 유명한 바웬사의 평화상까지. 여기에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프레드리크 쇼팽이 화룡정점이다. 조합이 매우 딱 떨어진다. 이 정도 조합이면 총량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나라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쿠페르니쿠스에 쇼팽에 마담 퀴리. 갖출 건 다 갖춘 것이다. 다들 살아 생전 고생스럽게 살았다. 이런 문명국이 근대를 넘어오면서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에 의해 1795년부터 1918년까지 100년 이상 3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나라가 지도에서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 마담 퀴리나, 쇼팽이 왜 프랑스에 가서 활동했는지 짐작이 간다. 거기에 무지막지한 악당들인 스탈린과 히틑러 치하의 두 강대국 사이에서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수모를 당한다. 역사를 읽는 본부장이 다 눈물이 나더라. 이런 훌륭한 문명국도 이렇게 철저하게 당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명심하자. 역사에는 설마라는 말은 없다. 19세기의 세기말적 향락이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상황에서도 어느 국가는 이런 상황을 겪었고 이후 20세기에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의 역사가 유럽에 존재했었다. 그 산 증인이 바로 폴란드다. 본부장은 여러분이 심심할 때 구글에서 폴란드를 연구해보길 꼭 강추한다. 현실 냄새 나는 인생 공부를 폴란드를 통해 할 수 있다. 쇼팽의 마주르카를 틀어놓고서 말이다.
전환적 사고의 아이콘 ‘코페르니쿠스’
폴란드 역사와 인물들에서 얻는 교훈은 바로 그 지칠 줄 모르는 근성에 있다. 강대국 세 나라의 의해 분할되어 지도상에서 없어진 나라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은 정치적으로 그냥 불가능하다. 다시 되돌리려면 세 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승인해주고 싶어도 나머지 나라가 동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거의 이 정도 되면 포카로 따지면 2 원페어를 들고 풀하우스와 로열스트레이트 플러시 그리고 에이스 포카를 들고 있는 판에서 이긴 격이다. 갑자기 경찰이 들이 닥친 거지. 사회 생활이라는 것은 결말을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자리를 선점한 사람도 실수를 하는 법이다. 그걸 기다려야 한다. 지금 최악의 상황을 지내고 있는 자라도 기회는 있다. 상황 선점자인 퍼스트 무버도 방심하기 마련이다.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기회가 꼭 온다. 이건 실전에서 본부장이 보고 느끼고 지금도 진행중인 얘기다. 폴란드는 두 가지 최악의 상황을 1, 2차 세계대전이란 더 큰 최악으로 돌파해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는 이유는 호랑이가 한 마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들끼리 싸울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선언되면서 수많은 선물보따리가 풀렸다. 즉 패자에게 속박 받던 민족들이 독립국가를 차릴 기회가 온 것이다.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이 한편이 되어 몽땅 진 것이다. 폴란드 입장에서 얼마나 기다려온 상황이겠는가. 이런 날이 누구에게나 꼭 온다. 지금 힘들어 하는 청년들에게도 꼭 일러주고 싶은 얘기다. 다만 정신줄을 놓지 말고 무엇이든 정진하고 있어야 한다. 대상이 무엇이든 좋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게 아니다. 과정이 좋으면 언제든 결과는 좋다. 가슴에 새겨라.
폴란드의 근성에는 남녀가 따로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여군
함락 직전의 바르샤바 시민군
절망의 상황에도 웃음으로 포즈를 취하는 바르샤바 시민군들
두 번째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일어난 사건인데 나치 독일이 아예 다 먹겠다고 덤벼든 것이다. 삼국 분할도 아니고 혼자 다 말이다. 정말 센 놈들 옆에 살다 보니 문명국 폴란드도 피곤했다. 더욱 힘든 건 이제는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싸우는 사이가 되어 서로 먹겠다고 덤벼드는 형국이다. 전 영토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무시무시한 아우슈비치가 바로 폴란드에 있는 수용소였다. 독일 브란트 수상이 여기 와서 비오는데 우산도 없이 무릎 꿇었다. 아무튼 유럽에서 폴란드만큼 지긋지긋하게 고생한 나라도 없다. 이런 희망없이 반복되는 고생스러움 속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라는 것이다. 사람도 똑같다.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황페화되어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일 때 나를 끌어올려주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과거의 잘 헤쳐 나왔던 기억 말이다. 아니 굳이 승리의 기억이 아니라도 좋다. 자신의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기억 즉 나만의 히스토리 말이다. 폴란드는 세계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역사가 있었다. 그것도 130년 만에 독립을 쟁취했던 역사 말이다. 그러니 두 번째 환란도 버틴 것이다. 제 2차대전사에 폴란드 수난사를 찾아 읽어보라. 정신이 확 들거다.
서로 한번은 먹고 먹혔던 아픔을 안고 사는 ‘유럽 제국들’
서두에 얘기한 투팍 아마루 2세 같은 수 많은 저항의 역사가 인류사에는 넘쳐난다. 앞서 말한 영국,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스웨덴, 스페인도 한때에는 비참한 상황에서 고단하게 홀로 저항해야 했던 아픔을 안고 있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체의 행동이다. 본부장이 언제나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지향점을 찾아 끝없이 움직일 때 가치를 느끼는 존재이다. 아무리 큰 것을 얻어도 이미 얻은 것에는 아무런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본능에 충실하며 부지런히 탐욕스러우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진 것을 모두 공유하고 보다 새로운 것을 더 추구하라. 더 많은 사람들과 더 큰 꿈을 이루려고 시도해라.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달성한 세계일주 항해 때 지나온 바다는 지금의 그 바다가 아니다. 과거의 물질적 업적은 다 없어지는 것이다. 코르테즈와 피사로의 업적을 누구도 미화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권력의 누린내와 욕망의 비린내를 풍기지 않는 인간 본연의 멋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이미 챔피언인 자보다 지금도 챔피언을 향해 달리는 자가 본부장은 되고 싶다. 나를 따르는 여러분들도 그래야 한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려는 위대한 인물이나 조직들은 언제나 미래 진행형적 존재였다. 비록 수백 수 천년 전에 살았던 그들이지만 현재 우리와 바라보는 것이 똑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고 또 그런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간단하다. 미래의 인류가 바라보려 하는 것을 바라보고 살면 된다. 명심하기 바란다.

[정민우 듀오 회원관리부 총괄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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