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기행ㅣ섬진강의 맛] "아따, 섬진강 봄맛이 입에 가득 차 부렀다!"

글· 월간산 손수원 기자 2017. 5. 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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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은 늘 푸근하고 풍요롭다. 매화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 맑은 섬진강변에는 봄기운을 가득 담은 먹거리들이 넘쳐난다. 깨끗한 섬진강에서 나는 재첩과 참게, 여기에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벚굴이 식도락가들을 섬진강변으로 이끈다.

[월간산]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류에서 잡는 참게로 끓인 참게탕. 내장에서 특유의 향이 나 봄철 별미로 손꼽힌다.

섬진강 사람들의 ‘소울푸드’ 재첩

강조개에서 유래한 재첩은 하동 사투리로 갱조개, 가막조개라 부른다. 갱은 강의 사투리이고 가막조개는 ‘까만 아기조개’란 뜻이다. 옛날부터 섬진강변에서 터 잡고 살던 이들은 재첩을 캐 생계를 이었다. 재첩국을 끓여 아이들의 허기를 채웠고 재첩국을 팔아 공부도 시켰다. 그래서 재첩국은 섬진강변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소울푸드(Soul Food)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이란 책에서 재첩국을 두고 ‘그 국물의 색깔은 봄날의 아침 안개와 같고, 그 맛은 동물성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맛이다. 차마 안쓰러운 이 국물은 그 안쓰러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데워 준다’고 적었다.

재첩은 1급수 강에서만 자라는 민물조개다. 일 년에 두 번 채취하는데, 현지에서 재첩을 캐는 사람들에 의하면 5~6월, 10~11월에 캐는 재첩이 가장 실하다고 한다. 특히 산란기인 봄 재첩을 최고로 쳐준다.

우리나라에서 재첩은 오로지 섬진강에서만 잡힌다. 재첩이 서식하려면 바닷물과 강물이 드나들어야 하는데 대개의 큰 강에는 하굿둑이 있어 재첩이 살지 못한다. 옛날엔 섬진강보다 낙동강에서 재첩이 더 많이 나왔다.

[월간산]1 깨끗하게 광택이 나는 섬진강 재첩. 살 자체에 감칠맛이 나 따로 양념하지 않고 맑은 물에만 끓여내도 시원한 맛을 낸다. / 2 거랭이란 도구로 재첩을 채취하는 섬진강 사람들.

1960년도와 1970년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낙동강 하구는 재첩의 천국이었다. 재첩은 거의 일본으로 수출되었는데 강변 인근에 살던 이들은 생계를 위해 재첩을 잡아 국으로 만들어 팔았다. 그때 그 시절을 보낸 이라면 부산 아지매들의 “재첩국 사이소~” 소리를 수없이 들었을 터다.

하지만 1980년대 낙동강 수문이 생기고 나서 낙동강에서 재첩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도 낙동강 녹산 수문 아래 송정과 명지 앞바다 등에서 재첩이 잡히긴 하지만 그 양은 아주 적다. 이러한 이유로 낙동강 재첩은 사라지고 섬진강 재첩이 유명해졌다. 섬진강엔 하굿둑이 없고 수질이 좋아 재첩이 살기에 알맞다.

지금은 하동포구공원에서 평사리공원 일대에 재첩이 서식하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강 상류로 많이 올라왔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간 토목공사를 위해 섬진강 모래를 죄다 퍼간 탓에 하구 바닥이 낮아지면서 짠 바닷물이 밀려 올라왔기 때문이다.

섬진강에서는 하동과 광양의 각 마을마다 채취하는 구역이 각각 나뉘어 있다. 재첩을 잡는 방법은 배를 타고 나가 거랭이란 도구를 내려 강바닥의 재첩을 긁어 올리는 형망과 사람이 직접 거랭이로 강바닥을 긁어 재첩을 잡는 도수망이 있다.

그런데 섬진강에서도 재첩잡이가 예전만 못하다. 잡히는 재첩은 줄어드는데 찾는 이들은 많아지니 일부 업소에서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지난해 한 먹거리 관련 프로그램에서 섬진강변의 식당들이 공장에서 가공된 재첩살과 육수를 쓰고 수입산 참게를 국산 참게와 섞어 파는 현장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

이 보도 때문에 하동군과 섬진강변의 식당들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하동군과 재첩·참게 업계 종사자들은 자정결의대회를 열고 사태를 수습에 힘썼다. 그 결과 현재는 원산지를 속이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만이 알 일이고 소비자는 검증된 맛집을 찾아 믿고 먹는 수밖에 없다.

중국산과 국산 재첩은 껍데기와 막으로 구분한다. 중국산 재첩은 껍데기에 광택이 거의 없다. 그나마 삶으면 구분하기가 거의 어렵고 속살만 써 요리해 버리면 일반인들이 구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섬진강 재첩은 모래가 살짝 씹힌다고도 하는데 이마저 해감을 제대로 하면 알아챌 수 없다.

[월간산]부추와 고추만 넣고 소금간을 해 시원하게 끓여낸 재첩국은 속풀이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첩은 그 자체로 완벽한 식재료이다. 애주가들은 재첩을 ‘자연산 간장약’으로 부른다. 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이 간을 보호하고 타우린이 담즙분비를 활발하게 해 해독작용을 돕는다. 또한 눈을 맑게 하고 피로회복에도 으뜸이다. 

섬진강 재첩은 그 자체에 간이 배어 있기에 조미료를 쓰지 않아도 감칠맛이 난다. 맛이 조금 심심하다 싶으면 소금만 조금 넣으면 그만이다. 재첩국 끓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재첩을 하루 정도 해감한 후 재첩이 잠길 정도로만 물을 붓고 끓이면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그 다음 재첩을 건져 찬물에 넣고 손으로 비벼 껍데기와 살을 분리한다. 쌀을 씻는 것처럼 하면 남은 모래가 말끔하게 빠진다. 이렇게 분리된 속살을 육수에 다시 넣어 끓이면 된다. 완성된 재첩국엔 잘게 썬 부추를 넣고 얼큰하게 먹으려면 청양고추를 썰어 넣으면 된다.

재첩 속살을 갖은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에 무치면 새콤달콤한 재첩회가 된다. 재첩회는 그냥 먹어도, 뜨거운 밥에 비벼 먹어도 좋다. 또한 살을 넣어 전을 부쳐 먹거나 된장국으로 끓여 먹어도 그만이다. 요즘엔 제철에 잡은 재첩을 급속냉동시켜 두고 사철 음식 재료로 쓴다. 

특유의 향이 입맛 돋우는 참게

재첩과 함께 섬진강의 보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참게다. 참게는 논에서도 살아 논게라고도 부른다. 재첩과 마찬가지로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해 민물 게에 비해 비린 맛이 덜하고 달짝지근한 속살 맛이 일품이다. 게 맛 좀 안다는 식도락가들은 섬진강 참게의 내장에서 특유의 향이 나 더욱 입맛을 돋운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은 잡히는 수가 줄어 귀한 몸이 되었지만 봄·가을 참게는 수고와 돈을 들여서라도 꼭 한 번 먹어봐야 할 제철 음식이다. 임진강에서 사는 것은 참게, 남쪽 섬진강 부근에서 사는 것은 동남참게이다. 임진강변의 참게는 가을에 맛있고 섬진강변의 동남참게는 알을 뱄을 때가 가장 맛있다.

[월간산]벚꽃이 피는 계절에 먹는 벚굴. 바다에서 나는 굴에 비해 월등히 크다.

섬진강 참게는 8월 말부터 바다로 가 다음해 3~4월에 알을 낳는다. 부화한 어린 게는 다시 섬진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몸집을 키운다. 봄 산란기를 맞은 참게는 살이 알차고 가을에 나는 것은 껍데기가 두텁고 단단해져 씹는 맛이 좋다.

섬진강 참게는 통발로 잡는다. 통발 안에 미끼인 돼지비계나 비린 생선을 넣어 강물에 담가두었다가 다음날 통발에 갇힌 참게를 거둬들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참게잡이도 예전만큼 못하다. 이처럼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듦에 따라 하동군은 지난해 6월, 어린 참게 22여 만 마리를 방류하는 등 참게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섬진강 참게 요리는 참게 특유의 향을 살리기 위해 요리할 때 양념을 적게 쓰는 것이 관건이다. 참게탕, 참게장 등이 잘 알려져 있지만 참게가리장국을 꼭 먹어보자. 참게가리장국은 보릿고개를 넘어가던 시기, 참게를 잡아 국의 양을 많게 하기 위해 참게를 잘게 썰고 밀가루를 풀어 죽처럼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가리’는 ‘가루’의 사투리다. 이렇던 것이 지금에 와선 찹쌀가루와 멥쌀가루, 들깨, 참깨, 서리태 등 8가지 곡식을 넣어 끓인 보양식이 되었다. 섬진강변의 ‘섬진강횟집(055-883-5527)’에서 참게가리장국 특허를 내고 음식을 만들어 낸다. 

참게가리장국과 더불어 보릿고개를 견디게 해준 음식이 묵은 된장에 참게를 박아 만든 ‘된장박이 참게장’이다. 강에서 잡아온 참게를 씻어 손질해 배가 위로 오게 해서 매실된장 항아리에 넣고 된장으로 덮어둔다. 이렇게 항아리에서 보름 넘게 숙성하면 참게의 잔잔한 향이 된장에 스며든다고 한다. 참게를 곱게 빻아 양파, 당근, 고추 등을 넣어 밀가루와 섞어 부쳐 먹던 ‘참게 개떡’과 ‘참게 수제비’도 먹을 것 없던 시절을 이기게 해준 음식들이다.

4월 말까지만 채취하는 벚굴

벚꽃이 필 때 먹는다 해서 이름 붙은 벚굴은 3월부터 5월 초까지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강에서 나 ‘강굴’이라고도 부르는데, 재첩이나 참게와 마찬가지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에서 자란다. 섬진강에서도 하구 망덕포구를 기준으로 그 상류가 벚굴 산지다.

[월간산]섬진강 참게장은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 주는 ‘밥도둑’이다.

벚굴은 양식이 되지 않고 3~4m 물속 강바닥 바위에 붙어 자라기 때문에 잠수부들이 물때를 맞춰 직접 들어가 일일이 손으로 채취한다. 하동군에서는 6가구가 한 해 100여 톤을 채취해 왔는데 올해는 비가 적게 내려 생산량이 30%가량 줄었다는 소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북 임실에 섬진강댐이 세워지면서 바닷물이 역류하고 광양만에 제철소 등이 들어서면서 벚굴 생산량이 해마다 줄고 있는 터다. 종패 등을 뿌려 키워보려는 노력 등을 하고 있지만 크게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단다.

강 속 바위틈에 붙어 자라는 벚굴은 그 크기가 20~30cm 정도로 웬만한 어른 손바닥보다 크다. 벚굴은 나무처럼 나이테가 있어 그 나이를 알 수 있는데, 보통 2년 정도 된 것을 먹는다. 더 깊은 강에서는 4~5년 된 벚굴도 채취할 수 있는데 이런 놈들은 40cm를 훌쩍 넘는다.

크기는 이렇게 크지만 바다 굴보다 짠 맛이 덜하고 비린내도 강하지 않아 달고 담백하다. 때문에 굴을 먹지 못하는 이들도 벚굴은 곧잘 먹는다. 게다가 영양가도 바다 굴보다 3~4배 정도 더 많다고 하니 남녀노소 모두에게 좋다.  

벚굴은 생으로 먹기보단 구워 먹으면 더 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벚굴을 구워 먹을 때는 김이 나기 시작할 정도까지 살짝만 구워 뽀얀 육즙이 마르기 전에 먹어야 한다. 너무 오래 구우면 육즙이 사라지고 살도 쪼그라들어 맛이 없어진다.

섬진강 망덕포구의 식당에서는 벚굴을 구이나 찜, 전, 죽 등으로 먹을 수 있다. 식당에서 구이로 먹는 경우 5kg에 4만5,000원 정도이고 벚굴만 구입하면 5kg에 3만5,000원, 10kg에 6만 원 정도 한다. 택배로도 주문할 수 있다. 보통 4월 말까지만 벚굴을 채취하므로 5월 첫째 주가 지나면 식당에서도 거의 다 팔리고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하니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야 한다.

이외에도 섬진강은 계절마다 쉼 없이 풍성한 먹거리를 길러낸다. 여름부터는 수박향이 난다는 은어가 제철이고, 6월 초부터는 하동과 광양 전역에서 매실이 본격적으로 난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섬진강의 맛

[월간산]1 재첩살에 갖은 채소를 넣고 초고추장으로 무쳐낸 재첩회.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뜨거운 밥에 비벼먹으면 더욱 별미다. / 2 섬진강 벚굴은 크기가 커서 불에 구워 먹으면 뽀얀 국물이 우러나와 더욱 맛있다.

봄쑥재첩전

재료(1장 기준)  재첩(130g), 재첩 우린 물, 봄쑥 100g, 당근(1/4개), 대파(1개), 부추(200g), 홍고추·청고추 각 1개씩, 부침가루, 소금, 양념장(간장 1큰술, 식초 1/2큰술, 통깨 약간)

만드는 법 

1 재첩은 5시간 정도 해감한 후 깨끗이 씻어 준다.
2 끓는 물에 재첩을 데쳐 살만 발라내고 남은 물은 반죽물로 사용한다.
3 재첩 데친 물에 부침가루를 넣고 소금으로 간해 풀어준다.
4 채첩살과 채 썬 당근, 대파, 부추, 고추와 봄쑥을 부침가루에 넣어 반죽한다.
5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올려 앞뒤로 노릇하게 부친다. 이때 전을 눌러가며 구우면 재첩의 식감이 더 쫄깃해진다.  

참게탕

[월간산]봄쑥재첩전

재료(2인 기준)  참게 4마리, 배춧잎 2장, 청고추, 홍고추 2개씩, 양파 1/4개, 된장 2큰술, 고추장 1큰 술, 다시마 육수, 찹쌀가루

만드는 법 

1 참게를 솔로 문질러 깨끗하게 씻은 후 게딱지는 떼어내고 몸통은 반으로 자른다.
2 배춧잎은 3cm 정도로 자르고 고추는 어슷썰기, 양파는 채썰기로 준비한다.
3 냄비에 다시마육수를 넣고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한소끔 끓으면 참게를 넣는다.
4 준비한 채소를 넣고 중불로 끓인다.
5 소금으로 간하고 국물에 찹쌀가루를 넣어 약간 걸쭉하게 만들면 완성.

[월간산]참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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