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 캠핑 여행 | 축령산·서리산 르포] "가족과 함께하는 서리산 원정대 출동!"

월간산 글·신준범 기자 2017. 5. 15. 17:1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리산 철쭉과 축령산 전망바위를 한 방에 즐기는 알짜 산행

“아빠! 나 힘들어 죽을 거 같아~”

[월간산]남이바위를 올라서는 조국제, 연인영씨. 남이장군의 기상을 닮아 탁 트인 경치가 압권이다.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기운내자.”

곤줄박이처럼 귀엽게 재잘재잘 거리던 아이들 소리가 하소연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제일 쉬운 길을 택했지만, 무리였나보다. 포기하고 어른들만 가야 하나 고민할 때마다, 아빠는 느긋하게 아이들을 도닥인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던 아이들은, 놀랍게도 순순히 아빠를 따라 오르고 또 오른다.

2시간 만에 닿은 서리산 정상에 아빠가 돗자리를 펴자 아이들이 차례로 드러눕는다. 해발 832m 산꼭대기에 오른 아이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높은 곳에 와 있다. 아이들 입장에선 고산 등정을 이룬 등반가마냥 큰 도전에 성공한 것이다. 자녀와 함께하는 가족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믿음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서리산 가족 원정대의 대장은 이용두(41)씨이며, 대원은 초등학교 4학년과 3학년인 이수형·이민형 자매다. 여기에 숲유치원을 운영하는 연인영씨와 사찰에서 청소년을 위한 자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조국제 숲해설가가 동행했다.

서리가 내려도 쉽게 녹지 않아 늘 서리가 있는 것처럼 보여 이름 붙은 서리산은, 5월이면 철쭉산이 된다. 지자체에서 일부러 심은 철쭉이 아니라 50년 넘게 터를 잡은 자연산 철쭉이 정상을 뒤덮고 있다.

어깨를 맞대고 있는 축령산은 바위산이고, 서리산은 푸근한 육산에 가까워 입맛에 맞게 골라서 산행할 수 있다. 산기슭에는 맑은 물 흐르는 자연휴양림이 있어 캠핑을 즐길 수 있고 교통도 편리하니, 가족 나들이객에게 5월의 서리산은 매혹적인 여왕산이다.

산 좀 탄다는 사람들은 축령산과 서리산을 이어 한 번에 도는 산행을 하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휴양림에서 서리산으로 곧장 오르기로 했다. 두 산 사이의 안부로 올라 서리산으로 갔다가 이용두씨 가족은 하산하고, 나머지 일행들은 축령산을 다녀온다는 계획이다.

같은 분홍빛이지만, 4월의 주인공은 진달래다. 축령산자연휴양림 곳곳에 분홍색 느낌표를 찍어놓았다. 진달래와 철쭉은 같은 분홍이지만, 성격은 극과 극이다.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는 사랑이 먼저고, 잎을 먼저 틔우는 철쭉은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진달래는 봄볕으로 피지 않는다. 지난여름 뜨거웠던 사랑의 추억을 깊이 새겨 두었다가, 겨우내 그리움 꾹꾹 눌러 봄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처연하게, 울컥 피어나는 매혹 한 송이다.

[월간산]축령산 정상에서 본 조종면 일대. 왼쪽으로 바위산인 운악산과 오른쪽으로 육산인 연인산 능선이 뻗어있다.

산 깊숙이 들수록 봄꽃이 늘어난다. 신록이 돋지 않아 휑한 가지로 빽빽한 숲을 용기 있는 봄꽃들이 깃발을 들어올렸다. 양지꽃, 투구꽃, 너도바람꽃, 현호색, 히어리꽃, 생강나무꽃, 개별꽃까지 갖가지 빛깔의 꽃이 한지 위에 찍은 수묵화의 점처럼 깊은 여운을 주며 시선을 끌어당긴다.

수형이와 민형이에게 시원함을 선물한 첫 번째 전망대에서 바람을 느낀다. 마을의 꽃은 죄다 구경하고 왔는지 향긋한 꿀내음이 난다. 그야말로 꿀 바람이다. 이곳부터는 너른 임도다. 센 오르막에 지쳤던 아이들을 달래기 좋은 임도를 따라 능선까지 잇는다.

각종 등산지도와 네이버·다음 지도에는 이곳 능선 사거리를 ‘절고개’라 적어놓았지만, 잘못된 것이다. 실제 절고개는 여기서 능선을 따라 축령산 방향으로 500m 더 가야 한다. 잘못된 지도를 검증 없이 베끼고 베낀 것이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만 하산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도닥이며 서리산 정상으로 간다.

이성계와 남이 장군 사연 담긴 축령산

툭 터진 능선길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물결친다. 잣나무와 물푸레, 참나무류가 함께 물결치며 찬란한 신록의 능선을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서리산의 숨은 주인공은 층층나무, 생활력 강한 나무답게 어린 녀석부터 고목까지 산을 골고루 메우고 있다. 특히 발 디딤 푹신한 능선을 층층이 뻗은 가지로 뒤덮어, 봄이면 구름꽃 아래를 걷는 순백의 몽환을 느낄 수 있다.

아빠의 노력으로 두 딸을 달래서 오른 서리산 정상, 분홍색 낙원 대신 고요한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요즘 하늘답지 않게 깨끗하여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능선이 산신령의 수염처럼 신비롭게 뻗어있고, 구름 한 조각이 지나간다. 5월의 서리산이었다면 이런 고요는 없었을 것이다. 철쭉동산 데크 전망대가 앙상한 철쭉 사이에 섬처럼 떠 있다. 러시안블루 고양이의 곡선처럼 느리게 쏟아지는 우아한 햇살, 그 아래 한숨 자고 싶은 평화로운 오후가 지나간다.

다시 임도 사거리로 되돌아가 이용두씨 가족과 헤어진다. 축령산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파른 오르막을 턱 밑까지 밀어 넣으며 자신 없으면 돌아가라고 엄포 놓는다. 태조 이성계가 제사를 올렸던 산답게 콧대를 바싹 세웠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기 전 축령산에 사냥을 왔으나 짐승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이때 “이 산은 신령스런 산이라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는 몰이꾼의 말을 듣고 제를 지낸 후 멧돼지를 다섯 마리나 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를 올린 신령스런 산이라 축령산(祝靈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월간산]1 서리산 능선길을 씩씩하게 걸어오르는 이수형·이민형 자매(하남 창우초등학교). 2 숲의 다양한 식물에 관심을 보이며 오르는 아이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산행은 시간을 여유 있게 잡아햐 한다. 3 휴양림에서 정자전망대로 이어진 산길. 잣나무의 검푸른 초록과 신록의 밝은 초록이 섞여 운치있다. 4 임도사거리에서 서리산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길 초입의 암릉 구간을 오르는 아빠와 딸. 어렵지 않은 암릉이라 즐기며 오를 수 있다.

경치는 배신하지 않는다. 축령산 정상은 땀 흘린 만큼, 힘겹게 올라온 만큼 속 시원한 파노라마를 안겨 준다. 산행의 피로가 한순간에 보상을 받는다. 산신제를 올릴 만큼 주변을 호령하는 압도적인 봉우리다. 가까운 운악산, 대금산을 비롯해 먼 곳의 화악산, 가리산, 용문산, 북한산까지 눈에 잡힌다. 연인산과 운악산 줄기 사이의 조종면 일대가 산 사이에 숨겨진 마을처럼 아늑해 보인다.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에서 축령산은 남이 장군의 당찬 기개를 보여 준다. 조선 초기의 명장으로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여진족을 토벌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약관 27세의 나이에 국방부장관 격인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역모를 꾀했다 하여 능지처참 당했다. 불세출의 영웅에서 며칠 사이 역모 죄로 몰려 죽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논쟁적 인물인 유자광에게 모략을 당했다는 설과 실제 역모를 꾀했다는 설이 있다.

장군이 수련했다는 남이바위는 대장부다운 시원한 그림이 펼쳐진다. 100m 넘는 절벽 꼭대기의 바위엔 장군의 의자마냥 홈이 패여 있는데, 앉아보면 실로 장군이 된 듯 압도적인 경치에 넋을 놓게 된다. 남이 장군의 ‘북정가’를 이 자리에 앉아 읊으면 이보다 더한 산행의 즐거움도 없음을 알게 된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다하리. 남자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안케 하지 못하면, 뒤에 누가 나를 대장부라 부르리오.’

야망과 모반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그의 시처럼 시원하고 두려운 고도감의 바위전망대다.

휴양림으로 내려서자, 이용두 숲해설가 가족이 잣나무숲 야영장에 텐트를 쳐 놓았다.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화를 벗자, 전장에서 돌아와 갑옷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다.

곧게 뻗은 잣나무를 바라보며 철쭉이 피기 전, 서리산의 고요함을 음미한다.

산행 길잡이

[월간산] 축령산 남이바위에서 본 속 시원한 경치. 남이 장군의 의자처럼 바위 가운데가 푹 패여 앉기 좋게 되어 있다.

축령산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남이바위~축령산~절고개~서리산~ 휴양림으로 원점회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9km 거리에 5시간 걸리는 코스인데 어린 자녀와 함께하려면, 서리산만 다녀오는 것이 낫다. 휴양림에서 임도를 따라 능선에 이른 다음 정상에서 철쭉동산 방향으로 진행해 휴양림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철쭉동산을 지나서 휴양림까지 이어진 길은 볼거리가 거의 없고 가파른 돌길이 많아 아이들은 온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더 수월하다.

각종 등산지도와 인터넷 포털 지도에는 휴양림 임도를 따라 올라갔을 때 만나는 능선의 고개를 ‘절고개’라 표시했지만, 절고개는 이곳에서 축령산 방향으로 500m 더 가야 한다. 산행은 휴양림에서 야영장 방향으로 임도를 타고 올라 산길을 따라 전망대에 오른 다음, 다시 임도를 따라 능선에 오르는 것이 가장 수월하다. 여기서 서리산 혹은 축령산으로 코스를 잡아 산행하면 된다.

남이바위를 지나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하산길에서는 수리바위 방향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홍구세굴 방향은 최근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낙엽이 쌓여 길이 희미하다. 이정표가 많고 산길이 뚜렷하여 전체적으로 길찾기는 쉽다.

교통

경춘선 전철을 타고 마석역에서 내려 1일 10회(06:15, 07:50, 09:15, 10:45, 12:25, 14:10, 15:50, 17:55, 19:50, 21:20) 운행하는 축령산행 버스(30-4번)를 탄다. 휴양림에서 마석역 출발 시간은 06:45, 08:30, 10:00, 11:25, 13:10, 15:00, 16:35, 18:40, 20:30, 21:50. 30분쯤 걸리며 축령산 철쭉제 기간에는 증회 운행한다.

문의

[월간산]

대원운수 031-593-9635.

숙식(지역번호 031)

축령산자연휴양림은 인터넷(farm.gg.go.kr/sigt/47

)으로 예약 가능하다. 숲속의 집 5동과 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50여 평의 축령관, 3·5·18인실을 구비한 산림휴양관과 야영장이 있다. 1995년에 개장해 비교적 오래된 시설이지만 최근 리모델링해 사용에 불편은 없다.

휴양림 인근에 숙박업소와 식당이 몇몇 있다. 청국장 전문인 햇살촌식당(593-3314), 청국장과 순두부 전문인 콩마당식당(592-0932), 오리백숙이 일품인 은행나무가든(591-6277), 웰빙산채요리로 유명한 통나무산방(591-6949) 등의 식당과 숲속마을펜션(1544-3665), 아이린펜션(595-6990), 깊은산속옹달샘펜션
(592-1040)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월간산]

 

▶ 실컷 놀았는데도 저녁… '한나절 행복' 찾아 춘천으로, 파주로

▶ 자동차 타이어에 새겨진 숫자의 비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