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민심은 "변화"..대선 후 분열·혼란 '난제'

파리 | 심진용 기자 2017. 5. 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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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프랑스 대선 결선투표 현장을 가다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일인 7일(현지시간), 파리 15구 뷔퐁고등학교 투표소는 이른 오전부터 유권자들로 북적거렸다. 가랑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투표소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보안요원들이 투표소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가방을 열어보며 검문을 했다. 15구는 파리 시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뷔퐁고에만 투표소 3곳이 몰려 있다.

루이(56)는 아들을 위해 대리투표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경찰서에 위임장을 가지고 가서 미리 신청하면 대리투표를 할 수 있다. 그는 막 아들을 위해 투표를 끝내고 이제는 자기 투표를 할 차례라며 웃었다.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비밀”이라면서도 “반전은 없을 것이다. 내가 찍은 후보가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60%를 웃도는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39)을 찍겠다는 뜻을 에둘러 전한 셈이다. 루이는 “경제가 좀 잘 풀렸으면 좋겠다”면서도 “내가 뽑은 이가 정말 잘할지는 모르겠다. 5년 뒤에나 확실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공사 일을 하는 알랭(51)은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48)을 찍었다. 그는 “르펜이야말로 나 같은 프랑스 사람의 뜻을 대변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마크롱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서도, “르펜이 표를 많이 얻으면 얻을수록 프랑스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 확실히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 찾아간 파리 시내 콘벤시온 지하철역 인근 앙마르슈 당사 앞에서 경호·보안요원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필립(50)을 만났다. 정치인은 “거짓말만 하는 지겨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필립은 마크롱이 나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제까지 대통령들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만 골라서 높은 자리에 앉혔다. 마크롱은 실력만 보고 판단할 사람이다.”

파리 서쪽 낭테르에 위치한 FN 당사 앞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당명도 보이지 않게, 작은 골목길에 당사가 숨어 있었다. 굳게 닫힌 철문을 사이에 두고 만난 보안요원은 “오늘은 사람이 없다”고만 말했다. 개선문 근처 파리 선거사무소도 비슷했다. 대로변 건물 한 층을 빌려 쓰고 있지만 FN을 나타내는 아무 표지도 없었다. 과격한 주장을 앞세우는 르펜은 충성스러운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그만큼 미움도 많이 받는다. 지난달 13일 새벽에는 ‘외국인 혐오와 싸우자’라는 단체가 FN 건물에 화염병을 던졌다.

전문가들은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극도의 분열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 3일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연구실에서 만난 니콜라스 소제 교수(41)는 “완전히 다른 사회를 만드느냐, 과거로 퇴행하느냐 두 가지만 남을 것”이라고 했다. 유럽과 프랑스의 정치구조 변동을 연구해온 정치학자인 그는 누가 대통령이 되건 “반대파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다음달 열릴 하원 선거가 문제다. FN의 하원 의석은 2석에 불과하다. 지난해 4월 출범한 앙마르슈는 1석도 없다. 양당 모두 대선 승리의 기세를 몰아 하원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 말하지만 어느 쪽도 과반을 차지하기는 어렵다. 앙마르슈와 FN, 기존의 공화·사회 양당, 그리고 지난달 1차 투표에서 20% 가까이 표를 얻은 극좌 장 뤼크 멜랑숑의 좌파 정당까지 여러 정치세력이 난립할 가능성이 높다. 분권형 대통령제인 프랑스에서 여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기 힘들다. 소제 교수는 “최악의 경우 의회와 대통령이 충돌해 정국이 교착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으로 쪼개진 프랑스를 통합하는 것도 난제다.

지난달 1차 투표에서 마크롱은 대도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그 외 촌락은 르펜이 쓸어담았다. 파리 시민들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마크롱은 ‘새로운 인물’임을, 르펜은 ‘파격적인 처방’을 내세워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변화에 대한 요구는 뜨겁지만 정작 대선과 총선 후의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양대 기성정당은 몰락했고,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는 불투명하다. 마크롱이 공약한 공공부문 감축이나 르펜이 주장한 프렉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는 효과를 논하기 전에 실현될지부터가 미지수다. 전문가들이 이번 대선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 이유다. 소제 교수는 “프랑스는 이제 불확실성의 시대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파리 |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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