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로봇 콕 잡아낸다..쉴틈없이 일감주는 AI 감독관

신찬옥,김동은,박창영,정지성,박은진,오찬종 2017. 5. 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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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톤짜리 금속 덩어리로 80kg 항공기 윙립 만들어
인공지능 무인운반차가 휴식중인 절삭기에 일감 줘 "국내 최고수준 AI공장"

◆ 한국산업 판 뒤집는 AI혁명 ② / 글로벌 항공사가 주목한 '인공지능' KAI 공장 ◆

경남 사천 KAI 공장에서 T50 고등훈련기의 최종 조립이 이뤄지고 있다. KAI는 AI를 적극 도입하며 항공산업에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 제공 = KAI]
지난달 방문한 경남 사천 소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 A350동. 무게 3t짜리 알루미늄 리튬 합금 덩어리를 깎아 비행기 날개 안에 들어가는 갈비뼈 모양 구조물(윙립)을 만든다. 로봇이 창고에서 알루미늄 리튬 덩어리를 작업장으로 옮기면 높이 5m, 너비 13m가 넘는 절삭기가 최첨단 에어버스 여객기 A350에 들어갈 80㎏짜리 윙립을 제작한다. 로봇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다른 '자동화 공장'과 비슷하다.

하지만 A350동은 인공지능(AI) 기술이 접목된 현장이다. A350동에 설치된 AI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공작기계들에 작업을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점이다. AI의 '공정 최적화' 기능을 통해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무인운반차(RGV)'다. 무인운반차는 자재창고와 절삭기 사이를 오가며 원자재와 완성된 윙립을 옮긴다. 그런데 2대의 절삭기가 동시에 쉬고 있는데 무인운반차가 굳이 멀리 있는 기계에 원자재를 전달하는 게 눈에 띄었다.

에어버스 A350 날개에 들어가는 윙립. 윙립은 핵심 부품으로 날개를 지지하는 뼈대 역할을 한다.
"하나의 기계에만 일이 쏠리면 과부하가 걸리죠. 동시에 놀고 있는 절삭기가 생겼을 때 AI 소프트웨어는 그날 일을 덜한 쪽에 원자재를 가져다 줍니다." 김병주 KAI 기체생산기술1팀장(부장)의 설명이다. 조금 더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일을 덜한 쪽에 업무를 맡기는 게 공장 전체의 효율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팀장은 "공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0과 1의 디지털 언어로 바꿔뒀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무인운반차 입장에서 '0'으로 표시된 절삭기는 휴식 중이기 때문에 원자재를 가져다 줘야 할 대상이다. 반대로 '1'로 표시된 절삭기는 이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가도 된다.

'0'으로 표시된 절삭기가 여러 대 있을 때는 어떻게 할까. 절삭기가 직전에 작업을 했는지를 AI가 다시 확인한다. 바로 직전 작업을 수행한 절삭기는 휴식하도록 하고, 반대로 한동안 일을 쉰 기계는 다시 작업을 시킬 차례다. 둘 다 작업을 쉬었다면? 해당 기계의 전체 가동시간 등을 고려해 다시 판단할 수도 있다.

김 팀장은 "사람은 신경 쓰기 귀찮다는 이유로 한 사람에게 일을 많이 시킬 수도, 또는 본인의 감정에 좌우돼 특정인에게만 많이 시킬 수도 있다"며 "AI는 감정을 배제하고 효율성으로만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기계에 작업이 공평하게 나뉘었을 때 장점을 물었더니 그는 "기계의 노후화를 일정한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며 "공장 내 자산의 감가상각 예측도 훨씬 용이하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인간의 관여 없이 절삭기 9대가 깎아내는 윙립이 매월 660개다. A350 양쪽 날개에 해당 제품이 33개씩 들어간다. 2만3760t에 달하는 원자재를 2.64t으로 줄이는 대공정이다. 사람은 '관리·감독' 의무만을 지며 3교대로 24명만 필요하다.

윙립 제작은 비행기 제작에서 가장 위험한 공정으로 꼽힌다. 3~4t의 금속 덩어리를 옮기고 깎는 과정에서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KAI가 AI가 접목된 스마트 공장을 설립한 이유도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만약 AI공장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2.5배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KAI 측은 밝혔다. 공장을 설립하는 데는 장비, 소프트웨어 등을 모두 포함해 총 1000억원이 들었다.

KAI는 AI 공장의 강점을 내세워 에어버스 A350 윙립을 만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김 팀장은 "항공기 부품 생산에서 전 공정을 자동화한 공장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자신했다. KAI에 따르면 면적 9917㎡(약 3000평)인 A350동의 자동화율은 87%에 달한다. 스마트 팩토리의 대명사로 꼽히는 지멘스 공장 자동화율이 85%다.

하성용 KAI 사장
"처음부터 AI 공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A350동이 스마트 공장 분류기준에 따르면 몇 단계쯤 되느냐는 질문에 김 팀장은 대뜸 이렇게 답했다. 그는 "만들어놓고 보니 산업통상자원부와 타 기업들에서 찾아와 AI 공장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하더라"며 "우리 공장은 스마트공장추진단 분류 기준으로 '중간2'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민관 합동 스마트공장추진단은 스마트공장을 IT 기술 활용 정도와 역량에 따라 기초·중간1·중간2·고도화 등 4단계로 분류한다. 국내에 고도화 공장은 한 군데도 없기 때문에 KAI A350동이 가장 높은 수준의 AI 공장이다.

A350동은 완전한 AI 공장인 고도화 공장으로 도약을 준비 중이다. 조만간 도입할 예정인 '상태기반정비(CBM)'가 출발점이다. CBM이 적용되면 A350동 작업기계들은 스스로 상태를 점검하고 이상 유무를 파악한다. 가동 중단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다.

기계가 판단까지 할 수 있게 되면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 팀장은 "AI 기반 스마트공장 구축은 일자리를 줄이는 게 아니라 사람의 작업환경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세계 최고 항공사인 보잉도 우리 공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다른 항공기 부품업체들이 앞다퉈 스마트공장을 지으려 하는 마당에 우리만 사람 손을 고집한다면 일자리를 유지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기획취재팀 = 신찬옥 기자 / 김동은 기자 / 박창영 기자 / 정지성 기자 / 박은진 기자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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