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 캬조리 원정대] "고산 거벽 등반은 함께 가고, 함께 오르는 길"

글·월간산 한필석 편집장 2017. 4. 2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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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원정대, 쿰부히말 미등벽 캬조리 북서벽 세계 초등 노려

3인의 클라이머가 네팔 쿰부히말의 난벽에 도전한다. 김세준(48·ER 대표강사), 염동우(38·서울시산악구조대원), 한정희(35·아디다스 클라이밍팀) 세 클라이머는 캬조리(Kyazo Ri·6,186m) 북서벽 초등을 노리고 4월 19일 출국한다.

[월간산]“이만 하면 산꾼 같지 않은가요? 히말라야에 우리들의 열정이 담긴 길을 낼 겁니다.” 하루재 들머리에서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캬조리 원정대원들. 뒷줄 왼쪽이 김세준 대장, 오른쪽이 염동우 대원, 맨앞은 한정희 대원.

트레킹피크로 잘 알려진 고쿄 남서쪽에 솟아 있는 캬조리는 2002년 프랑스 팀의 남서릉 초등과, 2009년 이탈리아 팀의 북동벽 등정 이후 등정에 성공한 원정대가 없는 난봉. 2011년 가을 한국 등반대(대장 유학재)가 북동벽으로 정상을 노렸으나, 짧은 등반 일정과 기상악화 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야생마 한정희, 월드컵 출전 무산

캬조리 북서벽은 표고차 1,100m 거벽으로 원정대는 벽 등반 4일, 남서릉 하산 2일 총 6일 일정으로 등반에 나선다. 대원들은 각각 8.5mm 60m 로프 2롤과 스크루, 하켄 등을 포함한 장비와 식량이 담긴 10kg 안팎 무게의 배낭을 짊어진 채 로테이션으로 등반할 계획이다.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ER) 원정대로서는 2016년에 이은 재도전이다. 지난해 가을 개교 20주년을 한 해 앞두고 기념등반에 나선 ER 원정대는 북서벽 팀(대장 김세준)과 노멀루트 팀(단장 변기태 교장) 2개 팀으로 구성됐다. 남서릉 노멀루트 팀은 등반 초반 루트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했고, 북서벽 신 루트 팀은 북벽 등반기점에 장비와 식량을 올려놓고 휴식을 취한 다음 등반을 위해 벽으로 접근하려는데 카트만두행 경비행기를 타기 위해 루클라에 대기 중이던 노멀루트 팀의 대원 한 명이 숙소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바람에 사고수습을 위해 등반을 멈춰야 했다.

등로주의 추구하는 김세준

[월간산]설교벽 2피치 출발 직전. 활짝 웃고 있는 김세준 대장과 염동우 대원.

3월 중순, 북한산 도선사주차장에서 만난 캬조리원정대원 중 한정희 대원은 목발 신세였다. 한 대원은 지난 1월 26일, 이탈리아 라벤스텐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 출전을 이틀 앞두고 훈련 도중 추락, 발 골절상을 입었다.

“나랑고 지역의 드라이툴링 루트 오버행에 막 매달리는 순간 피크가 빠지면서 10m나 굴렀어요. 헬멧이 깨질 정도니까 충격이 컸죠. 조금 다친 줄 알았는데 골절상이라지 뭐예요. 너무 화가 나서 바일 네 자루와 아이젠 등 장비를 숙소 베란다 바깥으로 집어 던졌어요. 컨디션이 좋았기에 더욱 분했어요.”

한 대원은 고산등반보다는 스포츠클라이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광운공고 산악부에 입회하면서 등반을 시작한 한 대원은 인공등반대회와 빙벽등반대회에서 우승을 다툴 만큼 국내 최고 수준 클라이머다. 2009년 이후 슬럼프에 빠져 여러 해 동안 대회에 출전하지 않기도 했지만 2012년 전국선수권대회를 비롯해 4개 빙벽대회를 섭렵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라벤스텐 대회 역시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산 거벽 등반의 기회도 몇 번 가졌다. 의정부 샤모니인공암벽에서 운동을 하면서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의 주역인 고 김형일(2011년 가을 촐라체 북벽서 추락사)씨와 맺은 인연으로 2002년 탈레이사가르(6,904m) 북벽 원정에 참가했고, 2009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아디다스 록스타 볼더링대회 참가 후 아이거 북벽에 도전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키르기스스탄 악사이산군의 코로나 북벽에 도전했으나 선배 대원의 건강 문제 때문에 제대로 등반하지 못한 채 뒤돌아서야 했다.

지난겨울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출전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무엇보다 현역 선수로서 마지막 기회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 꿈이 한층 높아지고 더욱 커졌다. 최고의 알파인 클라이머에게 주어지는 황금피켈상이 목표다. 이날 한정희 대원은 설교벽 등반에는 동참하지 못했다. 그러나 캬조리 북서벽 등반에 대한 기대는 두 선배 대원 못지않게 컸다. 

“제가 초반에 고소에 좀 약해요. 하지만 회복되는 순간 날아다녀요. 캬조리에서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형님들, 오늘은 제가 먼저 하산하지만 그땐 다를 거예요. 형님들 모시고 올라갈 테니까요, 하하.”

[월간산]우이산장 터로 올라서는 대원들.

두 선배는 큰소리치며 도선사주차장으로 내려서는 막내 대원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본 뒤 하루재로 향했다. 잠시 후 이마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하루재에 올라서는 순간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댔다. 고갯마루 동쪽이 바깥세상이라면 서쪽, 산안은 분명 내원이었다. 내원 한가운데 인수봉이 눈을 희끗희끗 뒤집어쓴 채 냉랭한 분위기로 솟아 있었다.

옛 인수산장에서 계곡을 건너 허리길 따라 설교벽으로 접어들었다. 설교벽은 아직 겨울이었다. 그나마 동쪽은 눈이 많이 녹아 내렸지만 북사면은 한겨울 모습 그대로였다.

“지난주에도 여기서 등반했어요. 드라이툴링 훈련이죠. 암빙설 혼합벽을 오르려면 바일 사용이 기본이니까요.”

꽁지머리 김세준 대장은 오래도록 보디빌딩으로 몸 관리를 해오다가 1998년 새롭고 재미있는 운동 차원에서 등반을 시작했다. 김 대장은 의정부 샤모니암벽에서 당시 최고의 등반 기량을 과시하던 최승철-김점숙 부부, 김형진, 한정희 같은 클라이머들과 인연을 맺고, 그들과의 등반을 통해 빠른 속도로 기량이 발전했고 히말라야 등반의 기회도 빨리 가졌다.

김세준 대장의 등반 이력은 화려하다. 2002년 2월 미국 요세미티 엘캐피탄의 고난도 루트 ‘로스트 인 아메리카’(5.10 A4)를 겨울 시즌 단독으로 9박 10일 동안 등반한 바 있는 그는 2001년 파키스탄 오거섬, 2003년 파키스탄 나와즈브락(등정), 2004년 캐나다 배핀 섬(신 루트 등반), 인도 메루피크 중앙봉 샥스핀(등정), 2008년 파키스탄 힌두라디 투이좀 북벽, 2011년과 12년 파키스탄 라톡 북벽, 2013년 키르기스스탄 악사이산군 코로나(등정), 2013년 악사이산군 코로나5(등정) 등을 등반했다. 대부분 초등반이었다.

15년째 익스트림라이드등산학교 대표강사(강사는 17년째)를 맡고 있는 김세준 대장은 메루피크 샥스핀 등반으로 제6회 대한민국 산악상 등반상을 받았고, 메루피크 북벽 신 루트 등반 이듬해인 2009년에는 대한민국 산악대상을 수상했다.

[월간산]야생마 한정희. 목발을 짚는 신세이면서도 웃는 모습은 너무도 환하다.

김 대장은 설교벽 밑에 도착하자 곧바로 안전벨트를 찼다. 헤라클레스를 연상케 하는 체격과 달리 허리가 잘룩했다. 꾸준하고 강한 트레이닝의 결과였다. 그는 뜻밖에 ‘원정이란?’ 화두에 ‘어울림’이라 대답했다.

“해외원정은 암벽이나 빙벽 등반대회 출전을 목표로 운동하는 스포츠클라이머들에게는 쉽지 않은 등반여행이에요. 늘 경쟁심에 사로 잡혀 있거든요. 반면 등반은 성취욕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요. 유상과 무상의 차이겠지요.

한정희는 전형적인 야생마 스타일이에요. 고등학생 때부터 오래 봐왔어요. ‘원정 좀 데려가 달라’면 ‘철들기 전엔 안 된다’고 했었는데 많이 변했어요. 발목이 어떨지 몰라 걱정되긴 하지만 잘할 거예요.”

사진기자 클라이머 염동우

염동우 대원 역시 등반 커리어가 만만치 않은 클라이머다. 동양공전 산악부 출신으로 현재 서울산악조난구조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염 대원은 21세 때(2000년 여름)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를 등정했고, 2006년 인도 가르왈히말의 조긴(6,495m) 한국 초등을 이룩했다. 2009년에는 예지 쿠쿠츠카가 추락사하고 한국이 여러 차례 노크했던 악명 높은 로체 남벽을 등반하기도 했다. 특히 혼합벽 등반 테크닉이 뛰어나 2013년 여름 키르기스스탄 악사이산군의 프리코리아(4,740m)에 바버루트를 내면서 한국 초등을 기록했다.

[월간산]사진가 출신 등반가? 등반가 출신 사진가? 염동우 대원은 사진가보다는 클라이머로 불리기를 원했다.

“대학 1학년 때 130일 넘게 산에서 지냈어요. 학사경고 직전까지 갔었죠. 그래도 짧은 기간에 5.12 수준에 이를 만큼 열심히 등반하니까 선배들이 데날리 원정을 보내주었던 거예요. 서울산악조난구조대는 2005년 봄 신입생 환영등반 때 텐트에서 불이 나면서 화상을 입은 인연으로 입회했어요. 구조도 해주고 병문안도 자주 와주었거든요. 그 덕분에 입회 이듬해 조긴과 탈레이사가르 북벽을 등반할 수 있었던 거예요. 로체 남벽 등반도 마찬가지고요.”

염 대원은 암빙벽 등반 기량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인공벽등반대회마다 결선에 올랐다. 속도등반에서 특히 잘했다. 볼더링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 2010년 빙벽대회 성적은 통합 10위권이다.

염 대원은 올 여름 김미곤 대장의 낭가파르바트 원정을 함께할 생각이었다. 김미곤 대장에게는 8,000m급 14좌 완등을 마무리하는 등반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김 대장이 장딴지 근육이 파열되는 바람에 무산됐다.

“등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니까 난이도보다 고산 거벽을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튼 안전이 가장 중요하겠죠, 그 다음이 성공일 테고요. 무엇보다 좋은 선후배 클라이머와 함께한다는 게 가장 좋은 일이다 싶어요.”

염동우 대원은 월간山 독자들에게는 사진기자로 잘 알려져 있다. 7년째 기자생활을 해온 염 대원은 이번 원정을 앞두고 퇴사를 결정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정체성이 흔들렸어요. 저는 분명 등반가인데 대부분 사람들이 저를 사진가로만 생각하는 거예요. 이번 기회에 제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여러 해 동안 닦은 사진 테크닉으로 좋은 영상도 만들 거예요.”

[월간산]3피치를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는 김세준 대장과 염동우 대원.

염동우 대원은 2년에 한 번 정도 자신이 리딩을 맡는 원정을 꿈꾸면서 실내암장을 운영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어울림은 나눔이잖아요”

오후 1시경 해가 인수봉 뒤로 넘어 가자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엄습했다. 인수봉 기슭에 아직 겨울이 머물러 있었다. 1피치, 2피치에 이어 3피치 등반을 마친 뒤 바위 밑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사이 김세준 대장은 “앞으로 거벽 등반의 기회가 몇 번 남지 않았을 것 같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김세준 대장은 42세 때인 2011년 겨울 크리스마스이브 날 결혼했다. 김 대장은 “어머니께서 ‘말썽쟁이 둘째가 평생 장가 안 갈 줄 알았는데 장가갔다’며 만세삼창 부르셨다”며 “아들이 이제 여섯 살”이라 했다.

“정승권 형이나 이탈리아의 한스 카멀랜더처럼 오래도록 등반하는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어요. 하지만 고산 거벽 등반을 하기에는 이제 많은 나이가 아닌가 싶어요. 만 50세까지 원정 등반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생각해 둔 산을 다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들 장가보내려면 아무래도 몸을 많이 사려야겠죠?”

장비를 챙겨 오후 2시 30분경 하루재에 다시 올라섰다. 침니와 크랙 곳곳에 눈이 박혀 있는 인수봉이 유난히 반짝였다. 김세준 대장과 염동우 대원의 열정이 빛나는 듯했다.

[월간산]캬조리 북서벽.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원정대는 등반 4일, 하산 2일 총 6일간 등반을 펼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비박장소 등을 봐두었지만 봄과 가을 날씨가 달라 어떨지 모르겠어요. 세 대원이 돌아가면서 앞장설 거예요. 그래야 공평하죠. 어울림은 나눔이잖아요, 하 하.”

김세준 대장과 염동우 대원 서로 마주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곤 내원을 빠져나갔다.

캬조리 원정대는 4월 19일 출국, 한 달간 등반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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