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연주하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곡 '벡사시옹'

2017. 4. 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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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사티의 <벡사시옹>. 우리말로 ‘짜증’이라는 뜻이다. 듣는 사람은 짜증을 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같은 멜로디를 무려 840번이나 반복하여 14시간 가까이 연주하는 곡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거추장스러운 현대문명의 지나친 장식과 버튼과 기능을 거부하면서 놀랍도록 단순한 기계 미학의 절정을 이룬 스티브 잡스. 아이폰을 설계할 때는 ‘잠금해제’ 버튼마저도 다 없애버리고 살짝 흔들거나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최첨단 기능의 구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마지막까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런 잡스도 한때는 애플사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맞춰 입도록 한 적이 있다. 소니사를 방문했다가 그 회사의 직원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애플사에도 이를 적용하려 했는데 자유분방한 사내 분위기를 선호하는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쳐 포기했다고 한다. 그 대신 잡스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게 된다. 유니폼 디자인을 두고 그가 상의했던 디자이너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으로 일본 패션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잇세이 미야케였다.

'괴짜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작곡가 에릭 사티(1866~1925) / 정윤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난해한 작품 제목

잡스는 직원 유니폼은 포기하는 대신 잇세이 미야케에게 검은 색 터틀넥 셔츠를 주문했고, 미야케는 잡스가 평생 입을 수 있을 만큼의 옷을 만들어줬다. 무모할 정도로 극한의 단순성을 추구한 잡스는 이 셔츠뿐만 아니라 청바지는 꼭 리바이스만 입었고 신발도 뉴발란스 992 운동화만 신었다.

어쨌든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매우 일상적인 소품에서 기벽에 가까울 정도로 하나에만 집착하고 편벽이다 싶을 만큼 오직 그것에만 몰두하는 사물 애호증은 그 저렴하면서도 자그마한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나름대로 자기가 추구하는 추상적 관념이나 감각을 매일같이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김정환은 비범한 시의 세계와 더불어 동서의 문물을 통달한 방대한 지식에 더하여 30년 넘게 엇비슷한 색깔의 남방만 입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쩌다 먼 발치에서 보면 시인 김정환은 늘 같은 스타일의 남방을 입고 있었다. 1987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때, 1989년의 노동자문화운동연합 때, 1990년대 후반의 한국문학학교 때, 또 그 밖의 작은 장소들에서 내가 본 김정환은 늘 어두운 색채의 체크무늬 남방이었다.

이런 정도면 분명 뭔가 있다. 그는 문자로 된 세계의 완성자이지만 동시에 시간예술의 극한인 음악에 있어서도 몇 권의 저서를 낸, 애호가를 넘어 전문가, 아니 문사철을 바탕으로 하여 특정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광범위한 문화사적 시야를 지닌 강자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그래도 본업이 시인이고 수많은 책을 쓴 사람임에도 정작 자신의 사적 공간(가족의 집이자 서재이자 작업실인)은 온통 음반으로 가득 채웠다.

2008년 8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김정환은 이렇게 말했다. “벽면을 휘 둘러보면 음반 꽂은 데에서는 각각의 음악이 귀에 들리는데, 책은 두껍고 복잡한 탓에 이야기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읽는 족족 학생들에게 준다”고 말했다. 꽂혀 있는 음반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하아, 범속한 경지는 분명 아니다.

이런 강자가 현대 클래식의 벽두가 되는 20세기 초, 프랑스에 한 사람 있었다. 에릭 사티! 우선 그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난해한 작품 제목으로 유명하다. <관료적인 소나티네>, <차가운 소곡집>,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변주곡>, <말의 옷차림으로>, <바싹 마른 태아>, <배 모양의 세 개의 곡>, <지나가버린 한때>, <기분 나쁜 자의 왈츠>, <스포츠와 기분 전환>등이 사티의 작품 제목이다. <별난 미녀>라는 작품은 전체 4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위대한 옛날이야기’, ‘프랑스 달의 행진’, ‘눈에 하는 신비로운 입맞춤의 왈츠’, ‘큰 사교장의 남자 캉캉 춤’이라는 제목으로 이어진다. 시인 김정환이라면 이런 제목만 듣고도 어떤 음의 세계를 상상해낼 수 있을텐데, 나로서는 무리다.

사티의 대중적인 대표작은 달콤하면서도 안정된 상품을 파는 광고에 자주 쓰인 <짐노페디>와 <그노시엔느>다. 짐노페디는 고대 스파르타의 연중 제전행사의 하나로, 젊은이들이 나체로 춤추고 노래하면서 신을 찬양한 것, 또는 그 장소를 뜻한다. 그노시엔느는 크레타 사람, 혹은 크레타 사람이 추는 춤이란 뜻이다. 사티는 자신의 음악을 ‘가구 음악’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거실 한편에 무덤덤하게 놓여 있는 가구처럼 자신의 음악 또한 과시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묵묵히 그 자리에 언제까지나 있을 것만 같은, 없는 듯 존재하는, 그런 음악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역설이다. 극히 안온하고 따스한 그의 피아노 소품들, 그러니까 거실 한편에 놓여 있는 단아한 협탁 같은 <짐노페디>나 <그노시엔느>를 듣다 보면, 어느덧 영혼은 저 고대의 주술적 세계로 헤엄치며 나간다.

악보는 겨우 1장, 쉼없이 돌아오는 곡

1차 대전을 전후로 한 극도의 혼란기에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며 생계를 이은 사티는 제목만큼이나 독특하고도 기이한 음악을 많이 남겼는데 그 중 백미가 <벡사시옹>이다. 우리말로 ‘짜증’이라는 뜻이다. 일단 이 곡은 연주하는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듣는 사람은 짜증을 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같은 멜로디를 무려 840번이나 반복하여 14시간 가까이 연주하는 곡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악보는 겨우 1장, 그러나 쉼없이 돌아오고 또 돌아오고 다시 돌아온다.

그의 생전에는 연주된 적이 없고 존 케이지가 사티의 친구로부터 악보를 입수하여 공개했다. 기존의 예술 문법을 산산히 박살내기 위해 태어난 실험주의자 존 케이지마저도 악보를 입수한 지 15년이 넘어서 공개 연주를 했는데 14시간 가까운 곡이라서 동료 4명과 함께 돌아가면서 피아노를 쳐야만 했다. 일본의 피아니스트 다카시 유지는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야간열차에서 연주하였고, 1995년 3월에는 서울대 음대생 40명이 학생식당에서 이 긴 곡을 연주했다.

1차 대전 후, 유럽의 예술계는 사티를 필요로 했다. 전쟁이라는 기존의 질서와 이념과 확신이 붕괴되었다는 것, 즉 모든 약속이 부도나고, 모든 장밋빛 예언이 파탄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 이후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전쟁 이전까지 지배적이었던 모든 신념과 가치와 스타일을 버리거나 타파해야 했다.

1차 대전 이후에는 파리에서, 2차 대전 이후에는 뉴욕을 중심으로 신진 기예들이 대거 출몰하여 기존의 모든 예술방식, 심지어 예술가들이 숨을 쉬는 방식마저 분쇄기에 넣어 갈아버리고는 충격의 퍼포먼스를 벌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티는 1차 대전 이후에 타자기, 호루라기, 권총 따위를 총동원한 발레 음악 <파라드>를 발표하기도 했고 기존 종교에 대한 강력한 거부의 마음으로 ‘지휘자 예수의 예술 메트로폴리탄 교회’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사티가 창립한 것으로, 회원을 일절 받지 않는 단체였다. 단독자 사티만이 회원이고 대표자이고 신도이고 교주였던 셈이다.

1차 대전 직후의 유럽, 특히 파리의 우울하면서도 자유로운 공간에서 뭔가 거대한 붕괴의 조짐이 느껴지는 낡은 제국의 스산한 밤에, 이곳이 아닌 어떤 곳, 지금의 이 현실이 아닌, 물의 유희와 불의 장난이 어우러지는 머나먼 고대를 향한 상상의 여정, 그것이 곧 사티의 <짐노페디>와 <그노시엔느>다.

사티는 1925년 7월 1일, 간경화 끝에 혼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친구들이 그의 유품을 정리했는데 스케치 몇 점과 사 놓고는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여러 개의 우산들뿐이었다. 그는 우산이 비에 젖을까봐 우산을 펴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 그리고 옷이 몇 벌 있었다. 회색 벨벳 양복인데, 생전에 똑같은 것으로 열두 벌을 샀다고 한다. 그 중 몇 벌만 입고 다녔을 뿐, 여섯 벌은 한 번도 입지 않았다. 그것을 다 입기 전에, 그는 생을 다 마쳤다. 그의 똑같은 옷, 여섯 벌은 폭력과 범속의 시대를 거스르는 단순하면서도 엄정한 저항이었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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