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 빵!" 4천년 전 향긋한 발견, 과학으로 되살린다

원호섭 2017. 4. 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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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최초의 빵' 복원 나선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
기원전 2000년 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우연히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에 굽자 맛있는 '빵'이 만들어졌다. 인류 최초의 빵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4000년이 지났다. 과학으로 무장한 제빵 과학자들은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바로 인류 최초의 빵을 찾는 일이다. 이집트 시대 사람들이 먹었던 빵, 인류 최초의 빵은 과연 어떤 맛이었을까.

1857년 프랑스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효모를 발견하기 전까지 빵을 만들던 사람들은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반죽 속에 들어 있던 효모는 발효과정을 거치며 이산화탄소와 함께 알코올 등의 향기 성분을 만들어낸다. 이산화탄소는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알코올류는 빵에 풍미를 더해준다. 과거 빵을 만들던 사람들은 우연히 발견한 밀가루 반죽의 일부를 떼어 보관한 뒤 빵을 만들었다. 다음날 남은 반죽에 밀가루를 넣어 새로운 반죽을 만들었다.

강신달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 소장은 "효모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부풀어 오른 밀가루를 떼어내 보관한 뒤 이를 대대손손 남겨야만 빵을 만들 수 있었다"며 "이런 반죽을 '발효종'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빵의 맛은 독특했다. 가게마다 맛도 달랐다. 발효종에는 효모, 유산균 외에 그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미생물이 가득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빵과 풍미가 다르고 영양가치도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시대를 거쳐 미국, 유럽으로 전파된 빵은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대량생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효모의 존재를 깨달은 뒤 1900년대 초반부터는 빵에 특화된 상업적 효모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캐나다와 미국, 일본 등 몇몇 업체만이 효모 대량생산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 제빵업체들은 이곳에서 만든 효모를 이용해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빵의 맛이 비슷해진 이유다.

사람들의 입맛은 까다로워졌다. '웰빙'도 추구한다. 같은 빵이라도 칼로리가 낮고 영양가는 높아야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제빵업체들은 과거로 눈을 돌렸다. 상업적으로 대량생산된 효모로 만든 빵 외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밀가루 반죽을 이용한 최초의 빵을 찾아나선 것이다.

강신달 소장은 "차별화된 빵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이집트 시대 만들었던 빵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며 "학회에 참석하면 이와 관련된 연구논문들이 상당히 많이 발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 시대의 빵은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효모 외에 유산균과 같은 많은 미생물이 발효에 관여한다. 지금 빵은 밀가루 반죽 시 효모만을 사용해 발효시킨다. 효모를 제외한 다른 미생물을 대량생산하거나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다. 자연 상태에서는 효모보다 유산균이 잘 자라기 때문에 최초의 빵에는 유산균이 더 많았다.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의 한 선임연구원은 "최초의 빵에는 유산균이 효모보다 약 100배가량 많았다"고 말했다. 유산균은 발효과정을 거치며 그 수가 늘어나는데 이때 산도(pH)가 증가한다. pH가 높은 환경인 위에서 음식물이 녹거나 세균이 죽는 것처럼 유산균이 많은 곳에서는 유해한 세균이 파괴된다. 유산균의 양이 많아지면 빵은 약간 '신맛'이 난다. 최초의 빵을 '사워도우(Sour dough·신 밀가루)' 빵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산균이 많으면 유기산에 의한 '유산균 발효'가 일어나며 빵에 풍미를 부여하고 기호성을 향상시킨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생명과학대학 연구진 논문에 따르면 사워도우를 사용한 빵은 효모로 만든 빵과 비교했을 때 향을 내는 분자들이 더 많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강신달 소장은 "'피틴산'이라는 물질은 마그네슘이나 칼슘, 무기염류의 흡수를 저해하는 물질"이라며 "유산균은 피틴산을 분해하는 '피틴산 분해효소'를 만들면서 마그네슘, 칼슘, 무기염류의 흡수를 돕는다는 연구도 있다"며 "사워도우는 긴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밀가루 빵과 비교했을 때 풍부하고 깊은 향을 갖는다"고 말했다.

유산균을 많이 넣은 밀가루는 굽는 과정을 거쳐도 항균물질이 활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스웨덴 농과대 연구진은 유산균 균주에서 생성된 항균물질인 '페닐아틸산'과 '하이드록시기 페닐아틸산'이 빵을 굽는 공정에도 활성을 유지하며 유통기한을 7일 이상 연장시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결과는 2001년 '환경미생물응용' 저널에 게재됐다.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생성되는 유기산 및 대사 산물로 향미와 질감, 반죽의 물성이 향상되고 저장기간 발생할 수 있는 노화가 지연되는 효과도 있다.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의 한 수석연구원은 "최초의 빵에는 유산균과 효모 외에도 다양한 미생물이 발효에 관여하면서 최초의 빵은 지금 빵과는 다른 맛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밝혀진 것이 많이 없는 만큼 어떤 미생물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제빵 과학자들은 최초의 빵을 찾기 위해 미생물 분리, DNA 분석 등을 활용한다. 문헌 조사를 통해 과거 빵의 특성을 살피고 유럽 곳곳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발효종, 빵에서 미생물을 채취한다. DNA 분석을 통해 미생물의 종류를 찾아낸 뒤 이를 이용해 빵을 만들어 본다. 모든 미생물을 빵 제조에 사용할 수는 없다. 분리해 낸 미생물을 이용해 수차례 빵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서 유익한 균은 추출하고 유해한 균은 걸러내는 과정을 거친다. 소위 '노가다'로 불릴 만큼 지루한 연구가 반복된다. 제빵 산업에도 일반 과학처럼 '기초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제빵업계 1위인 SPC그룹은 지난해 4월 11년 동안의 연구를 거쳐 한국 전통 누룩에서 천연 효모를 분리해 낸 뒤 한국에 적합한 제빵용 효모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SPC그룹의 다음 계획은 '최초의 빵'을 찾아낸 뒤 이를 국내 소비자에 맞는 효모와 유산균으로 새롭게 재탄생시키겠다는 것. 강신달 소장은 "제빵에 유용한 다양한 미생물을 연구하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끔 제품 개발로 이어가는 것이 목표"라며 "천연 효모를 찾아내고 이를 상품화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빵을 만들기 위한 기초연구를 진행해 나간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 또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전통적인 빵 제조 방식과 현대 제조공정을 결합하게 되면 소비자에게 더욱 건강한 빵을 제공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腸 속까지 살아서…어? 빵도 발효식품이네

일반적으로 '발효식품'이라고 하면 김치, 막걸리 등이 먼저 떠오른다. 발효식품이란 젖산이나 효모 등 미생물의 발효(미생물 자신이 갖고 있는 효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를 이용해 만든 식품이다. 빵을 만들 때도 발효 과정을 거친다. 반죽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발효 과정을 통해 이산화탄소, 에탄올, 유기산 등 다양한 대사산물을 생성하면서 빵맛을 좋게 만든다. 이때 효모나 유산균 등의 미생물이 파괴되는데 이 때문에 빵을 발효식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죽은 '균'이 장속으로 들어가 유익한 활동을 하는 여러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어서다. 빵 역시 발효식품이라는 얘기다.

죽은 균을 '사균체'라고 한다. 건강보조식품으로 자주 먹는 '프로바이오틱스'의 경우 이미 1999년 "숙주에 유익한 작용을 갖는 미생물 또는 미생물의 성분"으로 정의되면서 살아 있는 유산균뿐 아니라 죽은 유산균까지 프로바이오틱스 범위에 포함됐다. 사균체는 비록 살아 있지 않지만 항균활성 물질과 다당류, 유기산 등을 포함하고 있다. 사균체 제품은 살아 있는 유산균과 비교했을 때 보관이 용이하고 유통기간을 늘릴 수 있어 프로바이오틱스 제품뿐 아니라 화장품 원료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의대 연구진이 '소화기내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균체 역시 염증에 미치는 영향은 살아 있는 유산균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창자에 염증을 갖고 있는 생쥐에게 살아 있는 유산균과 죽은 유산균을 주입했다. 그 결과 죽은 유산균을 맞은 생쥐에게서 살아 있는 유산균을 맞은 것과 같은 염증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중국 중산의대 영양학과 연구진은 2011년 '영양과학 저널'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11계열의 유산균을 차례로 가열시켜 사멸시켰다. 죽은 유산균을 만든 셈이다. 유산균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산균이 갖고 있는 면역조절 능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오히려 유산균이 갖고 있는 면역능력이 증가됨을 확인했다"며 "이 살균시킨 균주는 제품으로 개발할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강신달 SPC 식품생명공학연구소 연구소장은 "이처럼 열에 의해 죽은 균도 체내에 있는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미치거나 살아 있는 균과 마찬가지로 면역조절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유산균으로 빵을 만드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유산균으로 발효시켜 만든 빵 역시 발효식품으로 분류해도 무방하다는 설명이다. 효모 역시 마찬가지다. 효모를 이용해 만든 원기 회복제나 숙취해소제는 효모 사균체가 사용된다. 제조 과정에서 효모가 파괴되지만 효모가 갖고 있는 성분은 유지된다. 강 소장은 "빵은 효모와 유산균을 발효시켜 만들지만 '베이킹' 과정이 있다 보니 발효식품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며 "사균체가 생균과 비슷한 장점을 갖고 있는 만큼 빵 역시 발효식품과 같다"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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