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벌어진 어깨, 패션계를 평정하다.. 더 넓게, 더 높게, 명품은 지금 '어깨' 전쟁 중

김은영 기자 2017. 4.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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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선수처럼 과장하라… 어깨 크기는 럭셔리 브랜드의 생존법? 과장된 실루엣으로 견고한 테일러링 기술 과시80년대 워킹걸 스타일 & 젠더리스 트렌드의 영향

질샌더, 발렌시아가, 셀린느, 자크뮈스 2017 S/S 컬렉션(왼쪽부터)/사진=각 브랜드

직장인 A(29) 씨는 남들보다 벌어지고 각진 어깨가 콤플렉스다. 큰 키에 적당한 어깨선을 지니고 있지만, 옷을 사러 가면 어깨 부분이 미어져 늘 자신의 사이즈보다 한 치수 큰 옷을 사곤 했다. 그러나 올봄엔 이런 고민을 접어두려 한다. 어깨 패드가 들어간 넉넉한 실루엣이 유행이기 때문이다.

올봄 여성들 사이에선 어깨에 ‘뽕’을 넣은 파워 숄더(Power Shoulder) 룩이 인기다. 남성복 수트 재킷처럼 두툼한 패드를 넣은 각진 재킷부터 봉긋하게 주름을 넣어 어깨를 부풀린 퍼프 소매(puff sleeve∙소매에 주름을 넣어 둥근 형태로 만든 소매)까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깨 뽕은 촌스러움을 상징했다. 지난해 초 방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라미란이 자신의 생일날 과장된 어깨 뽕 블라우스로 한껏 멋을 내 웃음을 줬던 것처럼 ‘넓은 어깨’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전유물로 대표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넓은 어깨는 가장 트렌디한 실루엣으로 부상했다. 발렌시아가, 셀린느, 스텔라 맥카트니, 질샌더, 자크뮈스 등 유행의 주도권을 쥔 럭셔리 브랜드의 컬렉션만 살펴봐도 답이 나온다.

◆ 각진 어깨가 잘 팔린다… ‘파워 숄더’ 하이 패션계 평정하다

과장된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선 숙련된 테일러링 기술이 필요하다. 이는 럭셔리 브랜드만이 만들 수 있는 차별화된 가치다./사진=셀린, 베트멍, 시몬로샤(왼쪽부터)

발렌시아가는 2017 S/S 패션쇼에서 비현실적으로 크고 과장된 어깨들을 대거 선보였다. 마치 럭비선수의 유니폼처럼 어깨가 사각형으로 각진 재킷과 트렌치코트들이 색색의 롱부츠와 어울려 강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셀린느는 2017 S/S 컬렉션에서 클래식한 형태의 쓰리 버튼(three-button) 재킷을 선보인 데 이어, 리조트 컬렉션에서 과장된 어깨와 날씬한 허리선을 살린 수트를 선보였다. 질샌더는 넓은 어깨의 오버사이즈 재킷과 함께, 어깨 부분은 둥그렇게 부풀고 소맷부리가 좁아지는 양다리 형태의 레그 오브 머튼(Leg of Mutton) 소매를 보여줬다. 자크뮈스는 과장된 퍼프 소매로 어깨를 키우고 허리는 가늘게 조여 조형적인 실루엣을 표현했다.

한 패션 관계자는 최근 불고 있는 파워 숄더 열풍을 두고 “럭셔리 패션업계의 생존을 위한 고육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럭셔리 브랜드들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온라인 브랜드들의 발 빠른 복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급기야 몇몇 브랜드들은 6개월 앞서 선보이던 시즌 개념을 없애고 패션쇼가 끝나자마자 제품을 판매하는 ‘See Now Buy Now’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몸의 형태에 반하는 과장된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선 견고한 테일러링 기술과 장인정신이 요구된다. 숙련된 재단사를 보유한 럭셔리 브랜드로선 이는 솜씨를 뽐내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다. 형태를 만드는 건 화려한 장식을 가미하는 것보다 더 흉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2017 S/S 런웨이에는 과장된 실루엣이 대거 등장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장식을 앞세운 맥시멀리즘(Maximalism∙화려하고 장식적인 문화 예술적 경향)이 대세였지만, 이번 시즌엔 많은 디자이너가 장식을 버리고 형태에 집중했다. 옷은 단순해졌지만, 실루엣의 크기는 더 커졌다.

영화 ‘워킹걸’의 멜라니 그리피스(왼쪽)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오른쪽)/사진=핀터레스트

“이제 무조건 따라 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에요. 베트멍의 전위적이고 과감한 패션은 ‘베트멍’이기 때문에 통했던 거죠”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하이 패션의 새로운 시도는 처음엔 비웃음이 나오다가도 곧 멋스럽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하지만 이는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이기 때문에,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결국, 이들이 주도한 파워 숄더는 최신 트렌드가 되어 패션계를 점령하게 됐다.

과장된 어깨가 쏟아져 나온 것에 대해 한편에선 1980년대 복고풍의 귀환과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가 흐려진 젠더리스(Genderless)의 영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1980년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파워 숄더 재킷과 테일러드 팬츠 수트 등 남성적인 아이템을 입는 워킹 우먼 스타일이 유행했다. 영화 ‘워킹걸(Working Girl)’의 여주인공 멜라니 그리피스는 어깨선이 각진 수트를 입고 나와 워킹 우먼의 전형을 보여줬고,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는 봉긋한 퍼프 소매 블라우스를 즐겨 입어 당당한 우아함을 표현했다. 이를 권력과 힘을 상징하는 옷차림이라고 해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치 남성복을 입은 듯 남성성에 가까운 여성복이 대거 등장한 것을 두고 남녀 경계의 구분이 사라진 시대를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하기도 한다. 꽃 자수가 길게 수 놓아진 재킷과 실크 블라우스를 선보인 구찌 남성복과 소매에 러플 장식을 단 버버리의 남성용 트렌치코트처럼 말이다.

◆ 여성복 시장에 재킷이 돌아왔다… 재킷 판매율 급증, 점퍼류는 주춤

하이패션계가 선보인 과장된 어깨는 매스마켓에 재킷의 부활로 이어졌다. 올봄 여성복 시장에선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포멀 재킷이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자라 제공

현실에서 파워 숄더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올 봄 키(Key) 아이템은 단연 재킷이죠. 지난 몇 년간 야상점퍼, 항공점퍼 등 점퍼류가 대세였는데, 이번 시즌에는 어깨 패드가 들어간 포멀한 재킷이 인기를 얻고 있어요. 팬츠와 함께 입는 수트 스타일도 반응이 좋아요.” 신세계인터내셔날 여성복사업부 마케팅팀 김주현 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올봄 여성복 시장의 눈에 띄는 변화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재킷의 귀환이다. 어깨 패드가 들어간, 여유로운 핏의 재킷이 인기다. 남성복에 주로 사용되는 체크와 스트라이프 패턴, 재킷과 팬츠를 결합한 파워 수트 스타일도 대세다. 반대로 점퍼류의 판매는 주춤해졌다.

보브는 론칭 20주년을 맞아 시그니처 20 컬렉션으로 체크 패턴 재킷을 출시했는데, 한 달도 안 돼 완판을 기록했다. 럭키슈에뜨도 오버사이즈 재킷이 인기를 끈 가운데 하운드 투스 체크(hound tooth check∙사냥개의 이빨처럼 보이는 무늬) 재킷이 91% 판매율을 기록하는 등 재킷 판매가 늘었다. 스튜디오톰보이도 온라인 몰에서 판매되는 오버사이즈 재킷이 대부분 매진된 상태다.

그렇다면 실생활에서 어깨 패드가 들어간 오버사이즈 재킷이나 셔츠를 세련되게 입는 방법은 무엇일까? 커리어 우먼이라면 80~90년대 아르마니 수트처럼 재킷과 팬츠를 결합해 파워 수트 스타일로 연출해보자. 보다 캐주얼하게 연출하고 싶다면 허리를 벨트로 가늘게 조이거나 슬림한 팬츠를 함께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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