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어려울때 미륵불 모셔 국민의 눈물 닦아줄 것"

엄주엽 기자 2017. 4. 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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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광사 미륵보전 안에서 월도(오른쪽) 주지 스님과 신응수 대목장이 건축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호웅 기자

‘분당 대광사 미륵보전 낙성 佛事’ 월도 스님·신응수 대목장

지난 10일 낙성식을 가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광사 미륵보전(彌勒寶殿)은 동양 최대라는 규모와 함께 불사(佛事)의 과정과 건축사적 의미도 주목받는다. 미륵보전은 1층 면적이 661㎡(200평), 건물 높이는 33m로 외형은 3층이나 내부는 통층 구조다. 건물을 받치는 내부의 기둥들은 어른의 양팔로 안으면 두 번 반을 감쌀 지름이다. 안에 모셔진 미륵좌불상의 높이가 14.3m, 좌대까지 총 17m의 규모다. 단일 전각이나 미륵좌불로 모두 동양에서 가장 크다.

2003년 6월 기공식을 해 14년 만에 낙성했으며 그 준비는 더 오래다. 9년째 대광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월도 스님은 “1992년에 2대 종정인 대충 대종사께서 ‘1700년 역사에서 천태종이 큰 도량에 큰 부처님을 아직 모시지 못했다’며 원을 세우고, 신도시에서 터를 찾다가 이곳 불곡산(佛谷山) 자락을 정하셨다. 종정 스님은 이듬해 열반하셨지만, 후대들이 뜻을 받들어 1997년부터 도량 불사를 시작했으니, 20여 년이 지나 낙성된 셈”이라고 과정을 설명했다.

이 정도 대불사는 큰 시주자가 나오지 않으면 쉽지 않다. 미륵보전은 신도들의 십시일반 정성으로,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긴 호흡으로 지어져 불사의 의미가 더 각별하다. 역사적으로 이렇다 할 상속재산이 없는 천태종은 개인사찰이 없는 직영사찰 체제로, 종단과 사찰 운영이 신도 중심으로 이뤄진다. 금전출납을 신도들이 챙길 만큼 신도회 권한이 세고 그만큼 투명하며 신도들의 자발성이 높다. 월도 스님은 “이 같은 대불사가 쉽지 않은데, 신도들이 스님들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천태종의 시스템에서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삼는 천태종이 미래에 올 미륵불을 모신 것도 궁금하다. 월도 스님은 “천태종의 근본 사상을 담고 있는 소의경전(所依經典)인 법화경에 미륵불이 자주 나오고, 중국 천태종을 창시한 지자 대사는 ‘신창대불’ 미륵부처님 앞에서 열반했다”며 “나라 안팎으로 정치·경제적 어려움이 클 때 미륵대불을 모셔 시대의 눈물을 닦아주고 국민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어 의미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도편수로 건축을 총지휘한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인 신응수(75) 대목장(大木匠)은 “죽기 전에 마지막 역작으로 내세울 만큼 혼신을 다했다”고 말했다. 대목장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나무’를 고르는 안목. 신 대목장은 ‘나무와의 기(氣)싸움’을 말할 정도로 평생을 나무를 고르며 살았다. 그는 “백 년, 천 년을 가려면 좋은 목재를 써야 한다. 이번에 들어간 목재가 120만 재(才), 11t 트럭으로 240대 분량이다. 수령 400∼900년의 캐나다산 홍송을 사용했는데, 나무를 고르고 선적하느라 밴쿠버를 몇 차례 다녀왔다”고 말했다.

한국의 궁궐과 유명 사찰의 개·보수 및 건축 경험이 가장 많은 그가 신경을 썼던 부분 중 하나는 역시 ‘처마선’이다. “기둥과 대들보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고건축은 크기와 높이의 비례에 맞춰 처마선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건물의 생동감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목재가 서로 맞물려 내부의 균형을 유지하며 하중을 잡아 활주(기둥)의 도움 없이 무거운 처마의 선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사뿐히 들어 올리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이는 현대 건축의 기술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오랜 현장 경험이 좌우한다. 그는 “서까래에만 몇 개 사용했을 뿐 미륵보전 전체가 못을 사용하지 않고 연결돼 그대로 해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대목장은 “장인은 돈이 문제가 아니고 긍지와 자존심인데, 천태종에서 모든 걸 믿고 뒷받침해줘 대목장으로서 단양 구인사 조사전과 함께 대표작을 남기게 됐다”고 만족해했다.

전각과 미륵좌불의 어울림 또한 절묘하다. 불상은 청동 88t으로 주조한 후 150조각으로 나누어 내부에서 조립했다. 청동에 금박을 입히기 위해 3번의 옻칠을 했고 사방 11㎝ 금박 15만 장, 금가루 1.6㎏이 사용됐다. 연인원 2500명을 동원해 11년에 걸쳐 완성했다. 월도 스님은 “미륵보전을 근현대 최고의 건축물로 자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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