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 다리! 힘엔 자신 있어요"

김창금 2017. 4. 1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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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스타]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고교 3인방

승부욕 기술 갖춘 신세대 하키 스타
지난주 세계대회 우승으로 실력 입증
"평창올림픽 전부 아냐, 더 멀리 본다"

대표팀 막내지만 공수에서 중요 구실
백지선 총감독 "성장세에 흐뭇하다"
"학교서 알아보는 선생님이 생겼어요"

[한겨레]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고교 3인방’ 이은지(왼쪽부터)와 김희원, 엄수진이 8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대회 디비전 2 그룹 A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하키포토 제공

“평창올림픽이 끝이 아니에요.”(김희원)

“튼튼 다리! 힘엔 자신 있어요.”(엄수연)

“경기엔 집중, 수업 땐 에구구.”(이은지)

화창한 봄날 오후 셋이 깔깔거린다. 교복을 입은 모습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앳된 티까지 더한 천진한 얼굴. 사람이 계절이라면, 셋은 봄의 싱그러움을 대표한다. 하긴 셋은 특별한 존재다. 16살 최연소 나이로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다. 더욱이 국내에선 불모지인 여자 아이스하키의 신세대 주역이다. 힘과 기술, 디테일까지 이전과는 다르다. 초등학교 때부터 스틱을 잡은 본격적인 기술파 아이스하키 세대다.

11일 안양빙상장에서 고교 1학년 국대 3인방을 만났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세계대회 여자 디비전 2 그룹 A 5연승을 일군 직후라 피곤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간 대표팀 소집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 모처럼 휴가(?)를 얻은 대표팀 공격수 김희원(안양 백영고)은 “소집 기간엔 수업 다 마치고 저녁에 훈련해 녹초가 되기 일쑤다. 요즘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했다. 옆에 있던 은지(일산 백석고)가 거든다. “밤 훈련하고 집에 와서 과제물하고 다음날 학교 가면 너무 졸려요. 경기 때는 집중하고 또 집중하는데, 수업 시간엔 왜 집중이 안 되죠?” 그 말에 수연(분당 대진고)이가 한마디 한다. “집중력을 다 써버려서 남아 있지 않은 거야. 잉잉~”

셋은 공부도 잘하지만 운동에 더 천재성이 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의 연령제한 규정 때문에 대표팀에 늦게 합류했을 뿐, 중학 때부터 펄펄 날았다. 1m70의 희원이는 움직임이 시원시원하고 화려하다. 체격도 있고 나이답지 않게 유연한 스케이팅으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준다. 1m58의 수비수 수연이는 힘이 장사다. 어려서부터 남자아이들과 아이스하키를 하면서 절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들이 떨어져 나갔다. 1m58의 공격수 은지는 슛 감각이 뛰어나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다. 지난주 세계대회에서는 희원(2골), 수연(1골), 은지(2골)가 모두 골을 잡아냈고, 한 번씩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상대 선수가 벌칙을 받아 2분간 퇴장당하면 수적 우위의 파워 플레이 상황이 된다. 이때 팀 최고의 선수들이 나가 득점을 하는데, 셋은 자주 파워 플레이에 단골 호출된다. 캐나다 출신 새러 머리 대표팀 감독의 신뢰를 읽을 수 있다.

희원과 은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하키를 시작했고, 수연은 7살 때부터 얼음판에서 놀았다. “처음에는 스틱도 잡을 수 없어, 의자를 붙잡고 스케이팅을 배웠어요.” 빙판 위에서 순식간에 180도 방향전환을 하고, 앞뒤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들도 처음엔 젬병이었다. 다만 타고난 승부기질과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의 결합에 의해 급성장했다. 양승준 2018 평창겨울올림픽 아이스하키 준비기획단장은 “초등학교 때는 방학 캠프를 통해서, 중학교 때는 태릉선수촌 대표팀 소집훈련에 합류시켜 훈련을 시켰다. 체계적인 교육 세례를 받은 첫 세대”라고 했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고교 3인방’인 엄수연(왼쪽부터)과 김희원, 이은지가 11일 안양빙상장에서 교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하키포토 제공

2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겨울아시안게임은 데뷔 무대였다. 셋은 일제히 “떨렸다”고 했다. 당시 한국은 0-3으로 졌다. 수연은 “일본이 기술적으로 우리보다 나았다. 스피드와 섬세함, 개개인의 능력, 전술에서의 차이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주눅 들지 않는다. 저마다 마음 속엔 ‘설욕’의 옹이를 새겼다. 셋은 “내년 평창에서 일본과 우리나라가 같은 조다. 그때는 이기고 싶다”고 했다. 지난주 강릉에서 열린 세계대회에서 우승해 디비전 1로 승격한 것은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과거엔 한국을 압도한 북한과의 맞대결 승리(3-0)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왜소해 보였지만 부딪히면 단단했다.”(희원) “힘이 센듯한데 안 센 것 같았다.”(수연) “우리랑 비슷하다고 느꼈다.”(은지)

셋은 아직도 진화 중이다. 희원은 “앞을 보면서 하는 플레이”를, 수연은 “정확한 타이밍에 패스하는 것”을, 은지는 “좀 더 탄탄한 슈팅과 패스의 기본기”를 개인적인 과제로 설정했다. 대표팀의 머리 감독은 ‘안정된 수비’와 ‘즐거운 경기'를 강조한다. 생애 유일한 경기를 후회 없이 하라는 뜻이다. 총감독인 백지선 남자대표팀 사령탑도 수시로 선수들을 만나 “너희가 최고”라며 격려한다. “대표팀의 언니들도 맛있는 것 사주고, 귀여워 해주고, 많이 챙겨줘 가족 같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고교 3인방'인 김희원(왼쪽부터)과 이은지, 엄수연이 11일 안양빙상장 밖 공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계대회 우승을 하니 “교장 선생님이 불러 칭찬하고”(희원) “체육 선생님과 친구들이 알아봐 줘”(수연, 은지) 조금이나마 유명세를 누렸다. 하지만 승부사들의 마음에 만족은 없다. 셋은 “이제 디비전1에 올랐다. 이젠 더 노력해서 톱 디비전에 들어야 한다. 평창도 전부가 아니어서 그다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스하키 팬들이 많은 일본을 부러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아이스하키 경기에 많이 와 박수 쳐주면 정말 힘 날 것 같아요. 경기장에 아주 많이 와 주세요.” 깜찍하고 당당한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의 바람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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