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쉬핑 벌크선 스텔라데이지는 왜 침몰했을까

조지원 기자 2017. 4. 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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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1일 오후 11시(현지시각)쯤 브라질 산토스에서 남동쪽으로 2500km 지점에 있는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폴라리스쉬핑 소속 벌크선 ‘스텔라데이지(Stella Daisy)’호가 운항 중 침몰했다. 배에는 한국인 8명과 필리핀인 16명 등 2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폴라리스쉬핑 스텔라데이지 /마린트래픽 홈페이지

브라질 구아이바(Guaiba)에서 철광석을 실은 스텔라데이지는 중국 칭다오로 항해하는 도중 선박 2번 포트에서 침수 후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본사에 메신저로 알린 뒤 연락이 끊겼다. 이후 인근을 지나던 선박이 구명벌(Life Raft)에 타고 있던 필리핀인 2명을 구조했고, 나머지 선원들은 실종 상태다.

외교부는 브라질 정부에 요청해 실종 선원 수색‧구조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사고 발생 6일이 지난 이날까지 실종자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정부는 5차 수색까지 나섰지만,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 브라질 공군 소속 P-3 초계기와 폴라리스쉬핑의 ‘스텔라코스모호’ 등 선박들이 수색‧구조 작업 중이고, 이날 미국 P-8 초계기도 수색에 나설 예정이다.

생존 선원의 증언에 따르면 선체 5번 홀드에 ‘크랙(균열)’이 생기면서 침수가 시작됐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선장이 선사에 보고했던 내용과 생존 선원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선박 왼쪽 외판에 구멍이 생겨 물이 들어오면서 배가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길이 312m, 폭 58m의 스텔라데이지는 침수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벌크선은 무거운 화물을 싣고 있기 때문에 침몰 속도가 빠르다. 사고 당일 기상 상황은 일반적인 해풍 수준이었으며, 조류는 평소보다 센 편이었다. 사고 지역의 수심은 3000m 정도이기 때문에 암초와 충돌했을 가능성은 낮다. 기상 악화나 외부 충격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사고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선박 노후화‧개조불량‧화물적재불량 등 다양한 원인 거론

① 건조 25년 된 스텔라데이지…선박 연령 높을수록 결함 많이 발생해

조선일보DB

가장 먼저 거론되는 사고 원인은 선박 노후화다. 1992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에서 유조선으로 건조된 스텔라데이지의 선령은 25년이다. 이후 2009년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됐다. 선박 노후화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없지만, 조선‧해운업계에서는 선령 15년 이상이면 노후 선박으로 보고 있다.

선박이 오래된 만큼 부식이나 피로 손상에 따라 구조물 강도가 약해진 상태에서 항해 도중 선체에 구멍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막대 양 끝을 잡고 움직이면 가운데 부분에 힘이 가해지듯이 항해 중인 선박 외판에는 지속적으로 힘이 가해지기 때문에 약해진 부분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이다.

관리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선박은 노후화될수록 안전에 취약해진다. 해양수산부는 외국 선박이 국내 항만으로 입항하면 선박 상태를 점검해 결함을 지적하거나 출항까지 정지하는 항만국통제검사(Port State Control·PSC)를 실시한다. 지난해 PSC 조사 결과 선령 30년 이상 선박의 출항정지율은 8.3%, 20~30년 선박의 출항정지율은 4.1%로 나타났다. 반면 5년 미만 선박은 0%, 5~10년 선박은 1.3%, 10~20년 선박은 2.8%의 출항정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선박이 오래될수록 안전관리체제, 항해안전, 구명설비, 선체구조안전 등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선박 노후화와 출항정지율 사이에 일정 상관관계가 있지만, 일률적으로 고령 선박은 반드시 사고로 직결된다고 할 수 없다”라며 “오래된 선박이라도 관리가 잘 된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선박에서 생활하는 기관사들은 오래된 선박을 타면 잔고장이 많아 운항하는 내내 쉬지 않고 수리해야 하기 때문에 선령 20년이 넘는 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스텔라데이지 역시 냉각팬 고장으로 담당자가 48시간 동안 잠도 못 자고 수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후 선박에 여러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의 임시방편에만 기대서 운항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면 선사의 안전 불감증이 지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사와 일부 전문가들은 선박 노후화를 사고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선박 검사를 진행하는 한국선급 관계자는 “오래된 선박일수록 훨씬 더 꼼꼼하게 검사하기 때문에 노후화로 인한 사고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선급은 지난해 8월 12일 영국선급과 동일한 기준으로 스텔라데이지에 대한 연례검사를 실시해 일부 결함을 지적했고, 선사 측이 이를 보완하자 통과시켰다.

스텔라데이지 실종 선원 수색 작업에 참여한 상선 직원이 망원경으로 바다를 살펴보고 있는 사진을 폴라리스쉬핑이 공개했다. /연합뉴스

해운업계 관계자는 “스텔라데이지가 선급에서 진행한 선박 검사를 통과했다고 하지만, 선체를 구성하는 모든 강판에 대해 두께를 계측한 것도 아니고 재질 검사도 전수 조사한 것이 아닐 것”이라며 “규정대로 했다고 책임을 피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과 교수는 “한국선급에 대한 불신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노후화나 선박 개조에서 원인을 찾는 것도 일리는 있지만,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② 중국 조선소서 선박 개조‧수리하는 과정에서 불량 발생했을 수도

스텔라데이지는 유조선으로 건조됐다가 2009년 중국 저우산(Zhoushan) 조선소에서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된 선박이다. 2002년 유조선 프레스티지호 사고로 유출된 기름에 심각한 환경오염이 발생한 이후 국제해사기구(IMO)는 단일선체 유조선 운항을 금지하고, 이중선체 유조선을 의무화했다. 이중선체는 선체 하부와 측면의 강판을 두 겹으로 만든 것으로 외판이 파손됐을 때 액체 화물이 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단일선체로 건조된 스텔라데이지는 IMO 규제로 시장에서 퇴출됐고, 폴라리스쉬핑이 이를 싼 값에 사들여 중국 조선소에서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한 것이다. 화물선의 경우 반드시 이중선체여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IMO가 내놓은 ‘벌크선 선체손상 및 퇴선 필요성 조기 판단에 대한 지침서’에 따르면 단일선체 벌크선의 경우 종강재와 횡강재가 만나는 지점과 같이 구조물 변화가 발생하는 지점인 벌크헤드, 트러스트, 발라스트 탱크 등 힘이 집중되는 곳에서 찾기 어려운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스텔라데이지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개조 공사 과정에서 고품질이 아닌 중국 철판을 썼거나 부족한 용접 기술로 취약했던 부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용접으로 붙은 지점은 다른 철판보다 더 빠르게 녹이 슬기 때문에 접합부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텔라데이지와 비슷한 시기에 유조선으로 건조된 뒤 개조를 통해 철광석 운반선이 된 ‘스텔라유니콘’호에도 최근 선체 균열이 발생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박 노후화와 개조 불량이 사고 원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스텔라유니콘은 스텔라데이지 사고 직후인 지난 2일 남대서양을 항해하던 중 선체 균열을 발견하고 수리를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인근으로 긴급 대피했다.

2004년 설립된 폴라리스쉬핑은 IMO 규제로 더 이상 항해할 수 없는 단일선체 유조선을 싸게 사들여 벌크선으로 개조해 선박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퇴역 유조선을 벌크선으로 개조하는 방식에 대해 세계 여러 선급이나 IMO가 단순 벌크선보다 ‘종(縱)강도’가 강하다고 평가했던 만큼 선박 개조가 사고 원인이라고 단정 짓긴 어려운 상황이다.

③ 화물 적재 불량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도

선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화물 적재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적재중량 26만6000톤인 스텔라데이지는 사고 당시 26만톤 규모의 철광석을 싣고 있었다. 철광석은 무겁기 때문에 선내 여러 화물창에 나눠 적재한다. 이 때 철광석이 있는 화물창과 비어 있는 화물창 사이 무게 불균형으로 인한 전단응력(Shearing Stress)이 발생해 선체 외판에 균열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2011년 9월 STX조선해양에서 건조된 ‘발레베이징’호는 같은 해 12월 브라질에서 철광석을 싣다가 발라스트 탱크 쪽에서 균열이 발견돼 긴급수리를 한 적 있다. 균열이 생긴 원인으로는 잘못된 적재 방식이 거론됐다. 철광석 등 무거운 화물은 배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적재 방식이 정해져 있다. ‘발레베이징’은 신조선이라도 화물을 제대로 싣지 못하면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화물을 어떻게 적재했는지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3일 폴라리스쉬핑 부산 해사본부에서 스텔라데이지 선원 가족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해운 전문지 로이드리스트 등 외신에서는 철광석의 액상화(Liquefaction)를 사고 원인으로 집중 거론하고 있다. 수분이 함유된 철광석이 화물창 내에서 액체처럼 변해 한 쪽으로 쏠릴 경우 배가 복원력을 잃고 전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철광석은 수분 함량이 높을 경우 항해 중 액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

2011년 11월 12일 말레이시아 페닝에서 철광석 1만7000톤을 싣고 중국 산둥으로 항해하던 ‘브라이트루비’호가 남중국해에서 갑자기 침몰했는데, 사고 원인이 액상화로 결론 났다. 폴라리스쉬핑 관계자는 “철광석에서 수분이 나올 경우 선박 바닥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물이 찰 수 없다”며 “액상화는 내부 조사 과정에서 사고 원인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 사고 원인 규명 불투명…해수부 해양안전심판원은 아직 자체 조사 계획 없어

스텔라데이지의 사고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일은 상당 시간이 걸리거나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스텔라데이지와 같은 조선소에서 건조됐다가 2013년 인도양에서 두 동강난 사고를 겪은 ‘MOL 컴포트(COMFORT)’호의 경우 1년 만에 사고 원인 조사가 완료됐지만, 이는 극히 이례적으로 빠른 경우다. 스텔라데이지 침몰 지역 수심이 3000m로 깊기 때문에 인양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인현 고려대 교수는 “선박 수리내역, 선적 자료, 출항시 화물 배치도, 침몰 정황 등 여러 자료를 수집해 사고 원인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작업이 해양안전심판원 등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해양사고에 대한 조사와 심판을 통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해양수산부 소속기관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경우 우리 영해가 아닌 남대서양 인근에서 일어났고, 사고 선박인 스텔라데이지의 선적이 마셜제도인 만큼 해양안전심판원이 바로 조사에 착수할 수 없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국제연합(UN) 협약, 국제해사기구(IMO) 규정에 따르면 선적국에서 사고 원인을 조사하게 돼 있다”며 “아직 해양안전심판원 자체 조사 계획은 없지만 우리나라 선원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당사국으로서 조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침몰사고 원인규명이 불투명해지면서 실종자 가족이 실의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이번 사고 선박과 같은 유조선 개조 노후 선박에 타고 있는 선원과 선원 가족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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