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감방전용TV채널 '보라미방송' 편성표 구해보니

한경진 기자 2017. 4. 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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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수감자 나눠 사동별로 다른 편성
평일에는 7시 KBS 뉴스 생방송으로 보여줘

오늘(4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수감된 지 닷새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1일 새벽부터 서울구치소 여성사동 1층 가장 끝방인 22호실(10.6m²·3.2평)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가 수감된 22호실에는 22인치 벽걸이형 LCD TV가 달려있다고 한다. 이 TV에선 법무부 교화방송인 ‘보라미방송’이 나온다. 보라미방송은 구치소와 교도소 전용이다.

본지는 법무부에 요청, 열흘치 보라미방송 편성 계획표(3월31일~4월9일)를 구해 어떤 프로그램이 나오는지 살펴봤다.

서울구치소 22호실 안에는 22인치 벽걸이형 LCD TV(그래픽)가 붙어있다. 이 텔레비전에서는 법무부 교화방송인 '보라미방송'이 나온다. /한경진 기자

TV 프로그램, ‘성별’에 따라 다르게 편성

보라미방송은 ‘형집행법’(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48조에 따라 “수용자의 정서안정·교양습득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다. 방송프로그램은 ▲교육 ▲교화 ▲교양 ▲오락 ▲수용자정서안정 콘텐츠로 편성한다. ‘폭력·음란물’과 ‘특정종교 찬양·비방물’ ‘수용자 정서안정 및 질서 유해물’은 제외다.

법무부 예규(수용자 교육교화 운영지침)에 따르면, 방송 편성표는 남성과 여성 수용자가 다르다. 즉 같은 ‘서울구치소’에 있어도 김기춘(男)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女)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시청하는 TV가 다르다. 초·중등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수용자를 위한 교육 채널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주말은 똑같지만, 평일에는 남자·여자별로 프로그램을 다르게 제공한다”며 “남녀 취향 차이를 반영해 여성 수용자에겐 좀 더 문화적이고 부드러운 프로그램을 방송한다”고 말했다.

아직 구치소에 머무르고 있는 ‘미결 수용자’는 평일엔 ①오전 9시25분~오전 11시 ②오후 2시~오후4시 ③오후 5시25분~오후 9시 등 세 타임에 걸쳐 7시간 정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게되면 ‘평일 아침·낮’의 꿀 같은 TV 시청 찬스는 사라진다. 주말은 모든 수용자가 ①오전 9시~오후5시 ②오후 5시30분~오후9시까지 11시간30분에 걸쳐 TV를 볼 수 있다. 보라미방송에선 오로지 저녁 뉴스만 ‘생방송’이다. 나머지 프로그램은 짧게는 1~2주에서 이미 한달여 전에 지상파 채널에서 방송된 것들이다.

朴수감 첫날…‘물은 생명이다’에서 ‘1박2일’ ‘역적’까지

법무부 교화방송인 '보라미방송'의 지난 3월 31일 편성표. /법무부 제공

박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첫날 아침 TV를 켰다면, 가장 처음 본 프로그램은 오전 9시33분 SBS 다큐멘터리 ‘물은 생명이다’(3월 26일분)이었을 것이다. 이후 오전 내내 보라미방송에선 EBS ‘글로벌나눔’, ‘한국기행’, ‘지식채널’이 방영됐고, 오후 2~4시까지도 EBS ‘달라졌어요’ MBC ‘문화사색’이 전파를 탔다. 교양이 상당히 짙게 묻어난다.

드라마·예능을 선호하는 일반적인 TV 시청자라면, 이런 식의 방송 흐름은 몹시 절망스러운 편성이다. 거듭된 교양물을 접하면서 결국 이곳은 구치소이며, 본 채널은 ‘교화방송’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절감할 만하다.

하지만 이날 보라미방송은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오후 5시30분부터 흥미진진해졌다. KBS ‘1박2일’(3월 5일분)을 시작으로, KBS 생방송 ‘7시 뉴스’가 세상 소식을 전해줬고, 오후 7시45분에는 MBC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10회분이 나왔다. 역적의 황진영 작가가 이걸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3일 방송된 19회에선 극중 ‘변사또’가 이런 대사를 쳤다. “내가 이러려고 사또가 됐나, 자괴감이 든다.” 19회분도 몇 주 뒤면 보라미방송 전파를 탈 것이다.

주말에는 음악·예능프로그램 풍성

법무부 교화방송인 '보라미방송'의 지난 4월 1일 편성표. /법무부 제공

1일 토요일엔 KBS ‘동물의 세계’를 잠깐 방송한 뒤 오전 9시40분부터 음악 경연 프로그램인 KBS ‘불후의 명곡’을 틀어줬다. 낮 12시15분엔 KBS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43·44회분이 연속 방영됐다. 오후 3시20분엔 KBS ‘콘서트 7080’, 오후 5시40분엔 KBS ‘연예가 중계’, 오후 6시부턴 영화 ‘얼리전트’가 나왔다.

법무부 교화방송인 '보라미방송'의 지난 4월 2일 편성표. /법무부 제공

2일 일요일에는 KBS ‘영상앨범 산’을 시작으로 오전 9시29분 SBS ‘정글의 법칙’(3월 17일 방송분)이 나왔고, 오전 11시40분에는 KBS ‘전국노래자랑-충남 서산시편’이 방송됐다. ‘짜파게티’ 못지않은 ‘일요일의 대명사’인 핵심 프로그램을 전면 배치한 것이다. 낮 12시50분에는 MBC ‘복면가왕’이 2회 연속(3월 12일·19일)으로 방송됐다.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오후 5시10분)·‘개그콘서트’(오후 6시30분)도 틀어줬다.

이날 오후 5시7분부터 3분간 나온 공익광고를 박 전 대통령이 봤다면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대표적 공약이었던 ‘4대악 근절’에 관한 공익광고였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학교폭력·불량식품·가정폭력·성폭력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뿌리뽑겠다고 선언했었다.

'폭력 대신 행복을 캐스팅해달라'는 법무부 제작 4대악 근절 캠페인 공익광고. 박 전 대통령은 요즘 재판에 대비해 새 변호인을 캐스팅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캡쳐
법무부 교화방송인 '보라미방송'의 오늘자(4월 4일) 편성표. /법무부 제공

4월 첫째주, 드라마·예능은 몇 편?

이달 3일부터 9일까지 보라미방송의 여자 수용자 편성표 중에 교양·다큐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나면, 드라마는 5편이고, 예능은 13편, 영화가 1편이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법무부 교화방송인 '보라미방송'의 일주일치 방송 편성표를 살펴보니, 예능 계열이 13편, 드라마 및 영화가 6편이었다. /한경진 기자

뉴스는 평일엔 KBS 7시 뉴스, 토요일엔 MBC 뉴스데스크, 일요일은 SBS 8시 뉴스를 모두 생방송으로 틀어준다. 보라미방송엔 종편 및 케이블 프로그램은 편성되지 않는다. 방송 종료 직전에는 대개 ‘외국어 회화’(영어·일본어·중국어) 20분이다. 수용자들의 언어능력은 물론 수면을 돕기 위한 법무부 측의 배려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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