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ATM 사업 추진 과정서 롯데기공 지원 '끼워넣기' 지시"

롯데그룹 정책본부가 자동입출금기(ATM)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끼워넣기'를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장영환 전 롯데피에스넷 대표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김상동 부장판사) 심리로 27일 열린 신동빈 회장 등 4명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 같은 취지로 진술했다. 장 전 대표는 케이아이뱅크 대표로, 롯데의 ATM 관련 사업에 관여한 인물이다.

증언에 따르면 장 전 대표는 2008년 10월 신 회장에게 롯데피에스넷 경영현황을 보고했다. 장 전 대표는 "보고 당시 신 회장이 '롯데기공의 사업이 어렵다'며 '롯데기공에서 ATM을 만들 수 없느냐'고 질문했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동석했던 김모 재무이사는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고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여서 실익이 없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검찰에 따르면 황각규 당시 정책본부 국제실장(현 경영혁신실장)은 보고가 끝난 뒤 이들을 그룹 정책본부 국제실로 불러 다시 한번 '롯데기공을 도와주라'고 지시했다. 장 전 대표는 검찰이 "황 실장이 롯데기공을 도와주라고 한 것은 제작능력이 없는 롯데기공을 '끼워 넣으라'는 취지가 맞느냐"고 묻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주차설비.자판기 제조업체인 롯데기공은 2008년 채권 회수가 지연되면서 부채가 급증하고 이듬해 1월 채권금융기관협의회로부터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되는 등 롯데알미늄에 인수되기 전까지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장 전 대표는 이런 지시에 직접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회의를 마친 뒤 김 이사에게 '명분도 없이 롯데기공을 거래 중간에 끼워 넣을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2~3일 뒤에는 김 이사와 롯데기공 측이 장 전 대표를 만나 다시 '롯데기공에서 4억원을 우선 지급할 테니 ATM 한 대당 20만~30만 원을 가져가겠다'고 제안했고 장 전 대표는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장 전 대표는 검찰이 "처음에 '끼워 넣기 거래'를 반대했다가 제안을 승낙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롯데 측에서 사업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제안을 거절하기 쉽지 않았다는 취지다. 장 전 대표는 롯데기공 측이 ATM 제작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 등은 2009년 9월~2012년 5월까지 ATM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업무 없이 롯데기공을 사업에 끼워 넣어 총 39억3000여만 원의 이득을 준 혐의로 기소됐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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