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중고나라 작문의 이론과 실제
키 크는 운동기구라고 불리는 애물단지를 드디어 인터넷 장터 중고나라에서 팔았다. 이 기계는 오랫동안 거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보는 사람 속을 끓이는 효과만 냈다. 아내가 진작 팔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일단 중고나라에서 이 기계가 팔린 경우와 팔리지 않은 경우를 분석했다. 팔린 경우는 두 가지였다. 아주 새것이거나, 아주 싼 값에 내놓았거나. 팔리지 않은 경우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판매자가 쓴 문구에 불필요한 내용이 너무 많다는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운동기구에 대한 설명이 너무 장황한 경우다. "우리 아이가 몇 살 때 이 기계로 운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귀찮고 힘들어서 하기 싫어하더니 점점 재미를 붙여 이 운동을 하지 않고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할 정도였고, 너무 운동을 열심히 하는 바람에 또래보다 키가 너무 커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될 지경이었으며…" 하는 식으로 길고도 세세하다. 이 운동기구를 검색해 중고나라에 들어온 사람은 이미 이 기계에 대한 평판과 소문을 다 알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시콜콜 늘어놓으며 그래서 얼마에 팔 것인지 한참 읽어야 알 수 있는 경우도 거의 팔리지 않았다. 또 이런 경우는 시세보다 높은 값에 내놓았을 확률이 높다. 가격에 자신이 없으니 판매문구 맨 뒤로 밀려난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물건에 대한 애정 표현이 너무 심한 경우도 잘 팔리지 않았다. "사실 이 물건을 팔 생각이 없었는데"로 시작해 "갑자기 이사를 가야 해서"로 끝나면 "새집까지 끌고 가기는 싫어서"이고 "아이가 다 커서"로 끝나면 "효과가 전혀 없어서"라는 뜻으로 읽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우리가 잘 썼으니 다른 분들에게도 저렴하게 권해 드리고 싶어서"라고 쓰는 경우도 보였는데, 판매자에겐 그런 선의(善意)가 애초 없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딱 세 문장을 쓰고 사진 2장과 함께 올렸다. 불과 10분 만에 사겠다는 연락이 왔고, 2시간 만에 거실에서 밉상 기계를 치울 수 있었다. 똑같은 가격에 올린 다른 사람들이 수두룩한데도 말이다. 중고나라 글쓰기 특강이라도 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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