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미나-뱀뱀 스캔들, 그리고 일본 서브컬쳐계 '비처녀 논란'

문현웅 기자 2017. 3. 1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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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미나(왼쪽)와 갓세븐 뱀뱀이 찍은 문제의 사진./인터넷 캡쳐

지난 12일, 걸그룹 트와이스(TWICE) 멤버 미나와 보이그룹 갓세븐(GOT7) 멤버 뱀뱀이 함께 찍은 셀카가 모종의 경로로 유출됐다.

/인터넷 캡쳐

그리고 팬덤은 뒤집어졌다. 일부에서 사진 촬영장소로 ‘침대’를 지목하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한층 더 아프게 했다. 훼손당한 순정에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이가 있고, 그간 사들인 트와이스 굿즈(관련 상품)에서 미나를 지우거나 파낸 후 인증샷을 올리는 팬까지 나타났다.

걸그룹 트와이스 팬이 '미나-뱀뱀 열애설' 파문 후 트와이스 관련 상품에서 미나 얼굴을 훼손해 인증한 사진./인터넷 캡쳐

평생 가도 옷깃 한 번 스칠 일 없는 연예인이 열애를 하건, 육아를 하건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충격에 인생이 덜렁거릴 만큼 중대한 문제다. 어쨌거나 자신이 마음 준 상대를 제 3자가 채 간다는 건 아픈 일임이 분명하다. 언젠간 남에게 뺏길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상대라도. 며느리 질투하는 시어머니가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지 않을까 싶다.

연예인이나 캐릭터에게 과할 정도로 애정을 쏟는 게 흔한 서브컬쳐 바닥에서, 이런 소란은 의외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심지어 바다 건너 열도에선 종잇장에 얹힌 2D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성우를 두고도 이런 난리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그것도 우리보다 몇 단계는 더 맛 간 형태로. 이른바 ‘비처녀 논란’이라 불리는 소동이다.

일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인터넷 캡쳐

지난 2004년 8월, 한 일본 네티즌이 그달 출시된 에로게임 ‘하급생2’를 둘로 쪼갠 인증사진을 탄원서와 함께 인터넷에 올린다. 내용인즉슨, 주인공의 소꿉친구로 나오는 메인 캐릭터 사이몬 타마키(柴門 たまき)가 알고 보니 의대생인 전 남자친구와 갈 데까지 간 사이였다는 데에 분노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 얘기는 물론, 앞으로 나오는 썰 모두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 게임 속 캐릭터에 관한 거다.

아무튼 이 사진을 올린 네티즌뿐 아니라, 당대 게이머 다수가 한창 여주인공과 스윗스윗한 플레이를 하던 도중 ‘사실 나 전남친이랑 성경험 있음’이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부서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연애 잘하다 여자친구를 뺏긴 ‘전 남자친구’ 쪽이 훨씬 억울하고 할 말도 더 많겠지만, 이미 남자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한 게이머에겐 그런 사정 따윈 눈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오래지 않아 게임 값이 반으로 폭락했고, 게임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 등 2차 상품도 모조리 흥행 참패했다. 이를 기점으로 게임 제작사인 ‘엘프(Elf)’의 사세가 기울었다는 설도 있다.

여담이지만, 이 사건이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쳐 팬덤계에서 숱하게 벌이는 ‘상품파괴인증’의 시초라 한다.

만화 캐릭터도 예외일 순 없다

일본 현지 '칸나기' 팬이 나기 비처녀 논란 이후 소장하던 칸나기 만화 1~5권을 찢고 인증한 사진./인터넷 캡쳐

2008년에는 만화 쪽에서 비처녀 논란이 터졌다. 신목(神木)으로 만든 조각상에서 태어난 토지신 나기와, 그 조각상을 만든 미쿠리야 진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만화 ‘칸나기(かんなぎ)’에서다.

/인터넷 캡쳐

36화쯤이었던가, 남자 주인공 진이 여주인공 나기에게 고백을 하려던 차에 갑자기 ‘오즈마’라는 새 캐릭터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여주인공의 동생 격인 캐릭터가 오즈마를 가리키며 ‘언니 남자친구인데 잊고 있던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 장면이 과거 연재분에 스치듯 나왔던 한 장면과 연결되며 대란이 벌어진다.

문제의 칸나기 16화 임신장면./인터넷 캡쳐

즉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사랑 고백을 받기도 전에, 이미 옛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고 임신까지 했다는 의혹이 터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만화 소개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이 만화의 기본 구도는 ‘피그말리온 설화’다. 독자들은 자연히 피그말리온처럼 남자 주인공이 조각상과 연을 맺고 행복하게 살리란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게다. 그리고 그 꿈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당시 이 만화 팬들은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다. 여주인공 나기에게 ‘중고(中古)’라는 멸칭까지 붙였을 정도다.

나기 비처녀 논란 이후 한 일본 팬이 그린 그림. '중고지만 살아있단다, 신이란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인터넷 캡쳐

때마침 만화가가 논란이 된 파트를 그린 직후, 건강상 문제를 이유로 무려 1년 넘게 연재를 중단해 버리며 사태가 더 꼬였다. 팬덤 사이에서는 도저히 상황 수습이 안 되니 작가가 도망가 버렸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서두 사진에 나온, 팬이 ‘칸나기’ 만화책 1~5권을 찢어발긴 걸 인증한 때도 이 시기다.

여하간 이에 대한 해명은 53~54화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진다. 사실 오즈마는 나기의 호위 무사였을 뿐인데, 이 둘이 항상 같이 다니자 주변인들이 연인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리고 소문이 너무 퍼져 동생격인 캐릭터까지 이를 믿게 됐다는 설정이다. 임신 암시 장면은 작가 차원에선 명확한 해명이 없었지만, 일부 팬이 ‘여주인공이 만물의 어머니 격인 토지신이니, 이 모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린 것일 뿐이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한다.

하여튼 오타쿠 천국인 그 일본에서도 꽤나 어이없었다는 평가를 받은 사건이다. ‘칸나기’ 애니메이션 감독 야마모토 유타카가 “2차원 여성까지 처녀여야 한다는 건 대체 무슨 종교냐”고 내뱉었을 정도다.

하다 하다 성우까지

심지어 캐릭터를 목소리로 연기하는 성우(聲優)가 연애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핍박하는 일까지 있었다. 지난 2010년 8월 성우 히라노 아야(平野 綾)가 일본 후지TV 예능 프로그램 ‘구탄누보’에서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자, 일부 팬들이 “세상이 끝났다” “비처녀 목소리를 듣다니 귀를 강간당한 느낌이다”며 발광을 한 것이다. 물론 애꿎은 성우 관련 상품도 적잖이 박살났다.

히라노 아야 구탄누보 발언 이후 상품파괴인증을 한 일본 팬./인터넷 캡쳐

이쯤되자 일본 사회 전반에서 이런 극렬 오타쿠를 비난하는 여론이 일었다. 아무리 팬이라도 성우나 연예인의 연애나 성관계를 막을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혼자 실망하는 수준을 넘어, 사생활을 비난하거나 인격을 모욕하는 지경에 이르면 명백한 인권 침해다. 여하간 그때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일본의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요미우리 신문 4컷 만화에서 히라노 아야 관련 소동을 다룰 지경이었다. 아빠가 히라노 아야가 연애 경험이 있다는 보도에 실망하자, 가족들이 이를 보고 황당해하는 내용이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올라온 히라노 아야 사태 관련 4컷 만화./인터넷 캡쳐

연예인도 사람이야 사람

여하간 이번 사태로 미나와 뱀뱀 팬들이 적잖이 실망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팬의 소유물이 아니다. 진정 팬이라면, 그들이 어떤 길을 걷건 자유로이 두고 곁에서 응원해 주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상심이 크더라도 마음을 잘 다스리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자.

물론 아직은 이들 팬덤 쪽에서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소동을 벌이는 것 같진 않지만. 앞서 늘어놓은 일본의 선례를 보고 노파심에 하는 소리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아주 없던 것도 아니고.

참고로 역으로 미나와 뱀뱀 팬덤을 조롱하는 인터넷 찌질이도 있지만, 이쪽은 트와이스와 갓세븐 소속사인 JYP에서 잘 대처하는 듯하니 이들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겠다.

이번 '미나-뱀뱀'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이들을 모욕하는 악성 게시글을 올리다 JYP가 대응에 나서자 사과문을 올린 한 네티즌./인터넷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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