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피한여행-동양의 하와이 오키나와 케라마 제도
일본의 최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일본인들이 1년 365일 휴양을 위해 찾는 곳이다. 겨울에도 연평균 기온이 섭씨 16도가 넘기 때문에 ‘동양의 하와이’라고도 불리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푸른 산호초, 많은 바다생물을 볼 수 있는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 케라마 제도 때문이다.
오키나와에 가서 다이빙을 안하고 돌아온다는 것은 부산이나 제주에 가서 회를 생략하고 오는 것과 같다. 인천공항에서 오키나와 나하공항까지의 비행은 약 2시간 30분. 오키나와의 주도인 나하시는 섬의 서해안에 위치해 있고, 본섬에서 서쪽으로 약 40km,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케라마 제도(Kerama Islands)는 2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군도로 지난 2014년, 27년 만에 국립공원으로 선정됐다. 케라마 제도는 자마미촌과 도카시키촌으로 나누어져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해양 국립공원인 만큼 흑고래, 고래상어, 가오리, 돌고래 등이 서식하고 있다. 고래 번식 지역이라는 것이 국립 공원 선정의 이유. 혹등고래가 구애, 출산, 육아를 위해 케라마 제도로 오는 매년 1월부터 3월이면 오키나와의 바다는 북적북적해진다. 케라마 제도의 중심섬인 자마미섬은 많은 다이빙 포인트가 있는데 12월~4월은 고래투어로 유명하다. 자마미섬 고래워칭협회의 투어 상품은, 전망대에 오른 스태프가 고래떼를 발견해 보트와 연락을 취하는 방식이라 고래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운이 좋으면 굳이 고래 투어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본섬에서 케라마에 당일치기 다이빙 투어로 오가는 배에서 고래를 목격하기도 하다. 대만과 가까운 이시가키섬에서는 쥐가오리(만타)가 자주 출몰하며, 요나구니섬에서는 바닷속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다이빙 일행이 목표로 한 곳은 케라마 제도 중 자마미섬. 그곳에는 드래곤레이디와 토우마 등 두 곳의 다이빙 포인트가 있다. 파도가 높아 접근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지만 결국 보트는 출발했다. 나하섬과 케라마 제도는 잔잔했지만 가는 길의 파도의 높이가 3m, 한국에서라면 배가 뜨지 않았을 날씨다. 배를 집어삼킬 듯한 파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다이버 일행들은 신나게 웃고 떠들며 서로의 흥분과 두려움을 솎아내고 있었다. 멀미가 심한 사람들은 배 끝으로 이동해 바닥에 드러누워 다이빙 점퍼로 얼굴을 덮고 있다. 쉴새없이 퍼붓는 바닷물을 먹지 않으려면 점퍼는 필수다.
최고 깊이 24m, 평균 수온 23도, 평균 잠수 시간 30여 분. 오전에 1회, 오후에 2회 다이빙을 했더니 도시락이 고속도로를 탄 것처럼 식도를 내려간다. 차가운 바닷물에 의해 부들부들 식은 몸이 보트 위에서 즉석으로 끓여낸 미소된장국 서너 모금에 녹아 내린다. 자마미섬의 크기는 약 4㎢, 도카시키섬은 약 16㎢로 본섬의 도마린항에서 페리 또는 고속선을 타고 간다. 반드시 예약을 해야 케라마 제도로 갈 수 있는데, 여행사나 다이빙숍과 직접 약속을 한 경우 ‘본섬 픽업과 다이빙 후 샌딩’까지 도움받을 수 있다. 시기와 숍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2회 보트다이빙은 1만1000엔부터 1만5000엔 정도, 3회 보트다이빙는 1만5000엔부터 2만1000엔 정도로, 중식, 숙소 픽업과 샌딩 서비스가 포함돼 있다. 다이빙 슈트, BCD, 레귤레이터 외 마스크, 스노클, 핀 등 장비 대여료는 별도이다. 다이빙 경험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할 필요없다. 우리 일행 가운데에도 절반이 무경험 초짜들이었다. 하지만 전문 강사와의 1:1 체험 다이빙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초보자라도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케라마 제도 왼쪽에 위치한 아카지마(아카섬), 자마미지마(자마미섬) 도카시키지마(도카시키섬)은 주요 다이빙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비치에는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도카시키섬은 케라마 제도 최대의 섬으로 아름다운 비치에서 해수욕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본섬과 가장 가까워 당일치기로 많이 가며 수압으로 하늘을 나는 플라잉 보드, 시워크, 바나나보트 등 해양 액티비티도 풍부하다. 초보 다이버도 즐기기 좋고, 한국에서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로 부담도 없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시야에다 시기를 잘 선택하면 항공권 가격이 왕복 10만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하니 한국 다이버들과 해양 여행자들이 케라마 제도에 가기 위해 안달을 떠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연중 내내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오키나와는 다양한 럭셔리 온천 풀빌라들이 자리해 있어 11월부터 3월까지 피한 여행지로 적격이다. 미군 점령 지역이라 스테이크, 버거, 타코라이스와 함께 서양식 놀이공원 등도 즐비하다. 동아시아나 남서 해역에 숱한 점을 찍어 놓은 듯이 이어지는 오키나와의 섬들은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으며 아열대 수목이 무성하게 우거진 숲섬들이다. 오키나와 본섬 북부와 이시가키섬, 이리오모테섬들의 숲을 이루는 수목은 이타지이, 스다지이라고도 불리는 너도밤나무과의 일종으로 이 수풀림이 몇 겹으로 둘러싸인 숲의 모습이 장관이다. 숲 속에는 히카게헤고 등의 양치 식물 등이 우거져 있어 아열대 지방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시아 동쪽에서 아열대 특유의 풍광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오키나와 섬들에서는 밀림의 하구 지역에 분초하는 식물인 ‘맹그로브’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맹그로브는 생태계의 요람이다. 상류에서부터 흘려내려와 쌓인 영양 만점 부유물들이 숲을 풍요의 습지로 만들어 주고 그것을 먹기 위해 주변의 온갖 생물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새, 물고기, 곤충 등 숲 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생물들의 섭생과 밀물과 썰물로 이뤄지는 갯벌의 순환이 있는 맹그로브는 그야말로 지구의 원초적 생명을 보여주는 보고다.
다이버, 또는 해양 여행가들이 오키나와를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북위 24도에서 27도에 이르는 광대한 해역에 걸쳐 발달하고 있는 산호초다. 다양성은 물론 양적으로도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곳이다. 물속에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산호들은 오키나와가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 해역의 중요한 자연 유산이라는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푸른 산호초의 바다뿐 아니라 핑크빛 벚꽃으로도 아름다운 오키나와 벚꽃투어는 지금이 여행 적기. 본토와는 다른 매실과 복숭아 꽃처럼 진한 핑크색의 벚꽃이 피는데 민요 대회, 라이브, 아와모리(오키나와 특산소주)대접 등의 많은 꽃놀이(하나미) 마츠리가 함께 개최된다. 1월에서 5월까지 열리는 플라워 페스티발에는 많은 여행객이 모인다니 동양의 하와이, 오키나와에서 동안거를 끝내고 꽃놀이를 가보자. 시간이 된다면 국내선을 타고 ‘일본의 하와이’ 이시가키섬의 사탕수수밭과 파인애플 밭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오키나와에서는 대부분 차를 빌려 돌아다니거나 시티투어를 이용한다. 도로 방향이 한국과 반대라 처음에는 다소 헛갈릴 수도 있지만, 어지간한 운동 신경의 보유자라면 10분만 지나도 자연스러운 운전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오키나와의 유명 관광지 중 한 곳인 류큐무라(류큐왕국 시대의 민속촌)의 ‘슈리성’으로 차를 몰았다. 류큐왕국은 오키나와의 옛 지명이다. 오키나와에 물질 문명이 싹트기 시작한 12세기경부터 13세기까지 오키나와 곳곳에서는 ‘안사’라고 불리는 호족이 등장, 성을 쌓고 전쟁을 거듭했다. 그 호족 중 쇼하시라는 인물이 수많은 항쟁에서 승리해 1429년 왕에 오르는데, 이것이 오키나와의 전신인 통일 국가 류큐왕국의 탄생 스토리다. 2대 쇼신왕은 각지의 호족을 수리성으로 불러 무장 해제를 감행한다. 그는 곧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 신분 제도를 펼쳤다. 통일 류큐왕국은 불교와 학문 장려, 국가 토목사업 뿐 아니라 중국 및 일본과 동남아시아와의 교역을 통해 발전을 도모했는데 그 수도 격인 슈리성은 류쿠왕국 문명의 보고로 지금도 수많은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는 포루투갈 등 유럽과의 교역 흔적도 남아있다. 이게 15세기 때의 일이었으니, 현재 일본 국토에서 가장 먼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곳이 바로 오키나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독립국가 류큐왕국의 빛나는 역사는 강력한 봉건 국가를 건설한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군대를 이끌고 와 왕국을 정복한 뒤, 중계 무역의 이득을 독차지한 것. 그러나 쇼조켄과 시이온이라는 뛰어난 인재의 등장과 함께 재건에 성공, 류큐왕국은 다시 독자적인 역사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고급 삼베 등의 염직물, 류큐 칠기, 도기, 민속무용 등 오키나와의 빛나는 전통이 수립된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이후 다시 일본 메이지 정부가 수립되면서 450년의 빛나는 류큐왕국의 역사는 영원히 막을 내린다. 만약 그때의 류큐왕국이 독립국가로서 계속 발전을 거듭했다면 현재의 오키나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키나와의 수도 나하시에 가서 국제거리를 들르지 않을 수는 없다. 각종 도기와 직물, 패브릭숍 등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동남아시아 및 인도,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류큐왕국의 대교역 시대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키나와의 염직물과 도자기이다. 염직물 기술은 일본의 가스리천이나 명주 등에 영향을 미쳤고, 중국과 동남아시아로부터 받아들인 쓰보야 도자기와 칠기공예는 류큐왕국만의 독자적 기술이 더해지면서 선명한 주홍색과 녹색의 마키에 칠기, 자개세공 등으로 발달했다. 우리는 현대와 중세가 공존하는 국제거리를 휘젓고 다니다 작정하고 ‘처묵타임’을 갖기로 했다. 오성소바 식당에 들어가 메밀 소바와 함께 오키나와 특산물인 오리온 맥주를 마셨다. 후식으로는 망고나 파인애플 등 오키나와산 열대과일과, 현지인들이 반드시 1일1식 한다는 블루실 아이스크림을 택했다. 볏짚으로 거품을 만들어 라테 스타일로 마시는 ‘부쿠부쿠차’도 추천한다. 자리를 옮긴 우리는 오키나와 로컬 소주 ‘아오모리’를 ‘고야짬푸르’와 함께 마셨다. 특히 로컬 소주는 지금까지도 입안에 잔향이 남은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오모리 소주는 글라스, 도꾸리, 병 세 가지 사이즈로 판매한다. 나는 글라스로 주문했는데, 단순 번역하면 ‘잔 술’이지만 물과 얼음이 섞인 언더록으로 나왔다. 다소 밋밋한 양주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류큐왕조’, ‘국화의 이슬’이라는 이름의 소주도 있었다. 서너 가지 소주 맛을 음미한 우리는 한국에서는 마실 수 없는 에비스 맥주로 입가심을 한 후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오키나와 주요 관광지
■오키나와 교통편
인천공항에서 오키나와 나하 공항까지 2시간 30분 소요. 나하 공항에 도착하면 일단 공항 순환버스를 타고 일단 국제선 청사까지 이동한 후 본격 여행이 시작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키나와 시내에서는 버스 외에 저상 모노레일을 많이 이용하는데 구간별로 요금이 다르다. 관광객들은 보통 렌터카를 이용한다.
■오키나와 케라마 제도 가는 법
도마린항에서 도카시키까지 고속선으로 약 35분(기본 2430엔), 도마린항에서 자마미항까지 고속선으로 약 50~70분(기본 3140엔) 정도면 이동 가능하다. 본섬에 머물면서 케라마 제도로 다이빙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항구에서 숍까지 데려다 주는 서비스 상품도 있지만 다이빙 투어를 마친 뒤에 개별 여행을 하고 싶다면 당연히 렌터카를 이용해야 한다.
■오키나와 관광 다국어 문의 센터
박물관이나 수족관의 영업시간이나 교통정보를 받고 싶거나 케라마 제도의 다이빙 리조트를 예약하고 싶은데 일본어를 모른다면 오키나와 관광 다국어 문의 센터에 전화를 하면 된다. 오키나와 현이 제공하는 외국인 관광객 전용 공공 서비스로 전화는 물론 스카이프나 메일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면 한국어로 친절한 응대를 받을 수 있다. 휴대품 분실 또는 여행 중 길을 잃었을 때, 셔틀 버스를 놓치는 등 여행 중 생겨날 수 있는 비상상황은 물론, 맛집, 관광과 쇼핑, 전통 체험 등 모든 것에 맞춤형 답변을 해준다.
[글 조미연(텍스트씽크) 사진 아트만, 오키나와관광국]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70호 (17.03.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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