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인형 뽑기

임의진 목사·시인 2017. 3. 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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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돌풍에 날아간 비닐들이 탱자나무숲, 매화 가지에 걸려 영화 <라라랜드>에서처럼 막춤을 춘다. 논밭에 농사용 비닐 없이 어떻게 해볼 순 없는 걸까. 바람이 불면 과수농가 나무마다 폐비닐이 걸려서 나풀거린다. 무슨 <고스트 버스터즈> 유령을 보는 거 같아.

낮에 짬이 나길래 마을길 쓰레기를 좀 모아봤다. 검정 비닐, 플라스틱 용기들, 우산대, 버린 시멘트 덩어리, 큼지막한 곰 인형까지 와글다글. 곰은 어쩌다가 이 골짝 구정물에 빠져서 진흙을 뒤집어쓰게 된 걸까. 물에 씻어 강아지 집에 넣어주니 물어뜯고 야단이다. 하다 지치면 그만두겠지. 꽃샘추위 어젯밤엔 눈도 내렸다. 싸우지들 말고 꼬옥 안고 자면 좋으련만.

시내 나가선 청년들이랑 어울리게 되는데 인형 뽑기 돈을 대주기도 한다. 개인은행에 돈을 맡겨놓았나 “쪼금만 보태주시옹!” 그런다. 내가 이래봬도 잡기의 달인 아닌가. 참다못해 토이트레인을 운전, 모두 방울눈이 되어 몰려든다. 헉, 애걔걔~ 급실망들. 나도 안되는 것이 있구나. 열에 아홉 ‘속임수’라질 않더냐. 요즘 인형 뽑기가 유행. 아이들 있는 집마다 인형이 차츰차츰 늘고 있을 게다. 내 돈도 거기 찬조금으로 쬐끔 들어 있을지 몰라. 부디 예뻐해 주시길.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장난감 인형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되고, 다음엔 고이 키우던 강아지 고양이를 길에 내다버리고…. 나중엔 사랑하던 친구까지 이익이 없다 싶으면 차갑게 정리하는 잔인한 인간이 될까 무서운 세상이다.

아쿠아리움에 갇혀 사는 흰돌고래 벨루가도 꺼내주고 싶고, 수족관에 갇힌 바닷물고기들 모두 꺼내주고 싶다. 유리 상자에 갇힌 인형들도 한바구니 꺼내주고 싶어라. 피자배달 총각도 그 정신없는 속도에서 구출해주고 싶고, 봄꽃이 환장하게 핀 어떤 날엔 당신을 비좁은 사무실 책상에서 꺼내와 여기 뒷산 꽃길을 같이 걸으면 좋으련만. 올핸 대통령도 우리 손으로 뽑아야 한다. 재미 삼아 후딱 뽑아서는 안될 일이다. 재벌과 기득권층의 꼭두각시를 뽑아서도 안된다. 수수십년 적폐를 털어낼 이. 이 나라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만 해도 괜찮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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