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인 이환의가 쓰는 농부 이반의 초록일기] 〈17〉 농사 첫걸음 농기구·퇴비 고르기

박찬준 2017. 2. 1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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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작물·토질따라 농기구 달라.. 나만의 맞춤 제작도 '쏠쏠'

#새내기의 첫농사, 농기구와 거름부터 챙기자

날이 풀리면 논밭에 작물을 부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농기구와 거름 준비가 그것이다. 텃밭 농사냐, 전업농이냐에 따라 농기구의 종류와 수가 달라지지만 공통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낫, 삽, 호미, 쇠스랑, 골타기, 레이크 등이다. 낫도 왜낫과 조선낫이 다르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자 낫은 왜낫으로, 날이 얇아 벼나 풀 등 부드러운 재질을 벨 때 쓴다. 날이 두껍고 황새목처럼 구부러진 조선낫은 튼튼해서 나뭇가지를 치거나 껍질을 벗길 때 사용한다. 호미는 허리가 가늘면서 뾰족한 것과 평평한 것 두 가지다. 앞에 것은 잡초를 뽑거나 작물을 심고 캘 때, 뒤에 것은 잡초가 난 땅바닥을 긁으면서 풀을 맬 때 사용한다. 크지 않은 텃밭을 가꾸는 데는 낫과 삽, 호미, 골타기, 일륜차, 레이크면 충분하다.
 
흙을 모으기 좋도록 고안된 북주기. 호미보다 작업이 훨씬 빠르다.

전업 농가에선 괭이, 도리깨, 모종삽, 구멍삽, 고무래, 풍구, 체, 포크, 거름삽, 북주기 등이 더 필요하다. 농가별로 주력 작물에 따라 전용 농기구를 따로 준비하는 데, 이를테면 도라지 전용 호미나 포크 따위다.

#제대로 된 농기구를 고르는 요령

밭농사용 농기구는 일반 철물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도 몇천원대 이하로 부담스러운 편은 아니지만 작물이나 사용 빈도에 따라 적합한 연장을 갖추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포크는 퇴비를 치울 때와 밭작물을 캘 때는 쓰임새가 완전히 달라진다. 퇴비를 치울 때는 문제없던 포크가 삽을 대신해 사용할 때는 포크의 발이 부러지거나 휘기 일쑤다. 밭의 흙이 질흙일 경우에는 더욱 감당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럴 때는 발이 굵고 튼튼한 포크를 써야 한다. 경험상 대장간에서 전통 방식으로 두드려 만든 농기구가 철물점 제품보다 튼튼한 것들이 많다. 포크, 쇠스랑, 도라지 호미 등 주로 힘을 많이 쓰는 농기구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풀을 맬 때 쓰는 다양한 선호미들. 요즘은 호미도 이렇게 특화되어 있다.

삽 하나를 고르더라도 쓰이는 곳에 따라 재질과 모양이 달라진다. 오리망을 치거나 시멘트 모르타르를 비빌 때는 각삽이 편리하고 축사를 치울 때 쓰는 거름삽도 철,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 삽의 재질과 크기가 다양하다. 따라서 농기구를 살 때는 가게 주인에게 어디에 쓸 것인지를 설명하고 추천을 받는다. 구입하기 전에 이웃 농가를 방문해 추천 제품의 회사명과 실물을 미리 봐두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위험한 퇴비 감별법

농기구가 해결되었으면 다음은 거름이다. 화학 비료는 가까운 농협에서 바로 구할 수 있으나 유기질 비료는 주변에서 조금씩 사기가 쉽지 않다. 농사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거름 구입은 신중해야 한다. 시판 퇴비 중에는 함량이 떨어지거나 중금속이 들어있는 불량품도 나돌고, 표시 사항이 없이 일반 마대에 담긴 것들도 있다. 이런 것들은 값이 싸지만 자칫 산업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원료로 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신문 거치대를 재활용한 농기구 보관대.

그러므로 인증을 받은 제품은 일단 안심이다. 정기적으로 품질 검사를 받기 때문이다. 밑거름으로 넣고 남는 양은 작물에 거름기가 떨어질 때 웃거름으로 쓴다. 포대를 쌓아둘 공간이 충분하면 다음 작기에 필요한 거름까지 미리 구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포대 퇴비라 할지라도 채 부숙이 진행되는 것도 적지 않아서 보관하는 중에 발효가 계속 된다. 만일 밭에 퇴비를 넣고 바로 작물을 부칠 때에는 완숙 퇴비를 넣어야 가스 장애가 생기지 않는다. 특히 심자마자 비닐을 씌우는 작물에 미발효 퇴비를 넣으면 싹이 트지 않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작물을 심기 전까지 최소 몇 달간의 여유가 있으면 퇴비를 직접 만들어 보자. 퇴비는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유기물이 재료가 되지만, 보통 농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버무려 만든다. 주로 축분에 왕겨나 짚, 쌀겨 등 농사 부산물과 낙엽, 톱밥, 우드칩 따위를 섞어 발효 과정을 거친다. 농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인분, 주방의 생쓰레기, 버섯 배지, 산야초, 폐버섯목도 훌륭한 재료들이다.

발효는 미생물의 힘을 빌리는 것이기에 온도와 수분이 적당해야 하며 물기가 너무 적거나 많아도 잘 되지 않는다. 따라서 퇴비장은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비가림을 하거나 잘 덮어 준다. 주기적으로 뒤집어 주면 발효기간이 크게 단축되는 효과가 있다. 부숙이 잘 된 퇴비는 원료의 악취 대신 잘 띄운 메주처럼 특유의 향취가 있고, 검은색에 가까우며, 흰 곰팡이류가 뽀얗게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팔레트 모양을 닮은 체험 농장의 텃밭 디자인의 주역인 삽과 레이크.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생태 화장실의 기본 원리, 즉 인분에 왕겨를 켜켜이 뿌리는 과정은 퇴비를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 재료의 비율과 수분, 온도, 그리고 혼합된 재료 깊숙이까지 산소가 얼마나 공급되느냐에 따라 발효 시간이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좋은 퇴비를 얻기 위해서는 양분과 수분, 온도, 산소 등 미생물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뒤집어 보면 우리 사람이 사는 조건과 매우 비슷하다.

#작물마다 걸맞은 토질이 있다

밭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필지인 경우 각각의 토질을 파악해 맞는 작물을 정한다. 어떤 땅에 무슨 작물이 되는 지는 농사를 지어본 이가 제일 잘 안다. 여기는 마늘이 잘 되고, 저기는 그늘밭이지만 인삼이 맞고. 혹시 모를 연작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먼저 심은 작물을 알아두는 게 좋다. 하여간 경험과 자신이 없으면 뭐든지 주변에 묻는 게 상책이다.

만약 묻지 않고 알지도 못해서 질흙에 감자나 무를 심어놓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수확은 보잘 게 없다. 나아가 작년에 전 주인이 고추를 심은 자리에 고구마를 심어놓고 수확 전에 도시의 지인에게 미리 주문을 받을 수도 있다. 예상되는 결과는? 아마도 이태째부터는 고구마 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파종기 활용과 나만의 맞춤 농기구 만들기

작목별로 일정 면적 이상이 되면 파종기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씨앗을 손으로 심으면 파종간격, 깊이, 씨앗수, 흙을 덮는 양이 심을 때마다 달라서 싹이 트는 정도나 비율이 천차만별이다. 파종기를 사용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시간도 몇분의 일만 투입하면 된다. 보통 파종롤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당근, 참깨와 같이 작은 씨앗부터 보리, 콩 등 큰 씨앗까지 모두 가능하다. 어떤 것은 비닐 위에 파종하는 것도 나와 있다. 가격대는 특정 작목 전용과 범용, 크기와 구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기종을 추천받거나 선택한다.
시간과 노력을 10분의 1로 줄여주는 파종기. 열사람 몫을 해낸다. 수백년이 흘렀어도 호미는 아직도 농사의 주역이다.

농촌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재미다. 농가마다 독특한 재주가 있어 나만의 연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쓰는 데 널리 보급되었으면 하는 작품(?)도 적지 않다. 22㎜ 파이프와 패드, 활대용 강선과 드릴만 있으면 몇 년을 써도 튼튼한 갈퀴를 만들 수 있고, 추억어린 탈곡기는 벨트와 모터만 있으면 전동 탈곡기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날을 갈아 만든 나만의 농기구. 굴을 팔 때 이용한다.

수동 풍구 또한 용량에 맞는 모터와 스위치, 벨트만 달면 전동 풍구를 사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요컨대 필요에 따라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재미는 새 제품에 비길 바가 아니다. 우리 조상도 빗자루에서 지게까지 예전에는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썼다.

시각을 조금 달리해보면 시골살이는 농사와 생활 곳곳에 흥미로운 요소가 곳곳에 배어있다. 그래서 나는 오랜 겨울의 휴식을 끝내고 이렇게 새봄이 시작될 무렵에는 봄을 맞는 처녀처럼 늘 마음이 셀렘으로 가득하다.

홍성 귀농귀촌종합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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