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르고, 틀어주는 영화제

남은주 2017. 2. 1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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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 없는 영화제들

[한겨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지난 4일 영화 <케이프 피어> 상영회 뒤 최동훈 감독(왼쪽), 배우 김의성(가운데) 등이 참여해 시네토크를 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 제공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인이 꼽은 22편 1달여 상영

고전 볼 수 있고 배우와 솔직 토크

“<다이빙벨> 상영했던 게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화나고 하소연도 하고 싶어 술 취해서 바닷가에서 혼자 소리도 질렀는데 오늘 이 영화를 보고 비로소 마음이 정리됐다. 김영한 비망록부터 시작해 나를 대신해 세상이 진실을 밝혀주는데 뭐 그리 억울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한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이렇게 개인적 감정까지 솔직히 털어놓긴 처음이었다. 지난 4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상영이 끝나고 관객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였다. 주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보며 “재판이 끝나면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한 사람은 이 전 위원장만은 아니었다. 같은 날 열렸던 <케이프 피어> 상영회에선 김의성이 “요즘 내 연기를 보면 큰일 났네, 너무 못한다, 생각이 든다.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배우로서의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프로그래머가 상영작을 정하지 않고 감독, 배우,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을 카르트 블랑슈(백지수표)라고 부른다. 보통 영화제의 한 특별기획 코너로 마련되지만 영화인들 추천작으로만 열리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은 아예 카르트 블랑슈 영화제로 기획됐다. 올해 12번째를 맞은 이 영화제에선 윤가은 감독이 <매그놀리아>, 배우 윤여정이 <커다란 희망>, 배우 이영진이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추천하는 등 14명의 영화인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난 1월19일 배우 권해효의 사회로 열린 ‘201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모습. 서울아트시네마 제공

1월19일부터 2월22일까지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22편의 영화를 트는 느리고 작은 이 영화제에 최신 영화 한편 없이도 200석 극장이 가득 차곤 하는 것은 <산쇼다유> <커다란 희망> <보스턴 교살자> <향기어린 나무> <쇼피플> 등 국내에서 한번도 개봉한 적이 없는 고전들을 볼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영화인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영화를 소개하는 시네토크 덕분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는 “감독, 촬영, 배우 등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친 영화들을 뽑기 때문에 다른 영화제와는 다른 관점의 다양성을 볼 수 있다. 또 그렇게 뽑힌 영화 대부분이 그들이 영화를 시작하게 만든 초심을 돌아보도록 하기 때문에 다른 관객과의 대화 시간보다 솔직하고 감성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고 했다. 20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한국 봉준호 감독과 함께 진행하는 마스터클래스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영화제들의 영화제 ‘FoFF 2017’ 포스터.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제공

영화제들의 영화제'

다시 보고 싶은 올 영화제 출품작

관객이 직접 선택…다양성 돋보여

주문형비디오로 어떤 영화든 쉽게 소환할 수 있는 시대에 굳이 작은 영화제를 찾는 이유는 바로 이 관점의 다양성을 나눈다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25일부터는 또다른 프로그래머 없는 영화제가 열린다. ‘영화제들의 영화제(FoFF2017: the Festival of Film Festivals)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이비에스(EBS)국제다큐영화제, 유럽단편영화제 등 6개 영화제에서 올해 상영됐던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46편을 관객이 직접 뽑아 3월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상영한다. 올해 첫 영화제는 관객 공동체 운동을 벌여온 시민프로그래머들이 상영작을 정하고 내년 영화제부터는 올해 영화제에서 참여 의사를 밝힌 시민들이 바통을 이어간다. 관객과의 대화, 개폐막식도 청년기획단이 진행한다. “영화제가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겠다”는 것이 사무국이 말하는 “위원장도 프로그래머도 없는 ‘영화제들의 영화제’”가 시작된 이유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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