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미국행' 막힌 난민들, 캐나다로..멕시코로..

황금비 2017. 2. 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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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로 국경 넘은 불법체류자
"트럼프가 곧 추방시킬테니까"
'경유지' 멕시코에 중남미 난민 몰려
"날 싫어하는 미국 나도 가기 싫어"
양국 난민 신청건수 몇 배로 증가

[한겨레] 지난 6일 새벽, 미국 불법체류자 신분의 바시르 유수프(28)는 캐나다 매니토바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 미네소타주로 향했다. 가이드에게 600달러를 쥐여주고, 추운 날씨에 3시간 동안 걸어 유수프는 캐나다 국경관리소에 닿았다.

유수프는 소말리아 출신 난민이다. 2013년 소말리아를 떠나 미국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지만, 난민 신청을 거부당했다. 이후 2년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미국 곳곳을 전전했다. 이젠 캐나다 난민 심사를 받으러 국경을 넘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공식적인 난민 심사 과정은 2~3개월 걸리고, 난민 승인 비율도 58%(2015년 기준, 캐나다 이민·난민위원회 통계)에 그친다. 그럼에도 캐나다로 향하는 이유를 묻자 유수프는 이렇게 답했다. “트럼프가 곧 나를 추방시킬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에 대해 항고심에서 중단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미 미국 국내외 난민들의 발걸음이 바뀌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12일 전했다. 미국 내 불법체류자들은 난민 심사를 받기 위해 캐나다로 이동하고, 미국으로 가려던 중남미 국가 출신 난민들은 ‘중간 경유지’로 여겨졌던 멕시코에 정착하는 식이다.

유수프가 임시로 정착한 매니토바주 에머슨은 미국 미네소타주·노스다코타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의 작은 농촌 마을이다. 지난해 4월부터 지금까지 미국 국경을 넘어 에머슨으로 오는 난민은 300여명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예년의 한해 평균 50~60명에 비해 5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매니토바주뿐 아니라 퀘벡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캐나다 지역의 난민 신청자 수도 급증하고 있다. 캐나다 연방국경보호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미국 국경에서 퀘벡으로 입국을 시도한 난민은 1280명으로, 2015년에 비해 3배가량 늘어났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부터, 미국 내 이민·난민에 대한 거부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그 수가 훨씬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미국 입국을 희망하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의 중남미 출신 난민들도 이전까지 ‘중간 경유지’로 여겼던 멕시코에 주저앉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전부터 강화된 국경 검문, 불법체류자 단속 강화, 미국 내 일자리 부족 등의 영향 때문이다. 거기에 이제는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실시로 그 수가 점점 많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멕시코 북부 코아우일라주 살티요의 임시난민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호수에(가명·31)는 온두라스 출신으로 1년 전 멕시코에 도착해 미국행을 시도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미국행을 포기했다. 호수에는 “멕시코에선 최소한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해주고, 도와준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미국)으로 가고 싶지 않다”며 멕시코에서 난민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멕시코의 난민 심사 과정이 개선된 것도 중남미 출신 난민들이 멕시코 체류를 선택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멕시코 정부가 심사한 난민 신청은 총 8100건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5년에 비해 3배가량 높다. 난민 허용 비율도 2015년 46%에서 2016년 63%로 크게 높아졌다.

<뉴욕 타임스>는 “멕시코-미국 간 국경 통과는 어려워지고, 상대적으로 멕시코 난민 신청은 쉬워지면서 멕시코에 정착하는 중남미 난민들이 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 역시 또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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