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흡연자 대접받는 일본이 부럽다가 "스시보다 삼겹살이 맛있어" 일본인 칭찬에 으쓱해졌다

2017. 2. 1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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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박철현의 일기일회

일본 도쿄 아다치구 기타센쥬역 앞에 설치된 흡연소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한국은 음식도 맛있고 에너지가 넘쳐 흘러요. 사람들도 친절하고요.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가고 싶어요.”

1월부터 일본 유수의 관광지 중 하나인 도쿄 아사쿠사(淺草)에 한국가정요리 전문식당을 열어 매니저를 맡아보고 있는데, 손님들이 대부분 일본인이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거리에 가게를 열었으니 손님도 서양인이나 중국인이 많을 걸로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 한 달여 동안 찾아온 손님을 데이터화해보니 90%가 가족 혹은 커플 단위로 찾아온 일본인들이었고, 아사쿠사에 거주하는 ‘동네손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첫달 매출은 약 230만엔. 한화로 따지면 2300만원인데 이것저것 제하니 남는 게 없었다.

처음 문을 열면 지인이 팔아주러 오고 해서 남는다는 속설이 있지만 아무래도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한 번은 몰라도 두 번 찾아오고 그러지는 않는다. 나 역시 강권하는 것 같아서 한번 찾아온 분들에게 “왜 요즘 안 오세요. 얼굴 한번 봐요”라고 하질 못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동네주민들을 공략하고 있다. 달리 홍보하지 않더라도 집이 근처이다 보니 벌써 한 달 새 3~4번씩 찾아온 손님들도 있다. 게다가 이들은 한국을 한 번 이상 다녀온 경험이 있었고, 한국에서의 추억도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었다.

나는 장사 중에도 손님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술도 한잔씩 마시곤 한다. 동네장사이니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 나쁠 것 없고, 내가 한국인임을 아니까 먼저 말을 걸어올 때도 많다. “마스터는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됐나” “올해 몇 살인가” “한국에 자주 가는가” “결혼은 했나” 등등. 무슨 소개팅도 아닌데 잡다한 거 참 많이들 물어온다. 이런 대화는 주로 삼겹살을 굽거나 찌개를 끓여줄 때 오가는데 불판이 직접 테이블에 올라오는 요리는 종업원이 만들어주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불을 쓰다 보니 손님들에게만 맡겼다가 사고라도 나게 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구워주는 데 걸리는 대략 5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간다. 가만히 굽고만 있으면 뻘쭘하니까. 내가 먼저 말을 걸 때는 “삼겹살 먹는 법은 아십니까?”인데 사실 모르는 일본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부러 한국음식점에 와서 당당하게 삼겹살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잖은가. 그런데도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방편으로 아주 좋고 서먹한 분위기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안다고 하면 “참 맛있죠. 이거”라고 받으면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삼겹살 찬사가 터져 나온다.

“진짜 처음에 한국에서 이거 먹었을 때 어떻게 이런 맛이 존재하는지 정말 감동했어. 한국사람 하면 늘 고기 먹는 이미지가 있는데 다들 왜 그리 날씬한지도 알 것 같고. 고기 한 점에 채소를 이렇게 많이 섭취하는데 살찔 수가 없잖아. 세팅도 좋고 보기에도 푸짐하고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고. 한국 최고의 음식이야.”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런 유의 찬사를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니다. 십수년 전 처음으로 삼겹살을 맛봤던 미식가인 아내 역시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음식을 꼽으라면 난 스스럼없이 삼겹살을 고르겠어”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 이후로 너무나 많은 삼겹살 예찬론자를 만나본지라 이런 반응을 접해도 무덤덤하다.

삼겹살을 계기로 친해진 손님들이 두번째 오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걸어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 어찌 될 것 같냐”고 물어오는 정치적인 아저씨가 있는가 하면, 한국인 여자친구와 사귀고 있는데 그 친구가 좀 괄괄한 성격인지 “한국여자들은 다들 기가 센가요”라고 하소연하는 기가 약해 보이는 청년도 있다. 어제 막 한국에서 돌아온 중년여성은 “한국은 술집이나 식당에서 왜 담배를 못 피우게 만든 거야? 짜증나게”라며 멋드러지게 말버러 라이트를 꺼내 물기도 한다. 여러 분야에 걸친 다채로운 궁금증 안에는 웃어넘길 이야기도 있지만 경청할 만한, 아니 경청해야만 하는 이야기도 꽤 많다.

흡연구역에 별도로 설치된 일본의 한 커피숍.

담배만 해도 일본에는 JT(Japan Tabaco)라는 담배회사가 있다. 원래 국영이었다가 민간회사가 됐다. 일본 사회 자체가 워낙 흡연인구가 많고 흡연에 대한 관용도가 높긴 하지만, 비흡연자의 건강이라는 이슈가 매우 글로벌한 수준에서 진행되는지라 일본에서도 흡연에 대한 상당한 규제가 가해졌다. 도쿄만 해도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일정한 범칙금(지자체별로 다르지만 평균 3000엔 수준)을 내야 한다. 그런데 일본에는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스모킹 존’, 즉 담배를 피워도 되는 흡연구역이 있다. 길거리에 설치돼 있는 경우도 있고 아예 민간 소유지에 만들어진 것도 허다하다. 흡연구역 관리와 청소는 물론 JT가 담당한다. 임차료도 그들이 낸다. 실내에 흡연구역을 설치한 커피숍이나 식당들도 JT에 요청하면 실내 칸막이 작업 비용의 일부를 보전해주기도 한다. 지난해 우연히 JT홍보담당 직원을 만났을 때 ‘왜 그렇게까지 서비스를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대답이 매우 간단명료했다.

도쿄의 자치구에서 판매되는 휴대용 재떨이. 박철현씨 제공

“우리 담배를 사가는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죠. 비흡연자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흡연자의 권리도 중요하고, 특히 흡연자는 우리 고객이니까 당연히 그들을 위해 로비도 하고 서비스도 제공해야죠. 그렇다고 비흡연자 권리를 무시해선 안되니 재떨이통에 ‘주변사람을 배려해 달라’는 문구를 넣고 길거리에 담뱃재나 꽁초를 버리지 말라고 각 지자체와 제휴해 휴대용 재떨이를 무료로 보급하기도 합니다. 저희는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사회를 꿈꿉니다.”

홍보직원 아니랄까봐 이런 말이 술술 나온다. 뭐 굳이 반박할 여지도 없을뿐더러 꽤나 논리적이다. 살랑살랑 미소 띠며 흡연자, 비흡연자가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는데 거기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긴 그러니까 맥도널드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문화가 생겨나겠지. 한국에서 출장 오신 분들도 우리 가게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우와! 최고다!”를 모두 이구동성으로 외치길래 대체 한국은 어떤가 싶어 일본에서 3년 동안 살다 귀국한 선배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선배 왈, “한국도 서울역이나 시청, 명동 등 일부 지역에 흡연부스가 조금씩 생겨나곤 있지만 몇 곳 안되는 데다 관리도 썩 잘되는 것 같진 않아. JT에 해당하는 KT&G가 분연(分煙)문화를 위해 노력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고, 한국 사회에서 흡연은 박멸의 대상이라는 일원주의 사고가 판치고 있어. 서럽다, 서러워.” 한탄을 듣다보니 이해가 안 간다. 그럴 거면 담배를 아예 마약류로 지정해서 팔지 말든가. 왜 소비자가 죄짓는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걸까.

반면 일본에도 내가 16년간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이해되지 않는 기회손실이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하거나 보험에 가입할 때, 혹은 응모엽서 한 장을 써도 반드시 기입해야 하는 ‘후리가나’가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한자를 병용하는 문자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름이나 주소는 대부분 한자가 많다. 이 한자가 읽는 방식이 워낙 다양해 우선 한자를 먼저 쓰고 그 위에 한자를 어떻게 읽는지를 가타카나로 써야 하는데 그걸 후리가나라 부른다. 가나문자를 어떻게 풀 것인가(후루, 振る)라는 뜻을 합성해 ‘후리가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후리가나는 기입한 한자 위에 다 써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식당 주소인 ‘도쿄 다이토구 아사쿠사 2-19-5’를 한자로 쓰면 ‘東京都台東區淺草2-19-5’가 되는데 이 중 한자인 ‘도쿄 다이토구 아사쿠사’에 ‘トウキョウト タイトウク アサクサ’를 써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이토구나 아사쿠사는 그렇다쳐도 도쿄를 굳이 후리가나로 풀어써야 한다는 건 얼마나 비생산적인 행위인가. 저걸 도쿄가 아니면 뭐라 읽을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오사카, 홋카이도 등도 마찬가지다.

고유명사인 지명을 일일이 하루에 몇백만명이 쓰고 있을 텐데, 쓰는 데 3초 정도 걸린다 보고 100만명만 잡아도 300만초, 즉 833분이라는 시간을 그냥 버리고 있는 셈이다. 이 이야기를 일본인들에게 하면 백이면 백 “어? 진짜 그러네”라고 반응하는 걸 보니 그들도 관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일본이 흡연에는 관대해도 이렇게 외부인이 지적하기 전까진 의식조차 못하던 것들도 있으니, 한국 역시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괜찮은 분연문화가 나올지 또 누가 알겠는가. 아직도 인감도장이 없으면 통장 하나 만드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며 주민표 한 장 떼려면 꼭 자자체 사무소까지 가야 하는 일본에 비해 한국은 사인 하나로 다 해결할 수 있고 웬만한 서류는 어느 동주민센터에서도 뗄 수 있으니 누가 우위에 있고 말고가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미국 물류회사의 도쿄지사장을 하고 있는 한국인 선배가 가게에 찾아와 대화를 나누다 한 이야기다. 직업상 외국도 많이 나가고 일본 곳곳을 다녀보면서 생각한 건데,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고.

“밖에 나가보면 일본이 참 대단한 게 브랜드 이미지랄까, 회사로 치면 CI(Company Image) 같은 거겠지만 아무튼 일본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엄청나게 많아 부러울 때가 많아. 서양인들에게 후지산이나 스시, 가부키, 기모노, 도쿄타워, 심지어 우키요에(浮世畵·일본 전통의 회화)만 보여줘도 일본임을 단박에 아는데 한국은 그런 이미지가 없더라고. 남대문이나 경복궁 뭐 그런 거 있잖아. 그거 보여주면 요즘엔 다 중국이냐고 물어본다. 실제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싱가포르 사자상도 보면 다 싱가포르인 줄 알고, 앙코르와트 보면 캄보디아라는 걸 다 아는데 한국만 그게 없어. 다들 ‘음식이 맛있고 친절하고’ 그런 말들만 하지 정작 한눈에 ‘아, 한국이다’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게 아쉽더라고.”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어 그 다음날부터 일본 손님들에게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진짜 이 선배 말대로 맛있는 거, 마사지, 목욕탕에서 때 미는 서비스, 친절한 사람들, 총알택시, 즐거운 폭탄주 퍼포먼스 등 자기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만 말할 뿐 ‘딱 이거다’ 싶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 ‘촛불집회’를 드는 사람도 있긴 했다. 100만명인가 모였을 때 마침 서울에 있어 일부러 가봤다는 젊은 친구가 얘길 하긴 했는데 그걸 국가 이미지로 하기엔 치부까지도 드러내야 하니 뭔가 걸리는 구석이 있다. 한데 그 젊은 친구와 같이 온 여성이 발랄하게 한마디 던진다.

“그냥 삼겹살로 해요. 국가 이미지 별거 있나요? 스시보다 훨씬 맛있는데. 비주얼도 좋잖아요. 호호호.”

유레카! 맞다, 맞아. 국가 이미지 뭐 별거 있나. 많은 외국인들이 사랑하고 좋아해주고 그래서 기억에까지 남는다면 그걸로 된 거지. 그렇게 오늘도 나는 일본인들에게 삼겹살을 전파한다.

▶박철현씨는
2001년 도일. 한국에선 영화연출을 공부했지만 일본에선 오마이뉴스재팬, JP뉴스 등에서 기자로 10년간 일했다. 지금은 도쿄 우에노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인 아내와의 러브스토리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고, <일본 제국은 왜 실패했는가>와 <인터넷 동반자살>을 번역했다. 197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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