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국스포츠 희망을 찾아서①] 스포츠클럽으로 '작은 혁명' 이룬 불곡중학교

성남|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2017. 2. 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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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 중학교 학생심판들이 운동장에서 깃발을 흔들며 사전 교육을 받고 있다. 불곡중학교 제공
불곡 중학교 학생심판들이 자율동아리 발표회에서 FBS가 해온 활동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불곡중학교 제공
불곡중학교 여학생들이 교내 운동장에서 학생 심판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구 경기를 하고 있다. 불곡중학교 제공
학생심판들이 지난해 초 열린 학생자치심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교사들로부터 메달을 받고 있다. 불곡중학교 제공

지난해 한국스포츠는 숱한 홍역을 앓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스포츠가 비리를 축적하는 온상으로 취급받았고 프로야구는 선수들의 승부조작 파문으로 이미지가 훼손됐다. 프로축구는 리딩 클럽 전북 현대의 심판 매수 사건으로 국내외 신뢰도가 추락했다. 스타들의 음주파문과 기행, 운동부 폭력, 입시비리, 성적지상주의 부작용 등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도 계속 불거졌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한국스포츠를 잠재적인 범죄 집단으로 취급하며 손가락질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스포츠, 역시 희망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래도 스포츠가 갖는 질서, 존중, 양보, 희생, 노력, 협동 등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 법이다. 좋지 않은 일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비뚤어진 인식을 바로 잡을 계기가 필요한 때다. 스포츠경향은 이같이 한국 스포츠계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 그릇된 시스템, 잘못된 구습 등을 바로 잡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고 있는 숨은 ‘희망제작소’를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2017년 한국스포츠 희망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연간 20회 연재한다. 취재 대상은 경기 단체, 리그 사무국, 초·중·고, 대학교, 지자체, 용품업체, 스포츠이벤트회사, 학교스포츠클럽, 에이전트, 시설업, IT 스포츠 등이다. ‘마이너’ 또는 ‘아웃사이더’의 노력을 뛰어넘어 한국스포츠가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해묵은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곳이다.

맨 처음 성남 불곡중학교를 소개한다.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학교 스포츠클럽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다.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학교스포츠클럽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은 스포츠클럽을 진짜 주인인 학생들에게 온전히 되돌려주는 ‘작은 혁명’이다. 스포츠를 통해 학생이,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편집자 주>

학교 곳곳은 아침부터 운동하는 학생들로 들썩거린다. 남학생들은 운동장에서 공을 찬다. 여학생들은 플라스틱 원반을 주고받으며 까르르 웃는다. 운동장뿐만 아니라 이동 통로에도 운동하는 학생들로 넘친다. 실내체육관이 없는 탓에 교사가 차를 세우는 주차장 일부까지 학생들이 뛰어 노는 공간으로 변했다. 운동하는 것도, 경기를 운영하는 것도, 심지어 심판을 보는 것도 학생들이다.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감시하는 교사는 전혀 없다. 그저 교사들은 운동하면서 기뻐하는 학생들을 멀찌감치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성남 분당구 구미동에 위치한 불곡중학교에서 거의 매일 벌어지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불곡중에서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스포츠클럽을 운영한다. 기획, 준비, 실시, 평가, 반성 등 모든 단계에서 주체는 학생들이다.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스포츠클럽이 자발적으로 운영된다. 이 일을 하는 곳은 학생자치심판 자율동아리 ‘FBS(페어 불곡 스포츠)’다.

FBS는 2, 3학년 중심으로 40명 선에서 꾸려진다. 주 1회 회의를 갖고 리그 운영, 체육대회 개최 등에 대해서 머리를 맞댄다. 동아리방 벽에 걸린 화이트 보드에는 클럽 운영 현황과 전적 등이 촘촘하게 적혀 있다. 거의 매일 축구, 피구, 찜피구, 얼티미트(플라스틱 원반 던지기) 등 종목별 전적과 순위가 학년별, 반별로 빼곡하게 업데이트된다. 최우수선수(MVP), 득점왕뿐만 아니라 욕설 등으로 경고를 받는 학생의 이름을 적는 란도 있다. 지난해 3학년으로 FBS 회장을 맡은 장용준군은 “리그와 체육대회 모두 별다른 문제가 없이 순조롭게 끝났다”며 “학교 곳곳에 운동하는 애들이 많아져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FBS는 2014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당시 축구를 좋아하는 말썽꾸러기들을 모아 책임을 지워주면 변할까 하는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만들어졌다. FBS는 점점 성공적으로 운영됐다. 지난해에는 학생들 요구에 따라 봉사활동점수도 없는 자율동아리로 발전했다.

FBS는 총무부, 홍보부, 물품관리부로 구분된다. 총무부는 리그 운영, 훈련 일정 확정 및 조정, 체육대회 준비 등을 맡는다. 홍보부는 이를 어떻게 학생들에게 알릴까, 학생들의 주도적인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낼까 고민한다. 물품관리부는 학생들에게 운동기구를 빌려주고 크고 작은 행사마다 텐트를 치고 줄을 긋는 등 궂은 일을 맡는다.

축구는 남자가, 피구는 여자가 중심으로 1년 내내 리그전을 치른다. 전교생이 모두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전체 리그다. 학년별로 2개조로 나뉘어 리그를 치른 뒤 각조 상위 2개 팀이 결선 토너먼트를 벌인다. 11월이면 리그 결승전이 모두 끝난다. 1학년이 중심인 찜피구, 2·3학년이 주축인 얼티미트 등을 포함해 총 5개 종목 학년별 우승팀이 12월이면 모두 결정된다. 이들은 피자, 햄버거를 상품으로 받는다. 교장이 주는 베스트멤버상도 수여된다. 김차진 예체능부장 교사는 “지금은 교사들이 빠진 상태에서 모든 걸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며 “전교생 900여명 거의 전부가 스포츠클럽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심판까지 학생들이 맡는다는 점이다. 3학년이 주심을, 2학년이 부심을 맡는다. 이들은 ‘학생심판’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경기마다 투입된다. 학생들이 심판을 본다고 항의가 빈번하리라 예상하면 오산이다. 지난해 3학년으로 피구 심판장으로 일한 한솔이양은 “우리가 친구들과 소통을 많이 하니까 친구들도 우리들을 잘 따라줬다”며 “우리부터 사전에 교육을 철저히 받고 경기에 앞서 학생들에게 욕설하면 퇴장시키겠다는 등 규칙을 확실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불상사는 없다”고 말했다.

학교 측도 ‘주도적인 생물체’로 변화하는 FBS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예·체능 교사가 쓰는 교무실 절반을 이들을 위한 사무실로 내줬고 전용 컴퓨터와 전용 책상까지 마련해줬다. 또 심판 조끼, 호루라기 등 물품을 제공했고 학생 심판 명찰수여식 및 발대식 등을 통해 힘을 실었다.

김차진 교사는 “학생심판들이 점심시간에 운동하는 아이들을 지원해하기 때문에 선급식증도 줘 식사를 먼저 하도록 배려하고 있다”며 “아이들은 믿어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고 말했다. 임현수 교장도 “학생들이 심판을 보니까 오히려 승복을 더 잘 하는 등 서로 상대를 인정한다”며 “흡연자도 거의 없고 교우관계,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도 원만해지는 등 체육 덕분에 학생 생활 지도가 편해졌다”며 웃었다.

FBS는 지난해 5월21일 전교생 체육대회도 스스로 치러냈다. 개·폐회식은 물론 시설물 설치, 경기 운영, 심판까지 모두 학생들이 맡았다. 학부모 100여명이 체육대회를 참관했고 안전문제에만 최소한으로 관여한 교사들은 학생들을 응원하는 퍼포먼스를 멋지게 보여줬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학생인 체육대회는 성공적이었다. 지금도 유튜브에 ‘불곡중학교’를 치면 체육대회 장면, 교사들의 퍼포먼스, 종목별·학년별 응원 동영상 등을 볼 수 있다.

FBS는 올해 한걸음 더 나갈 준비를 마쳤다. FBS는 2017년 학생 심판으로 활약하고 싶은 학생들을 심사와 면접을 통해 직접 뽑은 뒤 사전 교육도 직접 마쳤다. 올해는 리그 운영, 종목 확대, 체육대회 개최 등 동일한 과업은 물론 교내 봉사, 생활 지도 등 활동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올해 3학년이 돼 FBS 회장을 맡은 배민성군은 “학생들의 원하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지난해보다 올해 더 성공적으로 스포츠클럽을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윤기덕 스포츠클럽 담당교사는 “교사가 주도하는 스포츠클럽은 일시적이고 단속적인 이벤트가 돼 체육적인 지식이 학생들의 삶으로 옮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며 “모든 걸 학생들이 스스로 하도록 자치권을 보장하고 책임의식을 고취하는 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스포츠클럽을 진정으로 학생에게 되돌려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성남|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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